바우하우스를 ‘탐문’한 한국 디자인계의 기념비적 사건
이 책의 서문을 쓴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이 책이 ‘한국 최초의 바우하우스 저서’이며, ‘한국 디자인계의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에게 바우하우스는 유명하지만 잘 모르는 ‘풍문’이었고 이 책으로 바우하우스를 ‘탐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이 바우하우스 100년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디자인 100년에 대한 사유의 출발이자 동시에 한국 디자인에 대한 물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다.
그간 바우하우스 관련 도서는 번역서가 주류였고 관련 연구자들의 저서가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약 2년 동안의 기획과 집필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그간 국내의 디자인, 건축, 미술 분야에서 이뤄진 바우하우스 연구 성과를 분야별로 점검하고 집대성한 대형 기획물이다. 이 책은 우리의 시각으로 바우하우스를 연구하고 바우하우스가 역사화와 신화화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피며 바우하우스가 가진 의미는 물론이고 역사적 한계를 지적하고 바우하우스가 우리 디자인에 끼친 영향까지 분석한다. 최범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한국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바우하우스를 우리의 시각으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이 한국 디자인계의 기념비적 ‘사건’인 이유이다.
열여덟 가지 시선으로 본 국내 최초의 바우하우스 앤솔러지
이 책은 독일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의 큐레이터 토어스텐 블루메의 글 「바우하우스의 지금과 내일」로 시작한다. 그는 바우하우스는 ‘모더니즘 운동의 플랫폼이자 촉매제’였으며, 바우하우스가 그 자체로 종합예술 작품일 뿐 아니라 많은 종합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공방이었다고 평가했다.
본문은 열여덟 꼭지로 전개된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바우하우스 설립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교과과정,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에서 2대 교장 한네스 마이어 그리고 3대 교장인 미스 반데어로에에 이르기까지의 바우하우스 변천사를 다루며 바우하우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바우하우스의 역사」에서 시작해 교과과정, 공방 교육(건축, 직조, 유리,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무대, 금속 등)을 상세하게 분석하며, 모호이너지를 중심으로 한 매체미학과 바우하우스의 과학주의 그리고 바우하우스 여성 디자이너들의 산업화를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바우하우스가 폐교한 이후의 시기인 울름조형대학에서의 금속 작업과 산업 디자인, 모호이너지가 미국 시카고에 설립한 뉴 바우하우스와 요제프 알베르스가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행했던 교육 그리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두 차례의 바우하우스 전시에 대한 소개와 평가, 아카이브로서의 바우하우스, 마지막으로 바우하우스가 국내 디자인에 미친 영향 등을 다룬다.
바우하우스 이후, 역사화 과정 조명
1919년 4월 독일의 바이마르에서 개교한 바우하우스는 데사우(Dessau) 시기와 베를린(Berlin) 시기를 거쳐서 14년이라는 짧은 기간 존속하다가 1933년 7월 폐교한다. 독일의 작은 학교였던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의 근간을 뒤흔드는 혁신을 이루며 100년 넘게 디자인의 원형으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우하우스는 어떻게 역사화되고 신화화되었을까? 영국 미술평론가 프랭크 휘트포드는 바우하우스가 나치에 의해 강제 폐교되고, 교수와 학생이 세계 각지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바우하우스의 명성이 오히려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시카고에 뉴 바우하우스를 세우고 그로피우스가 하버드대학교에서 활동한 것, 요제프 알베르스와 아니 알베르스가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 자리를 잡은 것, 바우하우스 졸업생 막스 빌이 울름조형대학의 초대 학장을 맡았던 것 등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지는 바우하우스 출신들의 활약은 바우하우스가 역사화, 신화화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바우하우스, 여성 디자이너에 대한 연구
바우하우스에는 타 기관에서 이미 예술 또는 공예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재교육을 위해 입학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대학교에 진학한 여성의 비율은 최고 16%정도였는데 바우하우스의 경우, 바이마르 시기에 여학생 비율이 40%, 데사우와 베를린 시기엔 26%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우하우스의 교육 프로그램이 혁신적이었음에도 바우하우스는 성 차별적 개념이 있었고, 남성 위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 디자이너들은 주로 벽화나 직조 공방에서 일했고 직조 공방은 여성 수련생에게 증서를 주지 않았다. 바우하우스 예술 운동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제껏 가려졌던 많은 여성 디자이너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금속 공방에서 바우하우스의 대표적 작품을 다수 제작했던 마리안느 브란트를 비롯하여 아동용 목가구와 장난감을 제작했던 목조 공방의 알마 지드호프 부셔와 다른 몇몇 여성 디자이너는 바우하우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여성 디자이너들의 주요 이력과 제작한 작품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이들의 삶과 업적, 그들에 대한 평가까지 재조명한다.
화보로 읽는 바우하우스의 ‘표정’과 주요 인물 소개
책을 열면 바우하우스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100년 전 바우하우스에서 숨 쉬며 열정을 불태웠던 그들이다. 이 책의 앞에는 16쪽 분량의 바우하우스 사람들이, 뒤에는 16쪽 분량은 바우하우스 건물의 다양한 표정이 수록되어 있다. 책 중간에는 32쪽 분량의 관련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희미한 옛 사진 속의 그들은 100년을 너머 오늘로 걸어 나오며 바우하우스를 말한다. 독일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이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 제공한 자료 사진과 도판은 바우하우스를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책 말미에는 발터 그로피우스, 요하네스 이텐, 미스 반데어로에, 요제프 알베르스, 군타 슈퇼츨, 마리안느 브란트 등 바우하우스 주요 인물 열여덟 명의 생애와 업적을 요약 정리해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