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7년 출판된 『한글 디자인』을 토대로 시대에 맞게 고치고 변화된 환경을 더하면서 시대가 한글꼴에 요구하는 정신을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한글 디자인 교과서』라고 새로 이름 지었다. 『한글 디자인』에서는 ‘한글 디자인’을 ‘한글 활자 디자인’의 줄임말로 정의하고 사용했다. 그때는 ‘한글 디자인’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고 그저 글자 디자인 또는 문자 디자인이라고 하여 ‘레터링’ 행위 정도로 이해하면서 한글을 예쁘게 그리거나 개성이 잘 드러나게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 이름을 『한글 디자인』이라 지었었고, ‘한글 디자인’의 의미와 정신을 살리고 문자로서 한글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사람들은 활자 디자인으로서 한글 디자인의 의미를 알게 된 듯하다. 그동안 우리는 한글의 정신과 원리가 한국 디자인 정신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확실히 알게 되어 ‘한글 디자인’을 ‘활자 디자인’으로 좁게 보기보다 한글의 정신과 원리를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범위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한글은 다른 나라 글자들과 달리 뚜렷한 의도로 처음부터 치밀하게 디자인된 시대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글꼴의 발달을 이끌었던 것 역시 시대정신이었다. 한글의 기계화와 효율성에 대한 고민은 세벌식 활자를 낳게 했고, 잘 읽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세벌식 활자와 만나면서 탈네모꼴 활자의 팽창을 이루었다. 한글 활자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기술의 힘을 빌어서 해결했고, 이제 개인과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하게 되었다.
또한 온라인 미디어의 발생은 한글꼴을 새로운 매체에 적응시켜야 했기에 본문용 글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나아가서 온라인 미디어의 부흥은 감성적이고 발랄하고 재미있는 한글꼴을 요구하게 되었고 한글꼴은 그에 부응했다. 이 과정에서 ‘한글을 돈 주고 산다’는 생각도 널리 퍼졌다. 마치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된 듯 더 이상 새로운 한글꼴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이 시대에 필요한 한글꼴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글이 우리 문화의 기초이고 한글꼴이 우리 시각 문화의 주춧돌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하게만 퍼져 있는 한글꼴의 조형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한글꼴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한글꼴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은 한글을 바르게 디자인하기 위한 기본자세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룬 것으로, 한글 디자인의 바른 방향 제시는 물론 시각 디자이너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작업 과정의 태도와 고도의 훈련 과정을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울러 이 책이 한글을 이용하여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고, 한글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한글문화의 올바른 이해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