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불가능 사이에서 작동하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 역할과 맥락, 방법론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사변 디자인 또는 사변적 디자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에도 수차례 소개되었다. 이 책의 감수자인 UNIST 디자인학과 부교수 김황을 비롯해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서울(SDS)’ 클럽장 셀린박 등은 국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이 책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모든 것을 사변하기』의 저자인 던과 라비는 그들의 스승이자 동료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이 분야를 1990년대부터 연구하고 실험해 온 선구자기도 하다. 이들 연구의 방점을 찍는 이 책은 던과 라비에 따르면 “부상하는 문화적 아이디어나 이상, 접근 방법 등을 살펴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다방면에 걸친 독특한 여정”으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분야를 톺아보는 첫 한국어판 책이다.
먼저 서문의 ‹A/B› 목록은 일종의 선언문으로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작업의 성격을 드러낸다. A에는 ‘긍정적인’ ‘문제 해결’ ‘해답 제시’ ‘산업을 위한’ ‘소비자’ 등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디자인이, B에는 ‘비평적인’ ‘문제 발굴’ ‘질문 제시’ ‘사회를 위한’ ‘시민’ 등 던과 라비가 작업하는 디자인이 나열되어 있다. 책에서 살펴보는 것은 B지만 이는 A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을 더하기 위한 것, 즉 더 많이 사변하기 위한 것이며 토론의 활성화를 통해 C, D, E 등이 계속해서 나오게 이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방향이다. 이들은 사변 소재를 찾을 수 있는 방법론으로 허구 세계, 경고성 이야기, 가정 시나리오, 사고실험, 조건법적 서술, 귀류법 실험, 예시(豫示) 미래 등을 살펴보고, 사물뿐 아니라 아이디어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도구들을 탐구하고, 혼합하고, 차용하고, 아우른다.
미래학자 스튜어트 캔디의 다이어그램을 기반으로 다듬은 던과 라비의 ‹PPPP›는 한국어판의 표지에도 변용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속 네 개의 원뿔은 현재로부터 뻗어 나와 각각 여러 종류의 잠재적 미래에 이른다. ‘충분히 그럴듯한(probable)’ 미래, ‘그럴듯한(plausible)’ 미래, ‘가능할 수도 있는(possible)’ 미래, 그리고 충분히 그럴 듯한 미래와 그럴듯한 미래를 가로지르는 ‘선호되는(preferable)’ 미래다. 이중 ‘선호되는’ 미래가 바로 이들의 관심 영역이다. “우리가 개발하는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가능해야 하고, 둘째로 현재 우리가 있는 지점에서 시나리오에 있는 지점까지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는 이 영역을 정부와 산업이 결정하며 우리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사람들이 시민 소비자로서 좀 더 건설적인 가상 미래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디자인의 한 가능성이다.
개념적인 건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아이디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하다
책에서 던과 라비는 자신들의 작업, 학생의 과제와 졸업 작품, 미술, 디자인, 건축, 영화, 사진 등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 사례를 인용한다. 예를 들면 한국어판이 출간되어 책으로도 알려진 ‹토스터 프로젝트›와 함께 태양열 조리 기술을 중심으로 하기에 날씨에 따라 식당이 조성되기도 하는 ‹라핀 쿨타 태양열 식당›, 사망자 수 뉴스피드를 찾아서 이동 수단 형태별로 정리한 ‹통계 시계›, 일반 여성이 느끼는 월경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실험 ‹월경 기계: 타카시의 테이크›, 구름 씨뿌리기 기술로 트럭이 아이스크림 눈을 만들어내는 ‹구름 프로젝트›, 의학 기술로 완전히 새로운 감각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환각지 기록 장치›, 합성 생물학 도구를 사용해 상업적 식단의 문제를 보완하는 ‹인구 과잉 지구를 위한 디자인, 1번: 수렵채집가› 등이다.
디자인은 모두 어느 정도는 미래지향적이지만, 특히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에서 미래는 종착점이 아니라 상상을 돕는 매개체에 가깝다. 앞선 ‹A/B› 목록에서 보다시피 던과 라비는 ‘미래’가 아니라 ‘평행 세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사변 작업에는 미래를 지향한다는 가정이 있는데, 그 미래는 가능할 수도 있는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 즉 이 세상의 평행 세계일 수도 있다.” 이에 예시로 드는 조지 루카스의 ‹THX 1138›이나 요르겐 레스의 ‹완벽한 인간›에는 마치 미래의 전형처럼 쓰이는 흰색 공간이 나오지만, 이는 미래가 아니라 단지 비장소일 뿐이며 관람자가 직접 생각할 여지를 주는 ‘하얀 상자’기도 하다. “사변 작업의 미래적 측면을 버리면 즉각적으로 미학적 실험과 대안 현실에 대한 창의적인 묘사의 범위가 넓어진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레이크』나 윌 셀프의 『데이브의 책』처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사변 소설도 평행 세계를 그리며 미래의 한 갈래를 보여준다.
여러 사례로 알 수 있듯 사변은 긍정적이기만 한 미래를 전망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장 「모든 것을 사변하기」에서 던과 라비는 디지털주의자, 바이오자유주의자, 무정부진화주의자, 공산핵보유주의자가 거주하는 가상 국가 ‘영국연합마이크로왕국’을 디자인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는 점점 불가피해 보이는 종말을 피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종말 예행 실험이었다.” 사변을 공동으로 발전시키고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사변 활동을 늘리기를 촉구하는 이유다. 사변은 현실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일어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도록 현재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꿈이 희망으로 격하된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금 꿈꾸게 하는 디자인
이제 사람들은 꿈을 꾸기보다 그저 희망할 뿐이고, 대안보다 종말을 떠올리는 편이 더 쉽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꿈과 대안이다. 던과 라비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추측하기를, 자유롭게 흘러가듯 상상하기를, ‘모든 것을 사변하기’를 장려한다. 이를 통해 사회 구상을 촉진하며 ‘선호되는’ 미래를 실현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기 편하게, 매력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보다 그 이상의 것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들이 이 책을 즐겁게 읽고 자극받아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디자인은 이상향과 미래상의 원천이 아니라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산업의 꿈이 아니라 디자인 스스로의 꿈, 나아가 사회의 꿈을 꿀 수 있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이른바 우리를 다시금 꿈꾸게 하는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