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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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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100년 동안 가려진 또 하나의 역사
바우하우스의 여성들 이야기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는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맞아 미술사에서 하나의 표상이 된 바우하우스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1919년 4월 1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개교한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의 표상으로서 미술, 공예, 디자인, 예술, 건축 등 수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바우하우스의 조형 사상과 방법론은 수많은 디자인 분야의 모태이자 고전이 되었다. 오늘날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어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바우하우스는 ‘모던’과 ‘혁신’ ‘진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바우하우스 역시 100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조를 수용하고 배격했으며, 때로는 보수적이거나 사상적 충돌을 일으켰다는 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 바우하우스에 씌워진 신화를 벗겨내고 보다 다층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그늘에 있었던, 가려지고 축소된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편집자의 글

바우하우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바우하우스의 또 다른 얼굴, 여성들

마르게리테 프리들랜더 빌덴하인(Marguerite Friedlaender-Wildenhain), 프리들 디커 브랜다이스(Friedl Dicker-Brandies), 알마 지드호프 부셔(Alma Siedhoff-Buscher), 마리안네 브란트(Marianne Brandt), 군타 슈퇼츨(Gunta Stölzl), 아니 알베르스(Anni Albers), 게르트루트 아른트(Gertrud Arndt). 이 이름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우하우스에 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독자라면 물론,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조차도 아마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비록 이들의 이름은 생소할지언정 현대 디자인과 공예, 예술 전반에 걸친 이들의 영향력은 절대 낯설거나 생소한 것들이 아니다. 바우하우스 하면 떠올리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강관의자를 완성시킨 것은 군타 슈퇼츨의 직물 작업이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동용 블록 장난감은 알마 지드호프 부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렇게 너무나 보편화되고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우리가 이 ’여성들’이 아니라 그저 바우하우스의 역사로 이해하고 있던 것일 뿐이다. 디자인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담론화하는 데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안영주는 2018년 서울핸드메이드학술심포지엄 ‘공예, 다시보기’ 참여를 계기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저자는 물론 편집과 디자인까지 모두 여성들의 손을 거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디자인을 담당한 페이퍼프레스의 박신우는 현재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여성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책의 중간 중간 삽입된 아트워크를 통해 소외되었던 바우하우스 여성들을 감각적으로 드러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가려진 ‘여성‘들을 찾아 나선 여성들의 작업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심지어 ‘예술’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전까지 여성은 비주류이자 하급 시민의 지위에 있었다. 진보와 평등한 교육 기회를 천명하며 개교한 바우하우스였지만, 이곳 역시 이런 시대적 조류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바우하우스의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교육 이념과 디자인을 찬양하면서도, 이곳을 남성 마이스터의 역사를 통해 이해하는 모순을 범해왔다. 아닌 것 같은가? 생각해보자. 바우하우스 혹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이라 하면 어떤 이름을 먼저 떠올리는가 말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라슬로 모호이너지 등 바우하우스의 대표적인 남성 마이스터와 그들의 업적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우리의 탓만은 아니다. 모든 역사가 이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 일곱 명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역사와 시대 상황, 전반적인 교육 체계와 이념을 젠더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때문에 바우하우스의 영향이나 성과, 이론, 역사에 관해 널리 알려진 내용도 있을 것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여성들을 다루면서 일대기보다는 이들이 자신이 처한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어떻게 예술을 지켜나갔는지와 그 성과를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이 여성들이 바우하우스는 물론 오늘날의 미술/공예/텍스타일/가구 디자인/사진/산업 디자인적 프로토타입 등에 미친 영향 등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 분야에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현저히 낮았음을 깨닫게 된다면 더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바우하우스의 한 축을 이루었으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의 얼굴을 찾아주려는 이 시도는 ‘바우하우스’와 ‘여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축소와 은폐의 역사는 근대 이전의 역사만도 아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다. 이 책을 통해 안영주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비주류 혹은 소수자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숙고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이 책의 주제에 맞추어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한 기존 바우하우스의 도판 자료들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새로운 ‘얼굴’을 직관(直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추천사

모든 용어나 개념이 그렇듯 바우하우스도 특정한 시공간이 매개된 모종의 이념과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바우하우스 담론에서 은폐된 퍼즐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는 언급된 (히)스토리보다 언급되지 않은 (허)스토리에 주목한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라면 남성 중심의 바우하우스 역사를 젠더적 관점에서 재배치하는 기획은 현재 진행형이다.

고영란 (한성대학교 교수)

2019년, 바우하우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왜 우리가 바우하우스 탄생을 기념해야 하는가? 왜 지금 바우하우스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만일 지금 우리가 바우하우스를 이야기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기념이 아니라 성찰의 움직임이어야 하고, 그때 그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문제와 관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그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오창섭 (건국대학교 교수)

바우하우스의 익숙한 위상을 확인시키는 책이 아니다. 여성의 가치와 여성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만 갇혀 있지도 않다. 그 시대 여성 제작자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창작자들을 이면(裏面)의 시선으로 안내해 ‘무엇을 인지하고 무엇을 위해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편향된 범주 안에서도 능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창작자의 소외 회복에 대한 지은이의 시각에 애정이 묻어 있다. 현명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신혜림 (금속공예가)

책 속에서

미국의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에서, ‘위대함’은 개인의 능력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체제에 어느 정도 부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남성이 보편인 사회 체제 안에서는 위대함의 기준 역시 그에 부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그동안 위대한 여성 예술가, 디자이너 혹은 공예가가 없던 것은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줄 체제가 없던 것에 다름 아니다.

「시작하기 전에」, 7쪽

바우하우스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었고 여성 교사와 기술 마이스터들도 있었지만 그들에 관한 기록은 일천하다. 공예가, 디자이너 또는 미술가로 활동했던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이 이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까닭은 ‘남성과 여성’ ‘미술가와 공예가’ ‘건설자와 장식가’라는 이원론적 서사와 관련되어 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체제에 나타난 젠더 정책」, 23쪽

하지만 미술가를 고양된 공예가로 보는 시선에는 일정 부분 차별화된 무의식이 자리한다. 그림을 그리든 공예를 하든 미술가의 지위는 항상 고양되어 있는 것인가? 실제로 바우하우스의 교육 체제 안에서 조형 마이스터와 기술 마이스터의 영향력은 차이가 있었다. 학교의 의사결정 기구인 마이스터 평의회는 조형 마이스터와 학생 대표만으로 구성되었으며, 기술 마이스터와의 협의 과정 없이도 학교의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었다.

「미술과 공예에 대한 이원론적 체계」, 38쪽

프리들랜더는 “폰드 팜은 학교가 아니다.…… 삶의 한 방식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기술적 지식과 정신적 내용 사이의 통합을 강조하였다. 출세 지향적인 미국인의 삶이 아닌 다른 가치의 삶, 다시 말해 진정성, 몰입과 집중,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과의 조화 같은 보다 철학적인 대안들을 중시했던 것이다.

「물레로 삶의 가치를 일깨운 마르게리테 프리들랜더 빌덴하인」, 50쪽

테레진에서 디커의 삶은 오로지 어린이들을 위해 미술을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교육을 금지한 나치의 눈을 피해 그녀는 종이와 미술용품 등을 밀반입했으며, 테레진 아이들이 두려움이나 저항감, 생존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도록 독려했다. 또한 3개월에 한 번씩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던 소포를 이용해 교육에 필요한 미술 서적과 옛 대가들의 복제품을 지인들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조토(Giotto di Bondone), 크라나흐(Lucas Cranach),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반 고흐(Vincent van Gogh) 등의 작품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재해석하게 했는데, 혹여라도 아이들이 동일하게 복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 분 동안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미술로 희망을 그린 프리들 디커 브랜다이스」, 62쪽

하지만 문제는 바우하우스의 조형 마이스터들이 만들어내고자 했던 ‘새로운 인간’이 남성적 개념이었다는 점이다. 바우하우스의 예술 이론은 재능이나 개성, 자연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이원론적 프레임에 근거하고 있었던 까닭에 부지불식간에 종래의 젠더 관념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이들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예술, 삶, 인간에 대한 이원론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원론적 개념은 대부분의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들이 공유한 사고이기도 했다.

「바우하우스의 미학과 성 관념」, 76쪽

하지만 목공방을 ‘덤’으로 사용했던 부셔가 남성들이 다루던 품목을 침범하거나 개발했다면 과연 그들은 부셔와 그녀의 작업을 용인했을까? 아이들과 관련된 영역은 남성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이기에 제품이 상용화되기까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여러 가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장난감으로 구현한 알마 지드호프 부셔」, 97쪽

물론 그녀의 성공이 재능을 기반으로 한 것은 분명하나 재능 유무가 다른 여성들의 실패를 반증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도 알다시피 어떤 조직에서의 성공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체제가 존속 가능하기 위한 규준에 부합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영역에서 성공한 여성 신화의 이중성 마리안네 브란트」, 109쪽

앞 장에서도 설명했지만 바우하우스의 교육 정책은 대다수의 여학생들을 직조 분야로 이끌었다. 그로피우스는 여성들에게 직조와 같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공예”를 선택할 것을 권고했다. 사실 직조가 쉽고 간단한 공예라는 평판은 제품이나 재료, 기술 등이 대부분 여성들과 관련된 가사용품이라는 데서 비롯된 부당한 편견이라 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 직조 공방의 갈등과 모순」, 135쪽

입학 당시 다른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랬듯 슈퇼츨 역시 바우하우스의 선언문에 표명된 새로운 이상에 매료되었고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다. “나의 대외적인 삶에서 제한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조직할 수 있다. 오, 나는 이것을 얼마나 자주 꿈꾸었던가. 이제 정말로 실현되었다. 나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전공 분야 하나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슈퇼츨은 곧 성적(性的) 불평등을 인식하고 좌절했다. 그녀는 재빨리 여성들을 위해 분리된 공간을 주창했고, 그 이듬해 여성부(Women’s Department)를 제안하고 공동 설립한다.

「직조 공방의 잔다르크 군타 슈퇼츨」, 148쪽

1929년 그녀는 마침내 소리와 반사광을 동시에 흡수하는 직물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빛 반사를 강화하기 위해 전면에는 셀로판을 사용하고 후면에는 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음재를 사용한 직물이었다. 이 작품은 아니의 졸업 시험 작품이자 독일 베르나우(Bernau)에 있는 연방학교(Bundesschule)에 설치될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연방학교는 당시 바우하우스 교장이던 한네스 마이어가 디자인한 건물로, 그는 이 직물을 학교 강당에 설치해 빛과 소음을 차단하는 장치로 사용하고자 했다. 면과 셔닐(Chenille), 셀로판을 재료로 사용한 이 직물은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이 직물의 방음과 빛 반사 기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이것이 그녀의 “미국행 여권”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우하우스를 넘어선 텍스타일의 개혁가 아니 알베르스」, 166쪽

그렇다면 여성들이 유독 사진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여성이 테크놀로지나 기계에 익숙하지 않다는 관념이 지배적임을 생각하면 이는 다소 의외적이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는 새로운 매체였기에 회화를 비롯해 전통적인 예술 분야와 같이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전통적인 매체가 생산해내는 여성의 이미지와 달리 새로운 이미지를 비교적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진이야말로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바우하우스의 슬로건에 매우 이상적으로 들어맞는 매체였다.

「여성의 정체성을 사진 예술로 표현한 게르트루트 아른트」, 176쪽

차례

시작하기 전에
바우하우스의 교육 체제에 나타난 젠더 정책

제1부
미술과 공예에 대한 이원론적 체계
물레로 삶의 가치를 일깨운, 마르게리테 프리들랜더 빌덴하인
죽음의 수용소에서 미술로 희망을 그린, 프리들 디커 브랜다이스

제2부
바우하우스의 미학과 성 관념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장난감으로 구현한 알마 지드호프 부셔
남성의 영역에서 성공한 여성 신화의 이중성 마리안네 브란트

제3부
바우하우스 직조 공방의 갈등과 모순
직조 공방의 잔다르크 군타 슈퇼츨
바우하우스를 넘어선 텍스타일의 개혁가 아니 알베르스
여성의 정체성을 사진 예술로 표현한 게르트루트 아른트

주석
참고문헌

안영주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버내큘러 디자인에 대한 비평적 담론과 정치적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디자인과 물질문화, 디자인사, 공예론 등 다양한 디자인문화이론을 강의하였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시각문화와 디자인』(공저), 논문으로 「샤를로트 페리앙의 디자인에 나타난 버내큘러적 디자인 연구」 「디자인의 정치: 감각변용으로서의 디자인」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본 버내큘러의 문화적 위상」 등이 있다. 『디자인 평론』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글을 쓰면서 디자인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담론화하고 나아가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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