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나는 바르셀로나에 ‘열정’을 찾으러 왔다. 내가 이 도시에서 정열을 찾을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정열을 가슴으로 느낀 것은 사실이다. 불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는 정열과 후끈후끈 나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많은 자국을 멀고 가까운 시간을 통해 보았다. 나는 여전히 특별한 형체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이 도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도시가 당신이 상상한 그대로일 리는 없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은 하다못해 당신의 상상을 부추겨 줄 수 있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하는 것이다.
20대의 나에게는 삶의 열정을 찾고 싶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내가 살아온 시간과 일상을 기록한 수첩, 사진첩, 기억을 열어 내가 만난 열정의 자국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도시 바르셀로나는 기대보다도 훨씬 많은 작은 행복과 유희라는 이름의 생명력을 품은 곳이다. 열정의 역사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되고 낡은 보물 창고다. 그 보물들은 19세기 모더니즘과 함께 활짝 꽃을 피웠고 20세기에 세상의 반대편에 알려졌고 21세기인 지금도 끊임없이 지중해의 보석으로 다듬어지고 있다.
시작
기억은 이미지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새기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예술작품처럼 지난 흐릿한 과거에 생동감과 경의를 불러일으켜 준다. 한 권의 책에 내가 살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모든 것들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여기에 10여 년이라는 흔적, 내가 살아온 공간을 중심으로 단편적인 시간들과 경험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선택적 요소로 사용하여 이야기해 나가겠다. 어쩌면 이 책은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야 할 날이 왔을 때를 위한 대비책, 아니 언젠가는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조바심과 욕심에서 이루어진 책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장담하는 것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도시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개될 나의 글들은 바르셀로나에서 느낀 매 순간의 감정, 내가 만나온 매력적인 사람들, 내가 살아온 짧은 역사를 늘어놓은 것들이다. 그것들과 함께 아이처럼 껑충껑충 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을 담고, 올리브 그린 페인트칠이 밝은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담고, 재잘재잘 수다를 담았다. 바르셀로나를 찾아올 사람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이곳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로서, 책이라는 시공간 속에 도시와 사람은 함께 어우러질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이러하다. 바르셀로나의 찬란했던 도시 계획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바르셀로나, 즉 19세기 이전에 어둡고 좁지만 활기찬 고딕지구와 라발을 천천히 돌아보고 찬란했던 19세기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일어난 건축과 문화의 엄청난 붐을 일으킨 잊혀졌던 불모지의 땅과 바다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갈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향기를 만들고 색을 꽃 피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도시의 과제는 무엇일까? 바르셀로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상적인 도시를 향해 그들은 새로운 미래의 지도를 어떻게 그려 나가고 있을까? 이것들의 대답을 위해 도시 바르셀로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볼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였다. 넘치는 거리의 색채에서 더 많은 사유를 하고, 형태 앞에서 무한한 형상을 만들어 낸다. 번잡스런 낙서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이 도시에서 나는 다시 디자이너가 되었다. (저자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