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온라인 판매처

디자인으로 본 한국 사회, 사회로 읽은 한국 디자인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 살든지 길거리 조잡한 간판이나 기괴한 조형을 보며 한 번쯤 눈살 찌푸린 적이 있을 테다. 어쩌다 한국의 공공 시각문화는 이런 모양새가 되었을까? 무슨 연유로 한국의 공공 디자인은 시민과 교감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는 이 같은 질문을 따라 어그러진 한국의 디자인 풍경을 근현대사와 그간 있었던 이슈를 통해 낱낱이 살펴본다. 2018년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첨삭하고 보완해 엮은 이 책은 이미 뒤집혀 있던 한국의 디자인 풍경을 ’똑바로‘ 뒤집어 본다. 이로써 최 범은 한국의 디자인 제도가 만들어낸 공공 디자인이 일반 시민의 삶과 동떨어지게 된 원인과 과정을 짚어나가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시민을 위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한국의 역사와 동시대 맥락에서 살펴보며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디자인 평론가 최 범의 여섯 번째 평론집이자 그가 30여 년 동안 디자인 비평을 하며 정리해온 생각을 남김없이 담은 이 책은 디자인 비평서일 뿐 아니라 날카로운 사회 비평서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책은 단순히 디자이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시민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편집자의 글

디자인 비평을 넘어 사회 비평으로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그 중심에 놓인 광화문 광장에는 왜 공화국의 상징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상징이 세워져 있을까? 왜 ‘한국적인 디자인’은 맨날 오방색을 두르고 훈민정음체로 도배된 채 나타날까? 어쩌다 우리 동네에 웃기게 생긴 마스코트가 놓였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열두 꼭지와 이에 딸린 열두 부록에 담으며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민주주의 공화국에 걸맞는 시각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하나의 어젠다로 엮어낸다.

책머리에서부터 이 책은 “한국 디자인은 지나치게 국가와 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온통 거기에 함몰되어 있다. (중략) 그러다 보니 나의 디자인 비평 역시 점점 사회문화 비평에 가까워졌다.”라고 밝힌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6장 「담론으로 본 한국 디자인의 구조」에 따르면 근현대 한국의 디자인은 유럽의 디자인처럼 시민 사회에서 자생한 문화적 자산이기보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면서도 내연은 그렇지 못했던 시대에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정치 수단’에 가깝다. 그 만큼 한국에서 디자인은 정치적이면서도 사회문화적인 논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 범은 ‘한국 디자인을 통해서 한국 근대를 읽어내고 한국 근대를 통해서 한국 디자인을 해석해내고자’ 하지 않았을까. 한편, 그간 국가가 만들어낸 제도권에 속한 디자인계가 권위주의 체제에 부역하며 시민 사회와 디자인 문화를 좀먹지는 않았는지 자성의 목소리를 단호히 요구한다는 점에선 ‘디자인 사회’ 비평서로 읽히기도 한다. 『한국 디자인 뒤집어보기』는 디자인이라는 특수한 소재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현대 사회라는 보편적 현상을 비평한 디자인·사회 비평서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디자인은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는 상품일까 아니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삶의 양식일까? 어느 쪽이든 디자인은 우리 사회의 진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한국 디자인 풍경’이 무엇이며 왜, 어떻게 드러나는지 이야기한다. 10장 부록 「‘지위 추구 사회’의 디자인」에서는 소수의 명품과 이를 향한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절대 다수의 짝퉁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개성보다는 ‘명품’이라는 지위를 추구하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12장 「디자인은 민주주의다」에서는 한국에서 디자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생활양식이기보다 개인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소비대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자는 민주 공화국 시민으로서 디자인을 통해 민주주의라는 공동체 형식을 일상에서 경험한다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시민이기보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서 디자인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디자인은 소비 자본주의 사회나 지위 추구 사회로서의 면모만 명료히 반영할 뿐, 모순되게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형식과 달리 그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셈이다.

우리가 앞으로도 시민으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보다 소비자로서 소비만 해도 괜찮을까? 우리는 지금 디자인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내야 할까? 이런 질문에 이 책은 12장 「디자인은 민주주의다」로 답한다. 바로 디자인이 생활 민주주의와 대중을 잇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이 소비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건을 만들고 자신의 일상을 가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시민이 되기를 요구하고 시민이 일상에서 디자인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최 범이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외연과 내연이 일치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공화국, 공공성을 회복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의 진짜 주제는 디자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꿈꿔볼 수 있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진정성 있는 사회 말이다.

더 나은 한국 디자인, 더 나은 한국 사회

“지난 30년 간 평론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한국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의 핵심을 빠짐없이 담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다양한 학문 지식과 이론을 엮어낸다. 하인리히 뵐플린, 한스 제들마이어, 칼 마르크스의 이론뿐 아니라 조희연 교수, 노시평 교수와 같은 국내 학자의 이론까지 정치, 사회, 미학, 철학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하나의 줄기로 엮어내어 한국 디자인 현상을 설명한다. 이로써 한국 디자인계의 현실을 역사와 사회 현상을 통해 조망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자인과 밀접한 사회 문제를 짚어내며, 앞으로 한국 디자인계와 제도권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한다. 이 책을 따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디자인이 지닌 문제와 그 원인을 아주 예리하게 짚어내는 저자의 통찰을 더듬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가 보여주는 한국 디자인 담론에 발 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이 책 『한국 디자인 뒤집어보기』를 읽어봄으로써 더 나은 한국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서

우리 삶의 주인공은 사람이지 디자인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디자인은 연극무대다. 어떤 연극에서는 미니멀한 배경이, 어떤 연극에서는 사실적인 배경이 되면 된다. 사람이 무대의 전경을 이루는 형상이면 디자인은 배경이지 이것이 뒤바뀌면 안 된다. 삶의 배경이 되어야 할 디자인이 전경이 되어 소리치고 떠들어대는 사회는 ‘나쁜 디자인의 사회’다.

21쪽

한국의 디자인 진흥 체제는 대중의 생활세계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보다 국가가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국의 디자이너는 모두 거기에 순응해왔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세계 디자인이 왜 이렇게 황폐한지에 대한 대답도 실은 거기에 들어 있다.

55쪽

아무튼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이 도시화하는 과정에서 간판은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퍼졌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행정적 규율은 거의 전무했다. 이제 한국의 간판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백약이 무효한 상태가 되었다. 공공이 사회적 문제에 개입할 적절한 시기를 놓칠 때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한국의 간판은 잘 보여주고 있다.

69쪽

어떻게 보면 공공 디자인은 공화국의 시각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화국을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공공 디자인이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 때문이든 지자체 때문이든 간에 개발주의의 탈을 쓰게 되었던 기존의 공공 디자인(public design)을 시민의 영역으로 다시 공공(re-public)화함으로써 공화국의 디자인(republic design)이 되도록 해야 한다.

93쪽

디자인은 더 이상 공예가 아니다. 하지만 낡은 시대의 공예적 가치가 디자인 속으로 침투 내재해서 그 본질적 가치를 온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변증법적인 의미로서 ‘지양aufheben’이 아닐까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서구와 일본의 근대 공예운동이다.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이나 독일의 바우하우스, 스칸디나비아의 공예적인 디자인, 일본의 민예운동 등이 그렇다.

107쪽

20세기 초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해 전통을 근대사회에 알맞게 탈바꿈하려는 긴 여정 끝에 20세기 말에 이르러 전통은 정치적 의미를 완전히 탈각하고 순수 경제적 관심의 대상으로 전화했다. 전통의 변용은 곧 근대의 변용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한국의 근대와 자본주의 역시 자신을 편집해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역사 속에서 이렇게 ‘편집’된 것이다.

128쪽

한국 디자인 담론이 보편적 담론이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디자인의 주어가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디자인 담론은 언제나 국가, 민족, 산업이라는 거대 주체 뒤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특수한 파생 담론에 머물고 만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한마디로 보편에 대한 의식이나 그것을 헤아리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

167쪽

어쩌면 우리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니라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화국이라는 나무가 뿌리 깊고 튼튼할 때 민주주의도 제대로 둥지를 틀 수 있는 법이다. 끈질기게 남아있는 왕국의 상징을 제거하고 진정한 공화국의 도상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199쪽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디자이너 이전에 먼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왜, 언제나 디자이너라는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건가? 어쩌면 자네가 원하는 디자인조차도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속에서만 가능해질 거야. 왜냐하면 디자이너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시민은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시민으로서의 디자이너라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아무렴. 마침 선거도 다가오는데 말이야.

221쪽

차례

머리말

  1. 디자인은 어쩌다 말이 되었나
    우리 시대, 디자인의 현상학

  2. 우리에게도 근대적인 시각형식은 있는가
    한국 근대 디자인을 보는 시각

  3. 한국 디자인에 드리운 국가주의의 그림자
    ‘미술수출’에서 ‘디자인 서울’까지

  4. 간판개선사업은 새마을 운동인가
    획일적인 관주도 방식은 이제 그만

  5. 공공 디자인에 공공성이 없는 이유
    한국 공공 디자인의 허와 실

  6. 공예는 언제부터 관광기념품이 되었나
    근대화와 한국 공예의 운명

  7. 전통을 편집하라
    전통이라는 이름의 권력, 그로부터 해방되기

  8. 디자이너의 사회학
    대중매체 속 디자이너 이미지와 현실

  9. 담론으로 본 한국 디자인의 구조
    보편과 특수, 중심과 주변의 재생산

  10. 두 개의 사회 두 개의 디자인
    양극화 사회의 디자인

  11. 공화국을 위한 디자인
    대한민국 70년의 초상

  12. 디자인은 민주주의다
    생활 민주주의로서의 디자인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디자인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 『공예를 생각한다』 『최 범의 서양 디자인사』 『한국 디자인과 문명의 전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