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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디자인: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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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간 디자이너의 디자인 인문학 산책

2013년 출간되어 독자에게 꾸준하게 사랑받아 온 『오래된 디자인』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에서는 기존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되 글자와 도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판형 및 제책 방식에 변화를 주어 책을 잡거나 책장을 넘길 때의 손 감각(인터페이스)과 독서 기능성을 한층 높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박현택은 이 책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대상을 디자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을 읽는다. 현대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과잉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과잉이 아니라 평범함과 꾸밈없음,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한 순수함과 치열함이다. 예술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삶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평범하고 사소할 수도 있는 삶 그 자체이며, 디자인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이끌어가는 방편, 즉 인문학이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지은이와 함께 박물관을 거닐며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사유하는 향기로운 인문학 산책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편집자의 글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의 시선 –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

박물관은 오래된 물건을 모아놓은 곳이며, 오래된 것이란 시간의 흐름을 견딘 생명력 있는 것을 말한다. 지은이는 오래된 것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것이 무조건 좋은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딱히 오래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새로운 것이 많이 등장하는 세상이니 오래된 것이나 지속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을 통해 좋은 디자인을 좇기에 앞서 좋은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6-7쪽) 『오래된 디자인』은 박물관 전시장에 있는 ‘주먹도끼’ ‘요강’ ‘청자병’ ‘세한도’ 등에서부터 우리 선배들의 일상품인 ‘등잔’ ‘절구’ 등까지 다양한 사물들을 살핀다. 그리고 예술이 위대하다 해도 결코 삶에 앞설 수 없다는 자세로, 단순히 보기만 좋은 외양을 찬양하기보다는 물건에 담긴 삶의 진실을 들춰낸다. 이를 통해 전문적인 디자인 지식이나 기술적 세련이 아닌 치열한 삶의 태도와 사람들의 신실한 생각들이 결국 품격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임을 주장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이 추구하는 기능성과 아름다움의 통합에 대한 고민은 결국 ‘형태와 기능’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20세기 이후 오랫동안 세계 디자인의 주된 흐름이었던 ‘모던 디자인’의 원리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기능이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형태를 만들면 미적인 효과는 저절로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술 발전에 따라 수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능보다는 형태, 즉 모양새의 중요성이 우선되고 있다. 대중들의 물질적인 욕망이 극대화되면서 모더니즘의 명제는 이미 ‘기능이 형태를 따르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또한 “형태는 재미를 따른다.”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는 식으로 형태의 지향 목표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더니즘 이후의 디자인에서 어떤 ‘가치’들이 기능을 대신해 중요시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현대의 디자인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디자인이란 쉽게 말하면 삶의 편의를 도모하는 상식을 일컫는 것일 수도 있다. 비교적 사용하기에 편하고, 보기에도 좋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주변과 어울리고, 나름대로 정돈된 형태나 구조를 지향하려 하고, 그렇게 되도록 바라고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디자인이 아닌가. 결국, 좋은 디자인이란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는 한편, 삶의 가치와 의미를 환기시키며 그리하여 우리의 모습을 더욱 품격 있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는 매개가 되는 것일 테다.

추천사

박현택은 스스로를 두루 넓게 알지만 얕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썼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두루 알면서도 참 깊게 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참 본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을 디자인적으로 재해석했는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식으로 해석하자면 전통 디자인은 우리 디자인의 ‘오래된 미래’다.

고재열 (시사IN)

오래된 것과 가까운 것을 종횡무진 오가는 지은이의 오지랖은 깊이와 재기를 모두 갖췄다. 이런 식이다. 구석기인의 주먹도끼와 정교하게 연마한 110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그 본질에서 “어차피 단단한 자연석을 가공한 돌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주먹도끼의 디자인이,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을 선취했다며 “오래된 모던”이라고 명명한다. 호랑이 새끼를 닮아 ‘호자’라고 이름 붙은 백제시대 남성용 요강을 두고는 “이놈의 아가리에 대고 오줌을 누면 호랑이가 느끼는 모멸감이야 오죽할까”라며 웃는다.

김남일 (한겨레)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라는 영화 속의 대사를 살짝 비틀면 이 책과 공명할 법하다. “예술성 뛰어나다고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디자인이 예술적인 거다.” (… ) 지은이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예술가입네 하는 작가들의 작품보다 소박하지만 삶의 구석에서 빛을 발하는 공예품이 더 긴 생명력을 지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새롭고 기발한 예술보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 깊이 뿌리박은 일상의 승리다.

권재현 (동아일보)

책 속에서

먼 조상들의 흔적에서 디자인의 이념을 발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해보겠다고 주장하기에 이 돌도끼는 21세기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기능주의라는 용어 또한 시대착오로 보인다. 그러나 기능이 정직하게 실현된 돌멩이에서 고전주의적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이 오래된 돌멩이를 기능적 정합성에 충실한 모던의 원형인 ‘오래된 모던(old modern)’이라 부르고 싶다. 모던은 이제 낡은 이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낡거나 퇴색하게 된 배경에는 모던이 출현할 당시의 순수와 열정을 잃어버린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곳적 인간의 순수한 감성과 욕구에서 만들어진 주먹도끼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모던의 이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31쪽, 「오래된 모던」에서

요강은 결코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당연히 예술이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극구 부정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생활의 한 도구가 경지에 이른 것뿐이다. 그러한 단계를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개념 정의가 있지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을 위한 삶은 없다는 것이다. 달콤함을 정제한 것이 설탕이며, 감칠맛을 극대화한 것이 인공감미료다. 정제된 미로서의 예술이나 극대화된 맛으로서의 조미료 따위보다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위한 투박한 재료, 소박한 정신이 필요한 시절이다.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그 대상이 나의 삶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줄 때라야 더 친근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뒤샹의 ‘변기로 만든 샘’보다는 아무개의 ‘요강으로 만든 호랑이 새끼’에 더 정이 간다.

66–67쪽,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21세기 문화 중심 시대가 도래 했다고 모두들 목청을 높인다.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고 우리의 고유성을 빛내며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자는 구호 역시 지루할 만큼 반복되고 있다. 새삼스럽게 전통의 형식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정체성’ ‘전통’ ‘고유성’이라는 것이 과거에 완료된 것을 오늘에 재현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의 정서와 관점이 반영된 현재 진행형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정지되어 있는 박제된 철화무늬, 고려청자 형상의 재현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백자 병은 철화로 표현된 끈무늬의 뛰어난 조형성이나 병의 형태미만 가지고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 무늬나 형상이 아름답다고 한들 그것이 옷에도 잘 어울릴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 형상을 재현한다고 해서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백자 병의 디자인은 삶과 결부되어 있는 익살이요, 유희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삶을 관조하고 일상을 즐기라는 의지를 표상한다. ‘무거우면 둘러메고 가라’는 메시지가 바로 백자 병의 디자인 콘셉트이자 매력인 것이다.

170–171쪽, 「무거우면 둘러메고 가라」에서

소위 유명 브랜드 또는 명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이처럼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평범하지만 철저히 기능성, 즉 내구성과 실용성에 목표를 두었으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외형적인 스타일이나 패션의 형식은 실용성이 있으면서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물이다. 명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일상과 환경의 필요에 따라 사용 목적이 결정되고 그 형태를 지속적으로 다듬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출현한다. 물론 이러한 명품 신화의 이면에는 여러 에피소드와 대중적 영웅들을(험프리 보가트나 피터 포크) 통한 이미지 연출이 가세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중 사이에서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247쪽, 「빈티지 룩과 밀리터리 룩」에서

디자인은 ‘물품의 생산’과 관련된다고 했다. 즉 물품의 ‘탄생’ 또는 ‘출생’과 관련된다. 의술로 치면 산부인과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물품의 생애와 건강을 관리하는 소아과나 내과, 외과는 존재하는지? 문득 ‘보수 디자인’이나 ‘수선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나는 친숙하게 지내왔던 것들과 오래오래 같이 늙어가고 싶다.

308쪽, 「오래된 물건」에서

차례

시작하며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 _ 도올 김용옥

1장 오래된 것에서 찾은 위대한 디자인
오래된 모던
선비의 책상, 승려의 책상, 무슬림의 책상
춤추는 두루미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평범하고 소박한 것의 위대함
추사의 편집 디자인
아주 작은 방
살이 디자인

2장 오래가는 디자인
가득함을 경계하라
조화로운 디자인
나전칠기 리바이벌
지속되지 않은 ‘지속 가능한’ 디자인
무거우면 둘러메고 가라
아이 사랑이 빚어낸 명작
새 토테미즘
5만 원짜리 디자인

3장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진 것
한옥마을에서 한옥을 찾다
부활한 승리의 여신 나이키
빈티지 룩과 밀리터리 룩
루이비통, 전통과 혁신을 말하다
자전거로 그린 도시 코펜하겐
국민차 비틀
빛의 신전
오래된 물건

박현택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몇몇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연이 닿아 이십여 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박물관’ ‘디자인’ ‘문화’의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디자인이 외적인 꾸밈새에만 함몰되고 있는 현상에 회의가 일었다. 다시 디자인을 생각하며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누구를 위해 디자인 하는가’의 문제와 맞닥뜨렸다. 그리고 디자인은 ‘꾸밈의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양식’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기획/출간한 책으로 『오래된 디자인』 『한국전통문양집』 등이 있으며, 공동 집필한 책으로는 『디자인은 독인가, 약인가?』 『조형』 『디자인은 죽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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