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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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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 140년
한국 디자인에 던지는 물음

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한국이 근대화를 맞은 지 140년이 된 지금, 디자인 평론가 최 범이 한국 디자인에 던지는 네 번째 물음. 화려한 근대화 문명 뒤에 세월호 참사라는 야만적인 사태가 공존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최 범은 그것이 한국 디자인의 모습과 같다고 한다. 수많은 디자인 제도와 디자인학과가 존재함에도 근대 세계 질서는 한국을 좀체 디자인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국 디자인의 아이러니 속에서 최 범은 묻는다. “과연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디자인은 문명의 얼굴을 더 많이 보여주었는가, 아니면 야만의 표정을 더 많이 지었는가.” 이 물음에 한국 디자인은 국가주의적 구호와 대기업 중심으로부터 해방되어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들어갈 수 있을까.

편집자의 글

한국 디자인의 두 얼굴

이 책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의 지은이 최 범은 한국에서 디자인과 전통은 근대 문명이라고 불리는 판타지로 포장되어 생산주의와 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한국 디자인은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세계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경제적·민족적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결과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디자인이란 판타지가 아닌 생활 그 자체이다. 이제 ‘문명’이란 꿈에서 깨 우리의 ‘야만’을 인정해야 하며, 식민지 시절과 독재 정부 등으로 얼룩진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박함과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디자인사(史)를 다시 써내려 간다면 한국 디자인은 우리에게 문명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예술과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의 근대화

최 범은 근대화를 통해 발생한 한국 사회의 문제가 디자인과 예술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디자인과 예술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언뜻 보기에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월호 참사와 한국 디자인, 두 가지를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물질숭배, 무능력, 무책임을 고발한다. 또 그는 이 시대의 예술가 네 명의 작업을 통해 한국 근대화 140년을 읽는다. 조습은 외세에 의한 근대화에서 생긴 상처를 쓰다듬고, 변순철은 ‘카메라 앞의 한국인’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며, 최정화와 안상수는 근대화를 토대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최 범에게 한국 디자인과 예술은 곧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책 속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한국 현대 디자인에서 문명의 얼굴보다는 야만의 얼굴을 더 많이 발견한다. 그 이유는 한국 현대 디자인이 인간적 삶을 고양하기보다는 왜곡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31쪽, 「세월호와 ‘디자인 서울’」에서

‘디자인 서울’에는 물질숭배, 무능력, 무책임이라는 한국 사회의 추악한 모습이 디자인의 얼굴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 서울’은 세월호 사건과 닮은꼴이다.

38쪽, 「세월호와 ‘디자인 서울’」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공공성, 최소한의 공공성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국가가 아니라 사회를, 사회가 아니라 그것의 조건인 공공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공공이란 그저 국가나 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어떤 가치의 이름이어야 한다. 공공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 대상이 아니라 행위로 인식할 때 그것을 비로소 파지(把持)할 수 있을 것이다.

63쪽, 「성(姓)은 공공, 이름(名)은 디자인?」에서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주도의 개발과 동원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달려온 한국 디자인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방향 설정이 요구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역사 연구이며, 이는 곧 미래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

74쪽, 「왜, 한국 디자인사는 없는가」에서

나는 한국 디자인의 시야를 대롱으로 만들어버린 원인이 근본적으로 생산주의에 있다고 본다.

92쪽,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수렴과 발산」에서

사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박함의 회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시각언어도 좀 더 차분해지기를 기대한다.

107쪽, 「현실과 디자인 인식」에서

한국에서 디자인 정체성은 문화적이기보다는 경제적인 것이며, 사회적이기보다는 국가적인 것이다.

113쪽, 「브랜드화의 욕망과 전통의 편집」에서

어쩌면 그것은 이제까지의 상자냐 스킨이냐 하는 판(版)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동차의 판(版)을 생성하는 문제일 수 있다. 아마미래의 자동차는 상자나 스킨을 넘어서는 다른 판(版)을 요구할 것이다.

151쪽, 「자동차의 문명적 구조의 디자인」에서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는 우리들의 이 천박하기 그지없는 싸구려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178쪽, 「우리 나쁜, 이 새것들!」에서

민족주의적이지 않으면서 세계화되는 것,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빠진 아류 제국주의적인 세계화가 아니라, 수평적인 세계화의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와’의 방법이다. 한글을 세계화하면 안 된다. 한글은 세계와 함께해야 한다.

190쪽, 「안상수의 방법, 한글의 방법, ‘세계와’의 방법」에서

근대의 시작점에서, 사진에 찍힘으로써 ‘마지못해’ 주체가 되어간 한국인은 이제 다시 ‘적극적으로’ 사진에 찍힘으로써 주체가 된다. 그들은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떻게 사진에 찍혀야 하는지를 알고 기꺼이 피사체가 된다. 그럼으로써 피사-주체가 된다. 한국인은 그렇게 근대인이 된 것이다.

201쪽, 「피사의 추억, 피사체의 주역」에서

이제 공공 미술은 제도화된 공공 공간(Public Space)의 미술을 넘어서 사회화된 공공 영역(Public Sphere)의 미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공 미술이 단지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영역 속의 미술적 실천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감성적 행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263쪽, 「세월호 사건 이후, 공공 미술에 대한 물음」에서

차례

머리말
근대화, 문명 디자인

1 근대화의 성찰과 성찰적 디자인
세월호와 ‘디자인 서울’
디자인의 양극화
성(姓)은 공공, 이름(名)은 디자인?
왜, 한국 디자인사는 없는가
근대화, 미의식, 디자인
현실과 디자인 인식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수렴과 발산

2 문화 변동과 삶의 지형
브랜드화의 욕망과 전통의 편집
한글의 풍경
벌거숭이 임금님과 한복
자동차의 문명적 구조와 디자인

3 예술가로 읽는 시대
조습: 밤의 시간과 벌거벗은 생명들
최정화: 우리 나쁜, 이 새것들!
안상수: 안상수의 방법, 한글의 방법, ‘세계와’의 방법
변순철: 피사의 추억, 피사체의 주역

4 공동체의 위기와 예술의 과제
새로운 리얼리즘 또는 역사화로서의 팝아트
벽과 창: 폴란드 포스터, 어떤 실존
공공 미술의 의미, 역사, 현실 그리고 과제
세월호 사건 이후, 공공 미술에 대한 물음
기점의 미학

도판 출처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의 편집인을 역임했다. 디자인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한국 디자인의 문명과 야만』 『공예를 생각한다』 『최 범의 서양 디자인사』 『한국 디자인과 문명의 전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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