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에서는 일본 글자체 디자이너 이와이 히사시(岩井悠)와 국내 글자체 디자이너 채희준의 이야기를 각각 인터뷰와 에세이로 소개한다. 두 이야기는 그들이 동아시아의 디자이너로서 한자 문화권과 세로쓰기 문화권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두 디자이너 개인의 서사와 성향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터뷰와 에세이라는 글의 형식은 두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로서 했던 고민과 작업 방식 그리고 삶의 형식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이번에 실린 세 편의 논고는 디지털 시대에 변모하는 시각 지형을 각각 다른 지점에서 기록하거나 만들어낸다. 디자이너 이용제는 한국 사회에 좋은 한글꼴을 판별하는 공통된 미감이 부재함을 지적하고, 디자이너 김태룡은 1960년대의 삼화인쇄소 활자를 분석하며 현대 디지털 활자가 어떤 가치를 이어야 하는지 짚어낸다. 유용주와 이가경은 가변 서체 제작 방식을 활용해 11,172자를 한번에 수정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글자랑’을 개발 중이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한글 시각 문화 지형을 다진다.
수집은 어떤 이미지나 대상을 수집하여 유희적이면서도 진지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섹션이다. 이번 호에서는 ‘숫자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인류 역사 속 어느 글자보다도 다양한 문화권에 널리 퍼지며 변신해온 아라비아 숫자를 모아 본다. 한국과 일본의 승강기 버튼부터 터키에 있는 어느 길가의 비석,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과 에릭 길(Eric Gill)이 만든 글자견본집까지 갖가지 사물에 다양한 방법으로 새겨지고 그려진 아라비아 숫자를 볼 수 있다.
대화는 일상 속 글자에 관한 세 가지 질문에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 57인이 소회를 담은 답변을 모았다. 질문이 엉뚱한 만큼 재미난 답변도 날카로운 답변도 골고루 섞여 있다.
마지막 기록에서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진행된 한재준 디자이너의 개인전 《한글·예술》을 소개하며 전시, 작품, 연출 세 가지가 어떻게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 있는지 해설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