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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짜씨 27: 타이포그래피 지금 2024

LetterSeed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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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경 속 타이포그래피의 현재를 기록하고

한국 시각 문화의 다양성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해 2008년 창립되었다. 『글짜씨』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2009년 12월부터 발간한 타이포그래피 학술지다. 《학술대회》는 학회가 2010년부터 개최해 온 타이포그래피 강연 및 워크숍이다. 제8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타이포그래피의 현상과 실천을 탐구하며 동시대 타이포그래피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글짜씨 26』이 ‘지금까지의 타이포그래피’를 다룬 데 이어, 『글짜씨 27』은 ‘지금의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2024년 현재의 변화와 흐름을 기록한다. 27호의 주제인 “타이포그래피 지금 2024”는 《학술대회 28》과 주제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27호는 디지털 시대의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장을 보여주고, 인공지능(AI) 등이 디자인 도구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이 촉발할 변화, 동시에 변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텍스트힙’ 현상과 북 디자인, 디자인 권리의 법률적 관점처럼 현재 디자인계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것들과 함께 독립 디자이너의 글자체와 기업 전용 글자체를 고루 살피고 도쿄 TDC, 베스테 플라카테 같은 이벤트를 톺아보는 등 오늘날 타이포그래피의 흐름을 다각도로 탐구한다.

편집자의 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타이포그래피는

무엇을 향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글짜씨 27』은 서혜의 논고 「고현학적 방법을 활용한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효과 분석—타이포그래피 기초 지식 습득과 인지능력 향상에 대한 실험 연구」로 시작된다. ‘고현학’은 곤 와지로가 제창한 개념으로, 고고학이 과거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연구하는 것과 달리 현재를 바라보며 당대의 도시 풍속과 세태를 탐구한다. 그 특성상 필드워크나 스케치 같은 현장에서의 체험이 중요하고, 후일 ‘노상관찰학’이 그 방법론을 이어받았다. 서혜는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는 현재의 디자인 교육 체계를 보완하고자 고현학적 방법을 통해 학생들이 “관찰, 기록, 추측, 토론, 인지”라는 다섯 단계를 거쳐 타이포그래피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인지 능력이 향상되도록 유도했다. 강의 중에 학생들이 작성한 관찰카드와 토론카드 사례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박유선과 유도원은 앞선 논고의 다음 순서로 등장하는 여는 글 「2024년, 지금의타이포그래피 조망하기」에서 수록된 원고 전체를 간략히 소개하고, 특집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황 그리고 디지털’의 첫 번째 글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황 조사 2024」로 넘어간다. 다양한 교육 경력을 가진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해당 설문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황과 효과를 조사했으며, 각 문항에 자유도가 높아 응답자 각각 상세한 답변을 더했다.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인터뷰」는 ‘꽃’ ‘이름’ ‘한글꼴연구회’ ‘한글아씨’ 네 팀의 대학교 소모임과 인터뷰를 진행해 실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교육받는 학생들의 시각은 어떤지, 또한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담론이 오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심우진의 「타이포그래피 배움배움 2: 가지가지 하는 디자이너, 사이러스 하이스미스」에서는 타입 디자이너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교육자기도 한 사이러스 하이스미스와 만난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과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함께하는 ‘타이포그라피 배움배움’은 타이포그라피의 지난 배움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배움을 내다보는 자리다. 이곳에서 강연과 대담을 통해 이야기한 글자, 그림, 디자인, 교육을 지면에 기록했다. 908A(강이룬, 앤드루 르클레어)는 어도비 연례 콘퍼런스 ‘어도비 맥스(Adobe MAX)’에서 소개된 일러스트레이터의 실험적 AI 기능 ‘리믹스얼랏(Remix A Lot)’의 데모에 기반해 운을 뗀다. 일견 충격적인 그 데모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어느 유저의 한마디 “nvm we’re so cooked.”는 이 글의 제목 「아 됐고, 우린 그냥 끝났어」가 되었다. 강이룬과 앤드루 르클레어는 놀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고도로 자동화할 디자인 도구들이 교육과 디자인의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대화를 전개하며 디자이너의 역할을 고찰한다.

기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한층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를 공유한다. 첫 번째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현황’에서는 디지털 환경과 타이포그래피의 변화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록한다. 책을 만들 때 필요한 종이 사용량을 계산해 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페이퍼맨’을 만든 최규호는 「종이와 사람, 그 사이에서」에서 개발, 디자인, 운영 등 작업 과정에 얻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강조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둘을 함께 놓고 사람을 이해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계속 고민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말은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결국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할 때 참고할 만하다. 월간 『디자인』의 편집장 최명환은 「D+255」에서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프레스가 공동 운영하는 디지털 플랫폼 ‘디자인플러스(D+)’ 오픈 이후 255일간 이어진 여정을 담았다. 시행착오와 소기의 성과, 새로운 시도와 지금까지 이어가는 실험을 가감 없이 토로한 글에서 종이 매체와 웹 환경 각자의 강점이 무엇인지, 서로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지에 관한 성찰이 묻어난다. 김나무의 「글자의 몸과 그 너머: 인공지능 시대의 타이포그래피」는 AI가 생성한 타이포그래피로 이루어졌다. 글 속 이미지는 “주석이자, 삽화이자, 정체성”이며, ‘그리드스케이프(GridScape)’라는 AI와 인간이 함께 만든 언어로 쓰였다. “종국에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AI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귀착”하는 동시에 인간의 자기 성찰과 창조 가능성을 제시한다. 「디지털 시대에 다시 쓰는 리소 인쇄」는 리소 인쇄와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디자인 작업을 하는 ‘포푸리’ 운영자 홍세인과의 인터뷰 형식이다. 디지털 매체가 다수인 오늘날 특징과 한계점이 명백한 리소그라프(risograph)라는 인쇄 기법으로 작업하며 겪는 고충과 그럼에도 리소 인쇄기를 사용하는 이유, 물성이 주는 힘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이하림은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XYZ」에서 “종이 위의 글자들이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표현하며, 스크린 타이포그래피의 최근 변화를 X, Y, Z축을 기준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 흐름을 기록한다. 여기서 X축은 글자 사이의 조판, Y축은 글줄 사이의 조판, 그리고 Z축은 거리 간의 조판으로 특히 Z축 배치도 가능하다는 점을 스크린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적인 점으로 꼽는다. 함지은의 「텍스트힙의 시대, 독자와 독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은 근래의 텍스트힙(text-hip) 및 과시적 독서 현상에 한 축을 더한 리커버 에디션 마케팅을 북 디자이너 관점에서 들여다보고자 세 갈래의 작업기를 모아 소개한다. 겉만 예쁜 책에서 머물기보다 독자들을 결국 알맹이(내용)로 이끄는 다리를 짓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을 보면, 작금의 독서 현상은 그저 우연이 겹친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작업자들이 쌓아온 노력의 산물로 여겨진다. 서유경은 디자이너였던 자신이 법률가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함께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지침서를 만들고자 『디자인 법률 사용 설명서』를 썼음을 밝힌다. 이 책이 많은 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작용하고, 향후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이 안정적이고 공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두 번째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와 글자체’는 독립 디자이너의 글자체와 기업 전용 글자체를 두루 조명한다. 먼저 가장 유명한 무료 오픈 소스 폰트 「프리텐다드」는 이제 중앙행정기관 사이트의 기본 글자체로도 사용된다. 개발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제작자인 길형진과의 인터뷰 「「프리텐다드」 그 후」에서 글자체 개발 비화를 통해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강인구의 「프로젝트 「긱산스」」는 “한글과 라틴 알파벳의 적절한 비례를 찾기 위해” 시작된 여정으로, 도판과 함께 「긱산스」의 너비, 굵기, 비례 등을 탐구하며 문자의 질서를 통합하고 구조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 전은경은 「『밥 벌어주는 폰트』 vs 『Our Typeface』: 현대카드와 배달의민족 전용 글자체가 한국 시각 문화에 미친 영향」에서 현대카드와 배달의민족의 전용 글자체 사례를 통해 기업 정체성과 브랜딩에서 전용 글자체가 가지는 힘과 문화적 영향력을 분석한다. 특히 책으로 묶는 작업을 정태영 부회장과 김봉진 창업자가 직접 챙길 만큼 신경 썼다는 점이 그 중요성을 환기한다. 강유선의 「아리따 프로젝트, 「아리따」 글자체 전시」는 기업 전용 글자체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책과 전시를 활용해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까지 자리 잡게 한 선례를 보여준다. 「아리따」가 단순한 글자체를 넘어 아모레퍼시픽의 문화 사업이 되기까지, 그 뒤에 숨어 있는 많은 사람의 수고와 정성 또한 설명한다. 김태헌의 글 「물체」는 그가 디자인한 글자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글의 제목에는 그저 선으로 이루어진 평면의 글자체가 아닌 “물성을 가진 하나의 ‘물체’로 보아주길” 그리고 “「물체」로 조판된 텍스트를 하나의 물리적인 군집(우주)으로 보아주길” 바라는 그의 희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글자체 제작 과정보다는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해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타이포그래피 이벤트’는 국내·외 주요 이벤트 현장을 살핀다. 「도쿄 TDC 애뉴얼 어워즈 수상자 인터뷰」는 도쿄 타입 디렉터스 클럽(Tokyo Type Directors Club) 애뉴얼 어워즈의 최근 수상자 중 한 가오, 게이타 오니시, 캐런 앤 도나치 & 앤디 시미오나토 이렇게 세 팀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작업은 전형적인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아닌 새로운 형태를 띠며, 그럼에도 도쿄 TDC에 제출하고 수상함으로써 미래의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힌트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기창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온 최고의 포스터 100」에서 포스터 공모전 《100 베스테 플라카테》 전시 현장을 찾아 여러 디자이너와 포스터에 관해 토론하고 성찰한다. 포스터란 무엇인지, 포스터를 포스터답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 포스터인 것과 포스터가 아닌 것의 경계는 무엇인지, 현장의 분위기와 함께 그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의 단편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김태헌의 「전주국제영화제 아트디렉션」은 그가 2023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의 아트디렉터를 맡아 신중하게 고군분투한 경험을 공유한다. 거의 프로그램이 그 성격을 방향을 결정하는 영화제에서 그는 디자인의 역할을 “진정성을 부여”하고 “시각적인 용기와 영감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일을 묵묵히 수행해 간다.

책 속에서

올해 디지털 협업의 시대를 상징하는 노션 사용자가 1억 명을 돌파했고, 월간 『디자인』이 20년 만에 판형을 바꾸며 종이 매체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또한 기업 글자체, 커스터마이징 글자체는 10년, 20년의 역사를 넘어 서사를 담아내며 한국 현대 시각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호에서는 디지털 환경과 타이포그래피 교육, 기업과 정부 프로젝트, 독립 디자이너의 작업 및 주요 이벤트를 통해 타이포그래피의 현재를 다각도로 탐구한다.

박유선, 유도원, 「2024년, 지금의 타이포그래피 조망하기」, 31쪽

저는 항상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폰트의 목적이 상업인지, 교육인지 등등이요. 목적을 보는 것이죠. 상업성을 목적으로 한 폰트를 출시했을 때 다른 회사들도 쓰고 싶어 할 디자인인지, 교육의 목적이라면 이 폰트로 단어를 만들었을 때 가독성이 있는지 등을 봅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실험적인 폰트를 선호하고요. 세상엔 많은 폰트가 이미 출시되어 있고, 견고한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의 규칙을 깨면서도 목적성을 가지는 글자체는 저를 설레게 합니다.

사이러스 하이스미스(+심우진), 「타이포그래피 배움배움 2: 가지가지 하는 디자이너」, 108쪽

어쩌면 이런 도구들이 디자이너에게 더 큰 진정성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 이런 상황에서 관리자/큐레이터로서 디자이너는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보다는, 디자인이나 그 외 특정 가치에 대한 방향성으로 더 평가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 이런 생각은 내가 파슨스에서 학생들이 “왜 우리 학교에는 포트폴리오 수업이 없느냐”라고 물을 때, 우리의 1년짜리 논문 수업이 가진 가치를 대변하면서 항상 하던 이야기랑 비슷해. 만약에 누구나, 뭐든지 만들 수 있다면, 누가 누구를, 왜, 고용해야 하지?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길래?

강이룬(+앤드루 르클레어), 「아 됐고, 우린 그냥 끝났어」, 115쪽

여전히 리소 인쇄는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리소 인쇄소도 몇 곳이 생겨났지만 그만큼 없어지기도 해서 그 수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가 활발히 사용되는 만큼 물성을 지닌 인쇄물을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종이 위에 인쇄된 것, 손으로 만지거나 넘길 수 있는 것을 아직도 더 선호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꾸준히 리소의 수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세인, 「디지털 시대에 다시 쓰는 리소 인쇄」, 151쪽

과시적 독서는 비판할 만한가? … 그동안 ‘리커버 에디션’을 치열하게 만들어 온 북 디자이너에게 있어서는 반갑고도 기쁜 유행이라는 답을 내놓겠다. 아름다운 외형으로 시선을 사로잡아 독자가 어떤 책을 선택하게 했다면, 책 속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여정에 다리를 놓아준 셈이다. 북 디자인이 겉모습에서부터 알맹이로 향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단지 장식품처럼 ‘예쁜 책’을 만드는 일을 넘어 내용을 잘 담아내고,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궁금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앞서 소개한 책들은 모두 외형과 의미 사이의 균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함지은, 「텍스트힙의 시대, 독자와 독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164쪽

‘디자이너가 돈을 버는 원리는 무엇일까?’
‘거래와 계약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공정할까?’
‘잘 만드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일까?’
이 질문들을 깊이 고민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디자인이라는 내부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외부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요. 더 넓은 시각과 새로운 접근 없이는 이 질문들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법률가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서유경, 「『디자인 법률 사용 설명서』」, 170쪽

점점 디자인 환경은 편해지고 있는데 왜 난 시스템과 똑같이 보이기 위한 디테일 하나만을 위해서 귀찮은 반복 작업을 해야 할까, 싶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제가 보기엔 디자인 도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 정리하면, 기존 폰트로는 해소가 안 되는 불편을 해소하려고 했고, 마침 좋은 오픈 소스 폰트가 있었고, 모양, 구조, 다국어 등 나름의 명분을 넣어서 제가 일을 두 번 하지 않으려고 완성한 게 「프리텐다드」예요. 퇴근하고 밤이나 주말 동안, 또 재밌어서 혼자 깨작거렸고요. 그런데 이걸 나만 쓰긴 아깝고, 저와 같은 누군가가 이걸 보고 쓰겠지, 싶어 배포했습니다.

길형진, 「「프리텐다드」 그 후」, 176–177쪽

2024년 여름 일주일 차이를 두고 나오게 된 두 책은 『밥 벌어주는 폰트』 『Our Typeface』라는 제목만큼이나 기업 문화와 글자체 배포 방식을 은유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으로 묶는 이 작업을 정태영 부회장과 김봉진 창업자가 직접 챙겼는데, 브랜딩 차원에서 그만큼 신경 쓴다는 뜻이다. 브랜딩은 오기를 넘어 집착에 가까운 영역이고 구성원의 합의에 따르는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오너십을 가진 CEO의 영역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오너십을 가진 CEO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10년, 20년을 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은경, 「『밥 벌어주는 폰트』 vs 『Our Typeface』: 현대카드와 배달의민족 전용 글자체가 한국 시각 문화에 미친 영향」, 193쪽

AI는 명확한 글자 형태를 생성하는 대신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기껏해야 외계 문자처럼 보이고 때로는 아이의 낙서같이 구불구불한 모양을 생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결과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벡터 및 마크다운 생성기가 등장함에 따라 개선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실험했던 왜곡되고 변형된 글자 형태를 만든 생성형 AI가 어도비 같은 거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매우 잘 다듬어진 형태보다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초기 시스템에서 생성된 타이포그래피(특히 실패하거나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는 초현실주의자의 자동 및 무질서 쓰기 실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도 지능형 시스템의 역할은 우리가 새로운 감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캐런 앤 도나치 & 앤디 시미오나토, 「도쿄 TDC 애뉴얼 어워즈 수상자 인터뷰」, 246쪽

인터뷰했던 디자이너 중에 한 사람이 ‘무빙 포스터는 쉽게 눈을 사로잡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금방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인쇄된 포스터는 정보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많은 디자이너가 인쇄된 포스터를 선호했다. 포스터를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어떤 종이에 어떻게 인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때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유럽의 디자이너에게 포스터라는 매체의 특성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는 포스터가 아닌, 보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것 같았다.

김기창,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온 최고의 포스터 100」, 255쪽

차례

논고
고현학적 방법을 활용한 타이포그래피 교육의 효과 분석 —타이포그래피 기초 지식 습득과 인지능력 향상에 대한 실험 연구 | 서혜

여는 글
2024년, 지금의 타이포그래피 조망하기 | 박유선, 유도원

특집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황 그리고 디지털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교육 현황 조사 2024」 | 박유선, 유도원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인터뷰
— ‘꽃’ 이화여자대학교 소모임
— ‘이름’ 국민대학교 소모임
— ‘한글꼴연구회’ 홍익대학교 소모임
— ‘한글아씨’ 서울여자대학교 소모임
타이포그래피 배움배움 2: 가지가지 하는 디자이너, 사이러스 하이스미스 | 심우진
아 됐고, 우린 그냥 끝났어 | 908A(강이룬, 앤드루 르클레어)

기고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현황
종이와 사람, 그 사이에서 | 최규호
D+255 | 최명환
글자의 몸과 그 너머: 인공지능 시대의 타이포그래피 | 김나무
디지털 시대에 다시 쓰는 리소 인쇄 | 홍세인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XYZ | 이하림
텍스트힙의 시대, 독자와 독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 함지은
『디자인 법률 사용 설명서』 | 서유경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와 글자체
「프리텐다드」 그 후 | 길형진
프로젝트 「긱산스」 | 강인구
『밥 벌어주는 폰트』 vs 『Our Typeface』: 현대카드와 배달의민족 전용 글자체가 한국 시각 문화에 미친 영향 | 전은경
아리따 프로젝트, 「아리따」 글자체 전시 | 강유선
「물체」 | 김태헌
타이포그래피 이벤트
도쿄 TDC 애뉴얼 어워즈 수상자 인터뷰
— 한 가오
— 게이타 오니시
— 캐런 앤 도나치 & 앤디 시미오나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온 최고의 포스터 100 | 김기창
전주국제영화제 아트디렉션 | 김태헌

학회
『글짜씨 27』 참여자
논문 규정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바탕으로 소박하며 진솔한 입장에서 깊은 생각을 나누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각문화 성장이라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2008년 9월 17일 사단법인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국내외 회원의 연구와 교류, 그리고 협력을 통해 매년 정기적으로 좌담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학술논문집 『글짜씨』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타이포그래피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