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의 실천을 톺아보며
내일의 타이포그래피를 가늠한다
여는 글에 해당하는 심우진의 글 「Lifography; 디지털 시대의 타이포그래피」은 결론에서 출발해 서론이 이어지고 본론으로 맺는다. 디지털 타이포그래피가 요하는 삶과 이야기의 맞물림을 위해 “생각과 행동의 단위를 잘게 쪼개고, 내 몸으로 감각하고 경험하며, 대화하는(말하고-듣고-쓰고-읽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다음 서론에서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의 방향성을 향한 질문에 답하고 앞으로의 타이포그래피를 가늠하고자 함을 밝힌다. 그리고 본론은 디지털과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학회의 정체를 물으며 시작한다. 낱말을 정의하는 일은 나와 일상, 즉 삶과의 ‘연결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유지·보수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답하면 연결된 것이고 못하면 끊긴 것이다. 꾸준히 묻고 답해야 신선할 수 있다.” 글은 학술적 관점에서 과학, 예술, 기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의 맥락을 연결하다가 말미에 이르러 라이프스타일과 타이포그래피를 더한 ‘라이포그래피(Lifography)’에 다다른다. 비록 디지털이 말과 글의 전환을 가속하고 기술 또한 빠르게 바뀌는 시대지만 ‘탐험가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이기에, 탐험가가 되는 것은 앞선 결론의 질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해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집은 박유선과 유도원이 「기획의 글」에서 알린 바와 같이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다. 먼저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연표 1.0」는 디지털과 타이포그래피의 중첩 지점을 탐색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전환기, 그리고 현재까지 국내를 중심으로 타이포그래피 및 기술의 변화와 관련된 사건을 수집하고, 이와 연결된 국외의 큰 사건을 수집했다. 연표의 작성은 의견 수렴과 자문 등의 참여형 제작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타임라인은 지금도 확장 중이다. 이어지는 「응답」은 강유선, 구모아, 길형진, 석재원, 위예진, 최규호, 한동훈, 홍원태가 연표에 나열된 몇몇 사건에 상세한 경험이나 의견으로 이야기를 더한다. 「인터뷰」에서는 안상수, 조의환, 김신, 유정미, 김현미, 홍동원, 정석원, 안병학, 권경석, 박용락, 최명환까지 디지털 전환기를 직접 마주하며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다. 그들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도구와 매체, 전환기의 어려움과 극복법, 그 이후의 제작 환경, 현재의 디자이너 세대를 위한 조언 등의 공통 설문을 제시하고 사이사이에 개별적인 심화 질문을 던져 더 깊이 개개인의 경험에 파고들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환경에서의 타이포그래피를 둘러싼 현상의 면면과 그 변화에 대응한 주체자와 실천에 주목했다.”
기고를 쓴 강현주는 「낯설었지만 익숙해진 풍경에 대한 기억, 타자기에서 생성형 AI까지」에서 근래 ‘Y2K’로 통칭해 호명하는 지난 세기말 시기에 쓴 두 편의 글을 재록하고, 그가 40년간 디자인계에 몸담으며 직접 겪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를 풀어낸 뒤 디지털이 고도화하며 생성형 AI를 향한 기대와 우려가 혼재하는 오늘날을 겹쳐본다. 교육자로서 이런 전환기에 디자인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이민규는 「공백을 들여다보기: 『이영희는 말할 수 있는가?』의 기획과 실천」에서 “영웅적 개인과 기념비적 작업”으로 구성된 한국 디자인사 바깥에서 가시화되지 못한 디자인사(들)를 발견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이영희는 말할 수 있는가?』는 이런 시도와 실천 끝에 나온 책으로, 지역 그래픽 디자인 생산 현장에 있던 여성 직업인 이영희를 비롯해 가장 보편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심우진이 「날개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 이야기」에서 전시 감상과 함께 전시장에서의 경험을 공유한다. 《홀려라》는 안상수가 작품을 통해 세계관을 선보이는 자리를 넘어, 전시장 사랑방에서 즉석으로 뚝딱 만들어낸 ‘마당’에 모인 사람 간의 대화와 관계를 연결하며 “그가 평생 벌여온 퍼포먼스의 연장” 그 자체가 되었다.
논고는 두 편이 게재되었다. 김태룡의 「한글 조판에서 「홑낫표」와 『겹낫표』의 너비 설정에 대한 고찰」은 문득 ‘낫표’를 ‘따옴표’처럼 디자인해 왔음을 깨달은 연구자가 이것이 적합한 디자인 방법인지 의구심을 품는 데서 출발했다. 연구는 한글과 라틴 알파벳을 구조적으로 살펴본 후, 이를 바탕으로 본문용 한글 조판에 어울리는 낫표의 너비 설정 방법을 제안한다. 민본은 「표지 글자와 활자의 기능 비교 및 상호작용 고찰」에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활자(type)와 ‘표지(sign) 글자’ 사이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경향을 지적하는데, 지난날 이미 둘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활자 개발의 사례 세 가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적용할 만한 요소를 파악한다. 이런 과정은 활자와 표지 글자의 균형을 찾으며 디지털 시대의 활자 개발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