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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짜씨 23: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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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해 2008년 창립되었다. 『글짜씨』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2009년부터 발간한 타이포그래피 학술지다. 이번 23호를 장식한 주제는 ‘스크린 타이포그래피’로, 스크린 위에서 지면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타이포그래피의 면면을 살펴본다. 지난 호와 같이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고 이어서 「도구」 「교육」 「기록」 「매체」 「비평」 「논고」로 이루어졌다. 라운드 테이블에는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현장에서 작업하는 실무 디자이너들이 참여했고, 「도구」에서는 고민경., 박신우, 심규하가 참여해 창작 활동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스크린을 조명한다. 「교육」에서 홍은주, 민구홍, 김린은 각자의 스크린과 관련해 교육한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기록」에서 박고은, 권혜인,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스크린 심연에 존재하는 웹사이트들을 기록해 하나의 웹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매체」에서 티슈오피스, 정사록, 박세진„ 임솔은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고 연결되는 여러 관계에 주목한다. 「비평」에서 오혜진, 김슬기, 김미혜는 인쇄 및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한 실험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논고」에서 심우진과 정태영은 그동안 하나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한글 글꼴의 용어를 연구하고 제시한다.

편집자의 글

지면이 아닌 스크린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잠재력을 가지는가
스크린의 무한성과 한계성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글자들

책보다 휴대폰과 컴퓨터 화면을 더 많이 마주하는 요즈음, 스크린 위 타이포그래피는 그 어느 때보다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스크린이라는 장소는 자주 마주하는 만큼 보기에 편한 타이포그래피가 만연한 곳인 동시에 실험 정신을 마구 일으키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타이포그래피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그래픽, 이미지, 코딩 등의 시각 문화 또한 스크린 위에서 풍성하게 생산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요소가 아닌 스크린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어떻게 우리에게 낯익어지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을까? 『글짜씨』 23호에서는 스크린 타이포그래피를 비롯한 디지털 시각 문화의 역사와 현주소를 고루 살펴본다.

「좌담」의 라운드 테이블에는 스크린 타이포그래피의 최전선에 있는 디자이너 강채원, 고민경, 고윤서, 손영아, 송예환, 임솔, 조우식 그리고 황이슬이 참여했다. 김형재 디자이너가 2020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이자 전시인 《Not Only But Also 67890》을 모티브로 잡아, 2019년과 2022년 사이에 디자인계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 중 ‘스크린 타이포그래피’라는 주제에 부합하면서 참여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들을 소개하며 최근 5년의 스크린 시각 문화의 역사를 되짚는다.

「도구」에서 고민경은 《서베이》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디자인 도구의 변화를 중심으로 최근 그래픽 디자인 신의 경향을 살핀다. 박신우는 『it matters.』 웹진 프로젝트의 자세한 진행 과정을 설명하며 그래픽 생산도구로서 인스타그램을 활용했던 색다른 작업 경험을 공유한다. 심규하는 다중 사용자 인터랙션을 기반으로 하는 컨디셔널 디자인 방법론을 소개하며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와 참여자는 어떻게 공동 창작자가 되는지 설명한다. 「교육」에서 홍은주는 시각디자인학부에서 진행해온 타이포그래피 및 코딩 강의 커리큘럼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다양한 학생의 기발한 작업물들을 공유한다. 민구홍은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 첫 순간을 기술하며 역사적인 웹사이트들의 탄생을 연대기순으로 나열한다. 김린은 대학에서의 시각 디자인 교육 경험과 미디어센터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긱이코노미 시대의 산업 수요를 반영한 시각 디자인 교육 방법론 연구를 소개하고, 긱이코노미가 시각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기록」에서 박고은은 전통 매체와 디지털 매체로 구축된 아카이브의 사례를 들며 그 차이점을 지적한다. 권혜인은 인터넷 아트 전시 《웹-레트로》를 회고하며 지난 30년간 월드 와이드 웹에서 시도된 새로운 미술을 되짚고,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직접 가꾸고 있거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웹사이트 42선을 소개한다. 「매체」에서 티슈오피스는 메타버스 쿤트라의 배경을 화성으로 설정한 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UX 디자인 회의 방식인 ‘스프린트’를 제시한다. 정사록은 그래픽 디자인을 재미있게 하고자 시작한 워크숍에서 여러 참가자와 수많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결국엔 그래픽 디자인을 다시금 즐기게 된 과정을 공유한다. 박세진은 패션 브랜드의 확장과 다각화 활동을 이야기하며 온·오프라인 매체의 본래 의도가 전복되는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임솔은 디자이너들이 SNS에 작업물을 올리면서 발생한 열화와 왜곡 현상이 오히려 새로운 기법과 속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평」에서 오혜진은 스텐실 인쇄를 주제로 코우너스에서 출간된 책 『Paper and Stencil Printing』의 디자인을 비평한다. 표지, 재단선, 책입 등 책의 곳곳에 스며든 의도를 섬세한 시선으로 읽어낸다. 김슬기는 기존 글자체 「라바」를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라틴 글자 디자인의 맥락을 이으면서도 한글 고유의 맥락을 따른 부분을 구분하며 다국어 글자체의 특징을 설명한다. 김미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전시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를 비평한다. 1950-1960년대를 중심으로 근현대 디자인의 태동과 전시를 조망하는 전시의 맥락 안에서 각 작품의 의도를 상세하게 해부한다. 「논고」에서 심우진과 정태영은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완성된 「한글 글꼴 용어 2022」를 발표한다. 지난 40여 년간 지속해온 글꼴 용어 연구에서 ‘알기 쉽고 쓰기 좋음’이라는 한글의 마음씨를 본받아 그동안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웠던 한글 글꼴의 다양한 용어를 알기 쉽게 정리한다.

책 속에서

코로나-19 이후 가상공간에서의 체험이 늘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어떤 허무도 있다고 생각해요. 보복 소비를 위해 무언가를 구매한다거나 혹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걸 추구하게 된다거나 말예요.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경험이 급증한 것을 보면, 저는 이제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깨끗하게 닦인 쇼윈도에 얼굴을 대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어요. 쇼윈도가 아무리 투명하더라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가질 수는 없잖아요.

—임솔, 「라운드 테이블」, 8쪽.

언제나 접속해 있기에 접속할 필요가 없는 오늘날, 화면 속 디자인의 행보는 신선한 모습이 되기 위한 투쟁 같다. … 개선이 아닌 변화라는 이유로 새롭게 사용되는 시각 디자인 도구는 얼마만큼 유의미할까? 그러니까, 도구는 꼭 새로워야 하는가? 머지않아 시간이 대답해 줄 것이다.

—고민경, 「스크린이라는 텃밭에서」, 41쪽, 57쪽.

디지털 매체에서 이미지는 종이 위에 한 번 더 압축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디스플레이 위에서 그대로 완결됩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제약 없이 질감과 색감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텍스처는 이곳에서 실제보다 더 강한 힘을 갖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매체에서 질감은 더 이상 이미지의 부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박신우, 「INSTAGRAM, IT MATTERS」, 60쪽.

말로 레이블링(labeling)할 수 없는 건 AI가 이미지로 생성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 결국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교육은 “어떤 상황에 대해 얼마나 다른 개념어 혹은 감각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 될까요? 사실 저는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에 위치해 있기도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까,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 걸까.

—홍은주, 「말도 안돼 말은 되지」, 105쪽.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내게 《새로운 질서》는 그 일을 실천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질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을 되살려 컴퓨터의 기본 언어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고 또 주위와 나누는 데 있다.

—민구홍, 「새로운 질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109쪽.

한 권으로 묶일 필요가 없는 웹페이지는 사용자에게 이 각각의 낱장을 같은 선상 위에 무한히 나열하는 집합으로서 보여 주며, 책장을 넘기는 대신 하이퍼링크라는 보이지 않는 제본실을 통해 낱장과 낱장 사이를 탐색하고 아카이빙된 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발견해 엮을 수 있도록 한다.

—박고은, 「디지털 아카이브“ 수집하고 정렬하고 펼쳐 놓기」, 133쪽.

CERN, info.cern.ch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팀 버너스리가 1991년에 만들었다. 월드 와이드 웹을 만들게 된 배경, 만드는 데 쓰인 기술, 만든 사람들 등 초기 웹에 관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질서 그 후, 「새로운 질서 그 후가 소개하는 웹사이트 42선」, 156쪽.

워크숍을 진행한 뒤 ”다시 그래픽 디자인이 그렇게 재밌어졌나?“라는 물음을 받았고, 이에 나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실천하는 방식에는 의뢰인의 작업을 잘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음을 온라인 매체의 창을 열고 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사록, 「윈도우를 열고 열어 가며: 워크숍 《QQ》를 이어 가는 형태」, 180쪽.

컴퓨터로 작업한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를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다시 말해 구겨 넣다 보면 필연적으로 색 공간과 이미지 크기는 압축된다. 이로 인해 작업물의 열화와 같은 문제들을 맞닥뜨리는데, 공유 플랫폼, 디바이스, 디스플레이 각각의 환경으로 인해 결과물의 재현 조건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 공유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이미지 열화와 왜곡 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서서히 커져만 갔다.

—임솔, 「몸 위에서 말하고 닳고 부서지는 그래픽 팝니다」, 196쪽.

각기 다른 언어를 하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 그것이 다국어 글자체 개발의 요점일 것이다. … 「산돌 라바」는 기존 「라바」의 유전적인 특징을 따르면서도 한국에서의 보편적인 사용 환경을 고려하고 한글 고유의 맥락을 따르려 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한글과 라틴의 팽팽한 균형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전복시키지 않으려는 디자이너의 노력이 느껴진다.

—김슬기, 「천칭 위의 라바」, 216, 222쪽.

한홍택과 함께 산미협회의 창립을 주도했던 조능식은 1958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데자인의 생명은 행동하는 데 있다.“라고 밝히며 생활에 의욕을 북돋아 주는 행동미술로서 디자인의 실천성을 강조했다. 김기조는 ”데자인은 행동이다.“라는 표어를 추출했다. … 담담한 어조는 네모꼴 안에 글자가 꽉 들어찬 형태를 통해 시각화됐고, 굵은 획선이지만 꺾임이 둥글게 처리되어 글자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로써 ‘다지인’이 지니는 모호한 경계선은 레터링의 확고한 물질성과 일종의 대비를 이룬다.

—김미혜, 「‘데자인’, 경계에서의 외침」, 236쪽.

차례

인사말—최슬기
여는 글—김린, 김형재

좌담
『글짜씨』 23: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라운드 테이블

도구
스크린이라는 텃밭에서 —고민경
INSTAGRAM, IT MATTERS.—박신우
다중 인터랙션을 통한 온라인 참여형 시스템—심규하

교육
말도 안돼 말은 되지—홍은주
새로운 질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긱이코노미 시대: 시각 디자인을 도구 삼아, 전통 시각 디자인 업역을 넘어—김린

기록
디지털 아카이브: 수집하고 정렬하고 펼쳐 놓기—박고은
웹-레트로—권혜인
새로운 질서 그 후가 소개하는 웹사이트 42선—새로운 질서 그 후

매체
화성에 가까워지기 위한 티슈오피스의 방법: 스프린트!—티슈오피스
윈도우를 열고 열어 가며: 워크숍 《QQ》를 이어 가는 형태—정사록
포스트 에브리싱 월드—박세진
몸 위에서 말하고 닳고 부서지는 그래픽 팝니다—임솔

비평
재단선 경계 흐리기—Paper and Stencil Printing—오혜진
천칭 위의 라바—김슬기
‘데자인’, 경계에서의 외침—김미혜

논고
한글 글꼴 용어 2022—심우진, 정태영

학회
참여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바탕으로 소박하며 진솔한 입장에서 깊은 생각을 나누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각문화 성장이라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2008년 9월 17일 사단법인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국내외 회원의 연구와 교류 그리고 협력을 통해 매년 정기적으로 좌담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학술논문집 『글짜씨』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타이포그래피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