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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짜씨 22: 글자체의 생태계: 생산, 유통, 교육

LetterSeed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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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해 2008년 창립되었다. 『글짜씨』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2009년부터 발간한 타이포그래피 학술지다.

편집자의 글

『글짜씨 22』의 주제는 ‘글자체의 생태계: 생산, 유통, 교육’이다. 한글 글자체 분야는 지난 10여 년간 역사상 어느 때보다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레터링에 기반한 타이포그래피 실험이 광범위하게 펼쳐졌고, 글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글자체 디자인 프로그램이 발전함에 따라 글자체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글자체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도 기존과 다른 조형과 개념의 글자체를 발표했다. 불법적인 사용이 만연하던 시장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점으로 유통 방식이 완연히 달라졌고,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전혀 새로운 생산 및 유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했다. 기존 대학은 물론 대안적 글자체 교육기관의 타이포그래피 교육이 세분화, 전문화 되어 새로운 세대의 글자체 디자이너를 키워내기도 했다.

22호에서는 이러한 글자체의 생산과 유통, 교육 환경에 영향을 준 기관과 개인 들이 전개한 구체적 실험과 실행을 조망했다. 김기창, 장수영은 2010년 이후 발표된 글자체 종류, 학위논문, 그리고 연도별 주요 사건을 전수조사해 ’한국 글자체 디자인 연표‘를 만들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2010년대에 디자인 교육을 받고 글자체 분야에 진입해 활약 중인 새로운 세대의 글자체 디자이너, 강인구, 김슬기, 김주경, 김현진, 박진현, 서예지, 유현주, 조소희를 초대해 글자체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계기부터 학교 안팎의 교육, 글자체 디자인의 미래와 자신의 비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1부’에서는 글자체 생산과 유통의 새로운 체계와 기술을 탐구한다. 글자체 분야 전반에 영향력을 펼쳐온 이용제 디자이너를 만나 마켓히읗, 텀블벅, 실험적 글자체 구독 서비스 ‘오늘폰트’에 이르는 대안적 유통 실험에 대해 들었다. 강인구는 「온라인 시대의 글자체 유통 방식」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크라우드펀딩, 단일 결제 서비스를 비교하고, 사용자에게 유리한 서비스와 생태계의 지속성을 고민한다. 강주연은 글자체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꾼 산돌 클라우드 서비스의 창안 과정과 가능성, 글자체 디자이너와의 공생을 위한 과제를 조명하고, 구모아는 체계적 창작을 위해 다양한 연구와 투자를 병행하는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와 AG Font에 대해 설명한다. 신덕호는 「2000-2020 소규모 글자체 회사 관찰기」에서 유럽 독립 글자체 회사의 유통 흐름을 꼼꼼히 기록하고, 이노을은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매개로 글자체를 인큐베이팅하는 ‘퓨처 폰트’를 자세히 소개한다. 글자체 회사 ‘디나모(Dinamo)’와의 인터뷰에서는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홍보 방식과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으로 연결된 작업 방식에 관해 물었다.

‘2부’에서는 국내외 글자체 디자인 교육 현황을 살폈다. 박진현은 한글 타이포그래피 대안 교육의 대표적 주체인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의 역사와 성취, 그곳에서의 경험을 썼다. 노은유는 10여 년간 대학에서 글자체 디자인 교육을 담당하며 축적한 커리큘럼과 수업 과정을 자세히 풀었고, 함민주는 유럽 글자체 디자인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레딩대학교와 네덜란드 왕립예술학교의 글자체 디자인 석사 프로그램을 비교했다.

‘3부’에서는 안삼열, 김태헌, 류양희와 같이 2010년대 글자체 디자인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해 2000년대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글자체 디자인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는지 당대적 시각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개별 글자체 디자인과 사건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독자의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글짜씨 22』 본문의 시공을 오가는 선택적, 유기적 독서 또한 가능하다.

그동안 『글짜씨』 는 타이포그래피 학술지로서 연구자, 디자이너의 연구 성과를 기록하고 시의성 있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이러한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이번 호에서는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으로만 여기는 디자이너와 독자들이 공감할만한 흥미롭고 구체적인 현장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비평을 통해 학술 영역과 무관하다고 여겨온 이들이 타이포그래피와 『글짜씨』를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 속에서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히읗’ 같은 건 없었어요. 혼자 과실에서 모눈지에 손으로 그린 글자와 이력서를 들고 산돌 면접에 가서 취업하고, 퇴사하고 프리랜서 하다가 스튜디오 하고. (중략) 보통 그래픽 디자인 신(scene)에서는 소규모 에이전시나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경력이 쌓이면 연봉이 올라가고 이직하거나 독립해 창업하는 식으로 성장해 나가잖아요. 글자체 같은 경우에는 산돌이나 윤디자인에 들어갔다, 그럼 더 갈 데가 없는 거죠.

「라운드 테이블」, 25쪽

처음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릴 때는 글자체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막 도배하듯이 글을 썼어요. 유통에는 이런 문제가 있고, 저작권은 이런 문제가 있고,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썼는데요. 꽤 많은 사람들에게 글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주는 게 너무 좋았다는 감상을 들었어요. (중략) 물꼬를 트는 것이 목표였어요. 글자체 디자인을 해서 어떤 방법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해결 시도 중 하나였죠.

「이용제 인터뷰: 마켓히읗, 텀블벅, 그리고 오늘폰트를 통한 대안적 글자체 유통 실험」, 51쪽

글자체 클라우드 서비스는 산돌구름으로 올해 9년차에 접어들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글자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 자리 잡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어릴 때부터 접한 세대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해진 서비스의 시작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2012년 (클라우드 서비스) 기획안을 들었던 대다수가 ‘지금도 많이 쓰지 않는 글자체를 누가 구독해서 쓰냐?’고 반문했고, 모두가 쉽지 않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러한 우려와 의문 속에 서비스는 론칭했고 9년이 흘렀다. 그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시작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게 되는지를.

강주연,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과 한글 글자체 디자인 생산의 관계」, 75쪽

나의 대학 시절에는 학생끼리 모여 만든 ‘한글꼴연구회’라는 소모임을 통해 동기, 선후배들과 교류하며 함께 글자체 디자인에 관해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내부에는 한글꼴연구회뿐만 아니라 다른 디자인 분야 소모임이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시각디자인학과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소모임이 세부 전공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은 단순히 교수와 학생의 교류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그 안에 모인 학생들이 상호 작용하며 커 나가는 과정 또한 대학이 존재하는 의미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노은유, 「국내 글자체 디자인 교육에 대한 나의 경험」, 149쪽

페터르 빌랴크의 ‘글자체와 언어’ 수업은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굵기와 폭이 아닌 새로운 기준으로 구성된 글자체 가족 형태 만들기, 글자체의 세로 비율 변화에 따른 글자체 이미지 변화 실험, 아주 못생긴 글자 만들기 등이 있다. 아주 못생긴 글자 만들기는 의외로 많은 학생이 실패한다고 한다. 또한 글자체 스타일을 다른 문자에 적용해 보는 실험을 통해 문화권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도 배운다.

함민주, 「2010년대 유럽의 글자체 디자인 교육: 영국 레딩대학교와 네덜란드 왕립예술학교를 중심으로」, 164쪽

글자체의 가격에 대해 생각하면 열심히 작업하다가도 간혹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팔지 말지 고민될 정도니까요. … 제 글자체는 다른 것들보다 조금 높은 가격을 받고 있어요. 「안삼열체」가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글자체는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꼭 필요한 글자체라면 이 정도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안삼열체」로 제품 로고 수십 개 만들어도 한 달에 1만 원만 내면 되는 방식이죠. 글자체 디자이너의 노고를 안다면 누구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에요.

「안삼열 인터뷰: 고전과 현대를 절충하는 본문용 글자체를 향해」, 177쪽

나는 각 책이 존재 목적을 달성하고 가치를 더하는 데 있어 그 책만의 최적의 구현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천생연분과도 같은 만듦새에 도달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책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재채기 참기보다 어렵다.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에 최적화된 출판 산업의 주변부에서 현재의 인쇄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도전을 서슴지 않는 디자이너들의 욕심 덕분에 나는 큰 만족감을 얻곤 한다.

우유니, 「상자 속 낱장의 묘술」, 211쪽

차례

기획
김기창, 장수영 ● 한국 글자체 디자인 연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좌담
『글짜씨』 22호 라운드 테이블

1부 – 글자체의 유통
편집부 ● 이용제 인터뷰: 마켓히읗, 텀블벅, 그리고 오늘폰트를 통한 대안적 글자체 유통 실험
강인구 ● 온라인 시대의 글자체 유통 방식
강주연 ●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과 한글 글자체 디자인 생산의 관계
구모아 ●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디자인 방법과 AG Font
신덕호 ● 2000–2020 소규모 글자체 회사 관찰기
편집부 ● 더 디나모 업데이트: 투명한 글자체 생태계를 위하여
이노을 ● 퓨처 폰트의 글자체 유통 실험

2부 – 글자체의 교육
박진현 ● 학교 밖의 글자 디자인 교육
노은유 ● 국내 글자체 디자인 교육에 대한 나의 경험
편집부 ● 디자인 대학교의 타이포그래피 교과 현황 (2010–현재)
함민주 ● 2010년대 유럽의 글자체 디자인 교육: 영국 레딩대학교와 네덜란드 왕립예술학교를 중심으로

3부 – 글자체의 형태
편집부 ● 안삼열 인터뷰: 고전과 현대를 절충하는 본문용 글자체를 향해
편집부 ● 김태헌 인터뷰: 과거에 승리하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편집부 ● 류양희 인터뷰: 내 이름으로 발표한 글자체지만 실은 가족의 팀 작업

비평
우유니 ● 상자 속 낱장의 묘술
조소희 ● 이처럼 묘하고 낯선 신세계
제임스 채 ● 집합 이론

논고
김민지 ● 폴드북을 활용한 다시점 이미지 표현
이재환 ● 그래픽 디자인 작품의 소비 및 배포 창구 변화와 그 형태적 특성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바탕으로 소박하며 진솔한 입장에서 깊은 생각을 나누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각문화 성장이라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2008년 9월 17일 사단법인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국내외 회원의 연구와 교류 그리고 협력을 통해 매년 정기적으로 좌담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학술논문집 『글짜씨』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타이포그래피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