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글짜씨 15: 안상수

LetterSeed 15 : Ahn Sang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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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는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해 2008년 창립되었다. 『글짜씨』는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2009년 12월부터 발간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저널이다.

『글짜씨 15: 안상수』에서는 한글 그래픽 디자인계의 거장, 안상수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이루어진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 문화 생태계에서 ‘범안상수’는 분명 ‘다수’ 혹은 ‘주류’다. 하지만 1952년생으로 올해 만 65세인 안상수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을 대표하는 스타 디자이너임에도 자발적 비주류의 행동 양식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소수’다. 올해 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14일부터 5월 14일까지 〈날개. 파티〉전이 열렸다. 본 전시는 SeMA 그린(Green) 기획전의 한 갈래로 안상수가 디자이너로서, 교육자로서 쌓아온 업적과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 파주타이포그래피(PaTI)의 행보를 일목요연하게 선보였다. 안상수는 자신의 오랜 이력을 담론·이론화하며 원로로 자리매김하기보다 여전히 부지런하게 ‘사건’을 만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에 큰 획을 긋고,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날개로 활동 중인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활동상을 반추해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에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번 『글짜씨 15: 안상수』는, 비단 ‘개인 안상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발전상을 추출하는 또 하나의 총체적 활동이 될 것이다.

편집자의 글

안상수,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거장
그 인간적 면모와 그가 남긴 디자인계의 커다란 발자국을 반추하다

“그는 당돌한 사람이다. 실험을 좋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조갑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디자이너는 사회에 반응하는 존재로서 시대정신을 읽고 디자인으로 새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시대정신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디자이너를 뽑으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안상수를 첫째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안상수체’다. 1980년 전후로 디자이너들은 탈네모꼴 글자체를 발표했다. 아마도 당시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디자인 분위기가 형성된 탓일 것이다. 안상수체는 ‘살아남은 자(字)’이다. 안상수체가 가장 먼저 발표된 탈네모꼴 글자체는 아니지만 글자체 사용 환경 변화에 맞춰 조합형 폰트로, 나중에는 완성형 폰트로 만들어졌다. 현재 안상수체에는 여러 스타일이 추가되어 있다. 안상수체는 한글 폰트 중에서 시대를 상징하는 글자체로 인정받는다. 두 번째 이유는, ‘교육자’이다. 교육자는 늘 새로워야 한다. 새로운 경험이 없으면, 깊이도 넓이도 확장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안상수의 수업은 늘 앞서가는 현장이다. 안상수의 수업은 전통적인 기술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디자인에 대한 사고를 크게 하는 과정이다. 시대를 읽는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자, 행동으로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수업이다.

파티의 날개, 날개의 파티
안상수, 다시 시대를 꿈꾸다

만 60세, 안상수의 시간은 리셋되었다. 노후가 보장된 교수직 정년을 몇 년 앞둔 갑작스런 퇴직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해진 레일 위를 쉼 없이 달리는 고속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작은 꼬마 자동차로 갈아탄 것이다. 이제 그는 공식적으로 이름 뒤에 ‘교수’라는 직함이 따라붙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날개’가 되었다. 이름에서 해방된 것이다. 나이와 경력으로 점철된 어떤 위압감이나 권위 의식 대신, 친근한 이름이자 상징이 되었다.

날개는 오늘도 이른 새벽 꼬마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다. 파주에 오면 제일 먼저 이상집을 한 바퀴 돌고, 본인의 집무실인 날개집에 들어가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매일 작은 마당에 심어진 둥굴레 꽃을 가꾸며, 향이 좋은 차를 끓여 마신다. 날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평일이든 주말이든 늘 파주로 온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닌다. 늘 가지 않았던 길을 다니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숨은 공장이나 스튜디오, 가게들을 발견한다. 그는 특유의 호기심과 열려 있는 마음으로, 늘 눈과 귀를 열어두고 주변을 관찰하고 포용한다. 날개는 최근 스스로 자신의 또 다른 호를 ‘동파(東坡)’라고 지었다. 이는 ‘동쪽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동(東 )’은 동아시아를, ‘파(坡)’는 언덕으로, ‘파주(坡州)’의 ‘파’자와 같다. 날개는 예전부터 파티의 장표를 풀어 ‘꿈언덕’이라고 부른다. 파주, 그리고 파티를 ‘새내기들이 비빌 언덕이자, 그들의 꿈이 움트는 언덕’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잘 안다. 우리의 뿌리와 제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이 작은 나라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온누리로 뻗어나가는 것을 염원한다. 날개 그리고 동파. 이 두 이름에 모두 파티가 담겨 있고, 곧 그의 염원이 담겨 있다. 동아시아의 꿈꾸는 언덕에서,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안상수,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를 만나다

이 책에서는 안상수의 작품 도판, 매체에 공개됐던 원문, 미공개 사진 등을 충실히 다루어 그동안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최성민, 전가경, 김병조, 문장현 등 디자인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필자들의 글을 실어, 안상수의 발자취에 대한 생생하면서도 다분히 전문적인 분석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은 실험으로 가득하다. 디자이너에게 실험이란 숙명이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그를 “우리 디자인계의 정말 희귀한 모더니스트”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탐험가이다. 어딘가 안착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안전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어딘가 적응이 될 만하면 험한 길을 찾아 훌쩍 떠나며 “재밌다”고 말한다. 혁명이 없는 시대에 스스로 디자인계의 혁명을 만들어가며 사는 그는 진짜 모더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날개’인 것이다.

책 속에서

그러나 『보고서\보고서』의 미감은 여전히 흥미롭다. 『보고서\보고서』는 이제 동시대의 미감으로부터 조금 멀리 있지만, 과거를 향하는 그 파괴적 동력은 지금 보아도 독창적이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호를 거듭하면서 해체의 대상을 바꿔가며 조형 감각을 발전시키는 모습은 모범적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41쪽, 김병조 「낯설고 익숙한 『보고서\보고서』」에서

안상수체 또한 30여 년 전 처음 만들어진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했고 확산했다. 이 확장과 확산은 자유로웠고, 이 자유는 자연스레 또 다른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늘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고치고 다듬어 나가는 것, 시대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 등 안상수체의 태도는 디자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56쪽, 노민지 「안상수체의 확장성」에서

여기에 대해 내가 지켜온 입장은 글자가, 디자인이, 타이포그래피가 주체가 되어서 다른 분야를 모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숨길 수가 없다. 나는 어떠한 작은 것도 주인이 될 수 있는 문화가 좋다고 믿는다. 장맛보다 뚝배기라고, 음시에서 그릇도 중요하듯, 텍스트만큼 타이포그래피도 중요하고,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375쪽, 안상수 김병조 「『보고서\보고서』 전에」에서

날개가 파티를 결심했을 때 늘 이야기하는 문구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는 “늦지 않다”는 말로, 그는 이 문장을 모암 윤양희 선생이 쓴 글씨 원본으로 작게 프린트해 늘 작업실 방에 붙여놨었다. 이 문장은 ‘망양보뢰(亡羊補牢)’와도 뜻을 같이 하는데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 (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라는 말로 ‘일이 잘못 되어도 바로 잡는다면 늦지 않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생각 그만하고 해버려!”라는 뜻인데, 박활민 디자이너가 그린 ‘삶고양이’그림 시리즈 중 하나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날개는 파티를 시작하기 전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았을 때 이 문장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올해 첫 한배곳 과정의 졸업생이 나왔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날개의 작가 인생과 파티의 5년을 정리하는 전시도 가졌다. 날개도, 함께한 배우미도, 스승들도 아마 함께여서 이 불확실한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492쪽, 박하얀 「파티의 날개, 날개의 파티」에서

「홀려라」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이질적 요소 간의 결합이 제시되었다. 초성은 안상수체를 그대로 따와서, 기계적이고 근대적인 이성의 내적 규칙을 따르는 추상주의의 성격을 보여준다. 중성과 종성은 재질감과 운동성이 강한 표현주의의 성격을 드러낸다. 민화의 몸짓 표현을 따름으로써 글자란, 혹은 한글이란 학자와 전문가뿐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는 의식을 보인 것이다.

528쪽, 유지원 「홀려라」에서

그러나 무엇보다 뜻깊은 점은, 파티의 교육 이념이 현대 운동의 이상과 넓게 겹친다는 사실이다. “실사구시를 추구하지만 배움의 이상을 특수성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제 땅의 얼을 바탕 삼아 디자인 배움을 추구하되, 현대적인 것에 예민하고 얼의 전위를 추구한다.” 이 같은 선언은 계몽의 가치를 선명히―얼마간은 시적으로―표명한다.

558쪽, 최성민 「모순―사이로―어슬렁대며」에서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그를 “우리 디자인계의 정말 희귀한 모더니스트”라고 평가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더불어 필자는 그를 탐험가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어딘가 안착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안전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어딘가 적응이 될 만하면 험한 길을 찾아 훌쩍 떠나며 “재밌다”고 말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서는 몽상가 같다. 모두가 자기 역할을 가지고 조화롭게 사는 세상은 스머프 마을 밖에는 없다. 어쩌면 빨간 모자는 정말 파파스머프를 닮고 싶었던 마음이 표현일지 모르겠다. 혁명이 없는 시대에 스스로 디자인계의
혁명을 만들어가며 사는 그는 진자 모더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아니 모더니스트라는 용어에도 서구적 시선이 깔려 있다. 그냥 ‘날개’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586쪽, 김종균 「파파스머프를 위한 변명」에서

차례

논고
김병조|낯설고 익숙한 『보고서\보고서』
노민지|안상수체의 확장성
강승연, 안병학|탈네모틀 글자꼴 ‘샘이깊은물체’의 가치와 의의
최재영, 권경재, 손민주, 정근호|메타폰트를 이용한 차세대 CJK 폰트 기술
김형재|계획과 실행의 플랫폼으로서 기능적 공간을 재맥락화하는 문서이 타이포그래피: 시청각의 시각 정책
배민기|스크린 매체와 인쇄 매체의 관계 설정을 전제한 그래픽 디자인 교육 과정의 결과와 확장 가능성

안상수
박지수|사진 찍히는 자, 안상수
강현주|안상수가 한국 그래픽 디자인 문화 생태계에 미친 영향: 겸손하게 편재하며 디자인 문화
혁신하기
전재1|한글자모의 증인 최정호
전가경|한글 타이포그래피를 향한 실천적 다짐들: 안상수의 잡지 아트 디렉션
전재2|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국내 신문 디자인
전재3|얀 치홀트의 비대칭적 타이포그라피
전재4|우리나라 잡지 에디토리얼 디자인의 현주소
전재5|아트 디렉터 안상수, 『디자인』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인터뷰
전재6|한글 타입페이스 연구 어디까지 왔나
이용제|시대정신을 읽고 새기는 디자이너를 보고 배웠다
문장현|안그라픽스와 안상수
전재7|좋고 짜릿한 레이아웃을 기대하며
안상수, 김병조|『보고서\보고서』전에
안병학|홍익대학교 시각 디자인과의 디자인 교육과 안상수
전재8|실험시대 선언
전재9|타이포그라피적 관점에서 본 李箱 시에 대한 연구
전재10|이코그라다 디자인 교육 선언, 서울 2000
전재11|한글, 디자인 그리고 어울림
박하얀|파티의 날개, 날개의 파티
김동신|선생님, 페미니즘을 읽으십시오
유지원|「홀려라」
최성민|모순―사이로―어슬렁대며
김종균|파파스머프를 위한 변명

학회
글짜씨 15 참여자
학회규정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글자와 타이포그래피를 바탕으로 소박하며 진솔한 입장에서 깊은 생각을 나누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각문화 성장이라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2008년 9월 17일 사단법인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국내외 회원의 연구와 교류 그리고 협력을 통해 매년 정기적으로 좌담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학술논문집 『글짜씨』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타이포그래피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