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거장
그 인간적 면모와 그가 남긴 디자인계의 커다란 발자국을 반추하다
“그는 당돌한 사람이다. 실험을 좋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조갑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디자이너는 사회에 반응하는 존재로서 시대정신을 읽고 디자인으로 새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시대정신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디자이너를 뽑으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안상수를 첫째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안상수체’다. 1980년 전후로 디자이너들은 탈네모꼴 글자체를 발표했다. 아마도 당시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디자인 분위기가 형성된 탓일 것이다. 안상수체는 ‘살아남은 자(字)’이다. 안상수체가 가장 먼저 발표된 탈네모꼴 글자체는 아니지만 글자체 사용 환경 변화에 맞춰 조합형 폰트로, 나중에는 완성형 폰트로 만들어졌다. 현재 안상수체에는 여러 스타일이 추가되어 있다. 안상수체는 한글 폰트 중에서 시대를 상징하는 글자체로 인정받는다. 두 번째 이유는, ‘교육자’이다. 교육자는 늘 새로워야 한다. 새로운 경험이 없으면, 깊이도 넓이도 확장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안상수의 수업은 늘 앞서가는 현장이다. 안상수의 수업은 전통적인 기술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디자인에 대한 사고를 크게 하는 과정이다. 시대를 읽는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자, 행동으로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수업이다.
파티의 날개, 날개의 파티
안상수, 다시 시대를 꿈꾸다
만 60세, 안상수의 시간은 리셋되었다. 노후가 보장된 교수직 정년을 몇 년 앞둔 갑작스런 퇴직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해진 레일 위를 쉼 없이 달리는 고속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작은 꼬마 자동차로 갈아탄 것이다. 이제 그는 공식적으로 이름 뒤에 ‘교수’라는 직함이 따라붙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날개’가 되었다. 이름에서 해방된 것이다. 나이와 경력으로 점철된 어떤 위압감이나 권위 의식 대신, 친근한 이름이자 상징이 되었다.
날개는 오늘도 이른 새벽 꼬마 자동차를 타고 출근한다. 파주에 오면 제일 먼저 이상집을 한 바퀴 돌고, 본인의 집무실인 날개집에 들어가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매일 작은 마당에 심어진 둥굴레 꽃을 가꾸며, 향이 좋은 차를 끓여 마신다. 날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평일이든 주말이든 늘 파주로 온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닌다. 늘 가지 않았던 길을 다니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숨은 공장이나 스튜디오, 가게들을 발견한다. 그는 특유의 호기심과 열려 있는 마음으로, 늘 눈과 귀를 열어두고 주변을 관찰하고 포용한다. 날개는 최근 스스로 자신의 또 다른 호를 ‘동파(東坡)’라고 지었다. 이는 ‘동쪽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동(東 )’은 동아시아를, ‘파(坡)’는 언덕으로, ‘파주(坡州)’의 ‘파’자와 같다. 날개는 예전부터 파티의 장표를 풀어 ‘꿈언덕’이라고 부른다. 파주, 그리고 파티를 ‘새내기들이 비빌 언덕이자, 그들의 꿈이 움트는 언덕’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잘 안다. 우리의 뿌리와 제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이 작은 나라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온누리로 뻗어나가는 것을 염원한다. 날개 그리고 동파. 이 두 이름에 모두 파티가 담겨 있고, 곧 그의 염원이 담겨 있다. 동아시아의 꿈꾸는 언덕에서,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안상수,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를 만나다
이 책에서는 안상수의 작품 도판, 매체에 공개됐던 원문, 미공개 사진 등을 충실히 다루어 그동안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최성민, 전가경, 김병조, 문장현 등 디자인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필자들의 글을 실어, 안상수의 발자취에 대한 생생하면서도 다분히 전문적인 분석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은 실험으로 가득하다. 디자이너에게 실험이란 숙명이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그를 “우리 디자인계의 정말 희귀한 모더니스트”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탐험가이다. 어딘가 안착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안전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어딘가 적응이 될 만하면 험한 길을 찾아 훌쩍 떠나며 “재밌다”고 말한다. 혁명이 없는 시대에 스스로 디자인계의 혁명을 만들어가며 사는 그는 진짜 모더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날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