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평론가’ 최 범, 한국 디자인에 메스를 대다
“내가 우회의 나선을 그리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위상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소비 사회의 풍요 속에서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디자인 제도도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갔다. 이제 디자인은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뭔가 심대한 모순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소비 사회와 디자인의 화려한 기표와는 달리 정작 내가 살아가는 일상은 매우 거칠고 메마르며 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라는 말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데 일상은 바로 코앞에서 알몸을 뒹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 디자인이야말로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가 1980년대 ‘분노의 시대’를 지나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디자인을 다시 움켜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놈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가 디자인을 놓아둔 채, 짧으면서도 긴 우회의 나선을 그리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위상은 달라져만 갔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승용차가 늘어나는 소비 사회의 풍요 속에서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생각보다 비대해졌다. 디자인 제도 역시 그대로 있지만은 않았다. 속된 말로 그가 잠시 디자인을 외면한 사이, 디자인은 ‘우리 시대의 유행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최 범은 바로 여기에서 이 땅의 디자인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디자인은 뭔가 커다란 모순을 안고 있었다. 한없이 화려한 디자인의 기표는 허공을 부유하는 데 급급했다. 나아져야 할 우리의 일상은 날로 부박해져만 갔다. 최 범은 우리에게 잠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디자인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금, 우리의 삶이 가난했던 지난날에 비해 더욱 더 추레해져만 가는 이유를 이 책과 함께 짚어보길 원하는 것이다.
‘한국 디자인’을 향한 소리 없는 외침
최 범의 글은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를 보는 듯, 조용하다. 한 번쯤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높일 법도 한데, 그는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겨누는 언어의 끝은 그 어떤 이에 비해 예리하기 그지없다. 정체를 알 수 없이 떠도는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대중 소비 사회 속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등 세부적인 카테고리로 이루어진 ‘한국의 근대성과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화두 역시 그의 날카로움을 피하지 못한다.
급변하는 한국 디자인의 현실과 변화 역시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다. 낯간지러운 미사어구로 치장된 지식과 지식 산업이 갖는 허구성은 그가 허물고 싶은 또 하나의 허황된 개념에 불과하다.
최 범이 디자인을 향해서만 소리 없는 분노를 쏟아내는 건 아니다. 200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 감독을 역임한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한국 현대 공예의 일탈과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공예에 대한 해박한 그의 식견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매몰된 공예를 넘어 동시대성을 회복하는 공예를 찾아 나서거나, 공예를 넘어선 공예 전시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