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후의 한국 디자인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더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세계화’ 이후 한국 디자인이 더 나빠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커진 반면 그것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세계화’ 이후 디자인 담론이 크게 증폭했지만 정작 현실은 더욱 천박해지고 있는 것이 한국 디자인의 문제이다.
1960년대 수출 진흥의 수단으로 출발한 한국의 디자인은 1990년대 이후 세계화 바람 속에서 또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21세기는 디자인의 시대라는 구호들이 외쳐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발밑의 디자인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어찌 보면 더욱 나빠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쇼! 쇼를 하라!’
이 광고 카피만큼 지금 이 땅의 디자인을 더 잘 말해주는 것은 없다. 세계화와 디자인 혁명과 경쟁력의 논리가 빚어내는 것은 한결같이 과장된 제스처이거나 스펙터클로서의 디자인뿐이다. 디자인은 급기야 산업의 도구를 넘어서 정치적인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화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애드벌룬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모두 머리 위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들의 발은 여전히 누추한 현실에 쳐박혀 있다. 디자인 현상은 날로 증폭되어가지만 디자인 경험은 날로 빈곤해지고 있다. 구호에서 시작하여 포장이 되고 어느덧 쇼가 되어버린 디자인, 지금 이 땅의 디자인은 점점 그 실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은 지역화이다. 세계화는 지역화와 동시에 진행되며, 이는 우리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화, 좀 더 정확하게 19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지방 자치 제도는 이 땅의 디자인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중앙 집중화로 사실상 해체되어버린 지역들은 지방 자치제로 인해 갑자기 지역 정체성 찾기에 분주해졌고, 그런 가운데 가장 손쉬운 해결사로 디자인이 동원되었다. 지역마다 생뚱맞은 CI와 어릿광대 같은 캐릭터가 선보이고 앞다투어 지역 축제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지역 정체성 찾기, 아니 사실 정체성 지우기 작업은 너무나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 드디어 이 나라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완전한 문화의 획일화, 이미지의 평준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공공 디자인이 지역 CI와 축제의 후속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자체들마다 간판을 바꾸고 가로등에 까치나 사과를 집어넣고 저마다의 청계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디자인이 사적 영역에만 치우쳐온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공공성과 공공 디자인은 너무도 절실한 과제이지만, 이것조차도 개발주의의 장식품 또는 지역 정치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공공 디자인에서 공공성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가 좀처럼 민주화되지 않듯이 세계화와 지역화 바람이 분다고 해서 디자인이 어느날 갑자기 세계적이거나 또는 지역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모든 도시들마다 세계 일류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세계화이며 광고판에 지역 특산물을 크게 그려 붙이는 것이 지역화로 이해된다. 시민들의 미의식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상품 미학의 세례로 날로 세련되어가지만, 공공 영역에서의 그것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 시민 사회의 자율성이 부재한 곳에는 관료주의 미학이 대신 들어선다. 가로등에서 육교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공식적인 디자인이 공공적인 디자인을 밀어내며 우리의 도시를 뒤덮고 있다.
구호와 정치적 포장과 쇼가 되어갈수록 디자인은 더욱 부정직해지고 있다. 지금 한국 디자인계는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다. 디자인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외치던 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디자인의 공공성과 문화를 이야기한다. 공공 디자인은 디자인의 블루오션이 되고 관료주의, 한탕주의와 결합하여 1980년대의 CI 붐 이후 또 한번의 디자인 비즈니스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필시 이 땅의 디자인 마케팅 이론은 새로 쓰여야 할 것이다. 과연 수출 제일, 미술 수출을 외치던 시대로부터 세계 일류, 선진 조국, 명품 도시를 외치는 시대로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우리의 도시는 거듭되는 난개발로 황폐화되어가고 실무 디자이너들은 3D 업종이라며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몸값 비싼 외국 디자이너들을 초청하여 질펀한 디자인 잔치를 열고 있다. 디자인 올림픽이라는 해괴한 행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현실에서 한국 디자인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디자인은 언제 발을 땅에 딛게 될 것인가. 한국 디자인은 언제 문화가 될 것인가. 한국 디자인은 언제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세계화라는 이름에 주박되어 있는 이때, 지금 이 땅의 디자인 현실을 정직하게 보라. 중요한 것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허상이 아니라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