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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질, 변형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본도록): 10 000년의 디자인

10 000 years of design - Man, Matter, Metamorph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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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질, 변형으로 살펴본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모두의 일상에 녹아든 도구에서 내일의 디자인을 발견하다

이 책 『인간, 물질, 변형: 10,000년의 디자인』은 2018년에서 2019년에 걸쳐 핀란드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인간, 물질, 변형: 10,000년의 디자인〉 도록의 한국어판이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을 기념해 출간되었다. 핀란드 전시를 기획한 건축가 플로렌시아 콜롬보와 산업 디자이너 빌레 코코넨은 이 전시의 목적에 대해 “사물의 기원을 연구하거나 연대기적 관점에서 기술적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자원의 일시적 복합성’에 대하여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 책은 빙하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는 1만 년의 핀란드 디자인을 다루고 있지만 고고학적 관점에서 연도별로 소개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사물에 초점을 맞춰 자유롭게 그 기원에 대해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위해 과거의 유물과 비슷한 형태의 현대의 제품을 함께 배치하거나 형태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만들어진 사물을 함께 배치해 과거와 미래가 얼마나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게 한다. 또한 핀란드에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생하면서 도구를 만들어내고 변형해 모두의 일상에 녹아든 오늘날의 핀란드 디자인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흐름과 앞으로 디자인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의 글

물질에서 도구로 도구에서 디자인으로
핀란드 디자인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

이 책 『인간, 물질, 변형: 10,000년의 디자인』은 핀란드전의 전시 카탈로그와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카탈로그는 총 6부로 나누어져 1부 ‘인간이 사물을 만들고 사물이 인간을 만들다’에서는 인간과 물질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며 생존을 위한 도구를 만들어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2부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에서는 삶의 방식과 물질이 어떤 연관성이 있고 사물의 형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3부 ‘사물의 생태학’에서는 삶의 생계 시스템을 통해 공통된 물질 문화와 기술, 장인정신의 탄생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탄생한 도구들의 발전을 보여주며 4부 ‘전달’에서는 도구의 다용도성과 함께 독특한 시간성이 반영된 원형이 어떻게 새로운 유형으로 발전되어 보편적으로 사람들 생활에 자리 잡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5부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에서는 물질 문화와 주술, 그리고 바이오를 다루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현상과의 상호작용에 관해 이야기하고 6부 ‘운영체계’에서는 사물에 투영된 사회 집단의 가치 체계를 살피면서 인간과 사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카탈로그 말미에는 각 부에 해당하는 해설과 함께 핀란드문화재연구원,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속실 관계자 인터뷰가 실려 있어 이 책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고고학적 연대가 아닌 인간과 물질이 어떻게 소통하고 변형되었는지에 중점을 둔 이러한 구성은 과거가 어떤 과정에서 이어져 현재를 이루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건축가 알바 알토의 〈L자 다리〉 〈사보이 꽃병〉
피스카스 사의 〈오렌지색 가위〉, 마리메코 사의 〈요카포이카〉 셔츠 등
자연과 기술의 발전이 그대로 반영된 핀란드의 보편적 디자인

핀란드 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이유는 건축가 알바 알토의 〈사보이 꽃병〉처럼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마리메코의 〈요카포이카〉 셔츠처럼 사람들의 생활에 맞춰 사용되어온 그 DNA가 그대로 이어져 보편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핀란드는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이외에 ‘나무 시대’를 추가해야 할 정도로 풍부한 삼림과 수자원을 지닌 나라로 핀란드 땅이 융기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삶은 자연과의 공생이었다. 그러한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의자로 사용하던 것이 지금의 스툴과 의자가 되었고 옹이를 파 사용하던 것들이 그대로 일상 속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핀란드 디자인에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통용되는 보편적 디자인이 많은 이유는 어쩌면 자연에 순응하며 생활에 맞는 도구를 발명하고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맞춰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핀란드 디자인의 뿌리 깊은 원형과 새로운 유형을 발견하며 앞으로도 통용될 보편적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책 속에서

10 000년 전, 핀란드 땅이 융기한 이래 그 안에서는 삶을 위한 치열한 움직임이 탄생하였다. 삼림과 호수, 수많은 동식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역시 생태계의 한 요소로서 등장하였다. 10 000년의 시공간에서 탄생한 석기, 토기, 뼈 도구, 목기, 현대 디자인 제품과 신소재 산업기술까지 이 모든 것은 치열한 움직임이 만들어낸 다양한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삶을 위해 물질을 활용하고, 이러한 물질 문화가 다시 인간에게 끼친 영향을 인간과 사물 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살펴본다.

배기동(국립중앙박물관장)

도구는 우리 신체의 연장이다. 인간은 이러한 보충적 사물을 신체 범위에 포함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동작이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석기시대 유물을 직접 사용하면서 그것의 물리적 특징을 밝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형태의 세부속성에서 도구의 기능적 의도와 인체공학적으로 고려되었던 사항이 무엇이었는지 직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카탈로그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 5쪽

나무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원자재였다. 숲 생태계 자원을 절대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에서 목재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건, 에너지, 건축, 옷 심지어 영양 보충제의 기본 원료로 쓰였다. 목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특성이 활용되었다. 또한 나무의 크기는 사물의 규격을 결정하였다.

카탈로그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 41쪽

과거의 도구들은 부품을 교환하도록 제작되지는 않았다. 여러 용도로 사용된 도구들도 있었지만, 기본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 예비 부품이라는 개념은 세계적 규격화가 낳은 결과이다. 과거에는 도구가 사용자의 신체에 맞춰 제작되었고, 얼마나 잘 맞추어져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었다. 또한 도구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요소도 더해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편적 기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도구로서 인정된다.

카탈로그 「사물의 생태학」, 129쪽

과거에 사용된 재료 중 일부는 그 다기능성 때문에 인공재료를 이용하여 현대의 산업 문화 속에서 계승된다. 이 부츠는 가죽과 자작나무 껍질이 현대적 물질로 재해석된 두 사례에 해당한다. 대량소비가 발달함에 따라 기존에 존재해온 일부 규격화된 형식의 효율적 형태와 구성방식은 거의 동일한 결과를 낳도록 재현되었다.

카탈로그 「전달」, 204쪽

‘컴퓨터(computer)’는 복잡한 계산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행동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는 코딩을 배우고 일상은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으며,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매일 일어나는 의식(儀式)이 되었다. 컴퓨터는 개개인의 제단(祭壇)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마우스는 스크린 위에서 흔드는 오늘날의 마법 지팡이다.

카탈로그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 249쪽

정보 수집은 과거부터 사용되어온 관리 도구이다. 통계의 기원은 ‘국가의 상황에 대한 과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으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진다. 핀란드국가통계연구소(Finnish National Statistics Institute)는 1865년에 세워졌다. 주요 분야의 발전 양상에 대한 최신 정보는 총리실과 협력해 제작한 보고 시스템인 〈핀디케이터〉를 통해 제공된다.

카탈로그 「운영체계」, 304쪽

물질에 대한 인간의 행위는 상호호혜적인 관계 맺음을 동반한다. 그 둘 사이에는 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 주고받음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물질의 속성은 인간이 형태를 만들어내거나 기능을 투영하는 작업을 위한 역동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인간이 물질의 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식도 함께 시작되었다. 물질을 변형하는 능력은 초자연적 능력으로 여겨졌다. 물질을 능숙하게 다루고 가공하는 능력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그 과정의 결과물인 유물은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텍스트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 309쪽

재활용의 개념에는 물질이 생산물에서 또 다른 생산물 그리고 물질로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된다. 혹은 그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순환(cycle, 사이클)의 개념은 지속해서 변화한다는 해석을 낳는다. 순환에 대하여 언급할 때, 시간과 물질 사이의 대화는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독특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사이클’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주기’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연속 혹은 반복의 의미를 함유하는 일정한 시간 간격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이 개념에 관한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텍스트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 319쪽

핀란드에서는 500m² 이상의 넓이를 가진 호수와 물길이 18만 7,999개에 이른다. 핀란드 영역에 물이 이렇게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상황이 초반에는 정착민들에게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했겠지만, 결국에는 의사소통의 주요 네트워크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수로는, 핀란드에서 인간의 이동과 물자의 대량 수송을 위한 경로가 되어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었다. 겨울에 강과 호수는 단단한 표면으로 얼어버린다. 발트해 역시 얼어버린다. 물이 얼음으로 고체화되면서 그 표면은 새로운 이동 방향, 이동 네트워크, 새로운 속도에 대한 구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수들은 새로운 기술을 등장하게 하였다.

텍스트 「사물의 생태학」, 334쪽

장인정신의 발현 역시 지식 이전의 또 하나의 사례에 해당한다. 기술 전문화의 한 형태에 해당하는 장인정신은 물질적, 기술적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유목민적 방식으로 핀란드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였다. 이러한 순환적활동은 지식 이전의 네트워크를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역할에 대한 이야기의 전달에도 영향을 끼쳤다.

텍스트 「전달」, 35쪽

생체지능(bio intelligence)은 인공지능을 통하여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들은 환경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해주는 적응 통로로 여겨질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우리는 다시금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원시 기술에서 정보 기술로의 발전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물질적, 비물질적 환경은 ‘최상의’ 모습 혹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텍스트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 352쪽

사회의 모습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네트워크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사물의 의미에는 이러한 사회집단의 가치체계가 투영되어 있다. 그것이 기술적이든 정신적이든, 이러한 사물들의 의미는 구조의 환경을 설정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그 논리가 운영체계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물들의 사회적 삶인 것이다.

텍스트 「운영체계」, 355쪽

차례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
사물의 생태학
전달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
운영체계

후기
한국어판을 펴내며
우리말로 옮기며

플로렌시아 콜롬보

스위스에 거주하는 건축가 플로렌시아 콜롬보는 창의적인 방향으로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건축, 현대미술,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국제 기관을 위한 융합적인 학술 전시와 서적을 개발한다.

빌레 코코넨

핀란드 출신의 산업 디자이너이다. 스위스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는 기술적, 과학적 발견과 관련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들이 진행된다. 그의 작품은 미래 생활환경에 대한 예측의 결과물이다. 현재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토대학교의 예술디자인 및 건축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일홍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고고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 숭실대학교, 충남대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문명 밖으로』(공저) 『청동기문화개론』(공저) 『동서양의 접점』(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인류사의 사건들』 『유럽문명의 여명』 『선사시대 사회들은 과거 인식』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고고학 해석의 지평 넓히기」 「청동기시대 북한지역의 초석 주거지에 대한 검토」 「‘사회적 시간’의 고고학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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