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도 나이가 든다
시간을 통과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공간의 미래에 다는 주석
미술관도 나이가 든다. 단순하고 한편 당연한 사실 같지만, 미술 제도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미술관의 “에이징”은 이제 당면하게 되는 새로운 질문이다. 1986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과천관)은 곧 40년이 된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야심차게 추진된 “국가적 야망”의 산물이자, 서울과 청주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추가로 건립하기 전까지 국내 미술 제도의 중심에 있던 미술관은 동시대 ‘현대’ 미술을 품는 “미술을 위한 집”으로서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이 책은 이를 질문하는 시작점에 있다.
“미술관의 재가동에 대한 진단은 막연한 차원에 머물지 않고 미술관 운영과 관련한 실질적인 이슈를 던진다. 한국의 ‘현대’ 미술관 건축물이 점점 나이를 먹고 있는 지금 오래된 미술관 건축물의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롭게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공립미술관들은 이제 건물의 수명으로는 완공 3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미술관이다. 한국에서 30년은 재건축이나 철거와 같이 건축물의 생사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리노베이션과 같은 물리적 재생을 고민하는 두 건물은 오늘날 미술관이 직면한 긴급한 이슈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본문 중에서)
책에서는 시간을 통과하는 미술관을 건축가와 디자이너, 미술평론가와 큐레이터, 작가의 시점을 오가며 다양한 시각으로 연결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임대근은 현대미술의 조건으로서의 미술관과 과천관의 지난 공간적 실험을 살펴본다. 작가이자 국제갤러리 이사인 윤혜정은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미술관 공간 경험의 변화와 팬데믹 이후의 관람 행위에 대해 논하고, 미술평론가 곽영빈은 과천관의 ‘기념비’가 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을 중심으로 기술과 기계의 자연사와 미술관과의 관계를 은유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최성민은 순수미술과 구분해 상업미술로 분류하는 그래픽 디자인이 최근 미술관 제도 안에서 인큐베이팅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젊은 모색 2023’의 기획자이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인 정다영은 동시대와 점차 간극이 생기는 현대미술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큐레토리얼 방식을 모색한다. 서울과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 심소미는 이미 ‘오래된 미래’를 거치고 있는 파리 미술관들의 실험을 소개하고, 작가이자 변호사인 김원영은 과천관의 램프코어를 중심으로 휠체어를 탄 관람객과 미술관 공간과의 관계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최춘웅의 글을 통해 오로지 작품 감상을 위해 용도가 지정된 유일한 건축 유형인 ‘전시장(미술관)’의 낡은 부분들로부터 촉발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