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점·선·면

点·線·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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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다
20세기를 지배한 이기는 건축에 대항하는
구마 겐고의 입자 건축을 위한 방법서설

2020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는 지금껏 자연을 소재로 건축과 장소, 건축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통찰해왔다. 자연, 사람, 사물과 공존하는 ‘약한 건축’에 이어 ‘자연스러운 건축’ ‘연결하는 건축’ ‘작은 건축’을 다룬 구마 겐고가 세상에 전하는 또 하나의 건축 이야기는 입자의 건축 ‘점·선·면’이다. 딱딱하고 묵직한 콘크리트로 점철된 20세기 건축은 환경에 이기기 위한 건축이었다. 급성장한 경제 규모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수를 감당해야 했던 20세기에는 크고 튼튼한 볼륨 안에 가능한 많은 사람을 밀어 넣는 방식이 기본이었다. 구마 겐고는 이런 볼륨의 속박에서 벗어나 물질과 공간이 이룬 자유로운 흐름에 몸을 맡길 방법으로 점·선·면에 집중해 볼륨을 분해하고자 한다.

세상이 발전하고 급변하는 사이 거대해진 건축. 이는 단순히 거대한 규모만이 아니라 극소에서 극대에 이르는 혼재와 중층이었다. 그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커다란 사물에서도 작은 것을, 작은 사물에서도 커다란 것을 발견하는 자세다. 물리적으로 큰 존재에서 작음을 느낄 건축을 실현할 방법, 그 해답을 찾는다면 빠르게 확장되는 세계에서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극소와 극대가 중층하는 환경에서 살아나갈 길을 찾는 데 실마리가 된 것은 초끈 이론이다. 두께가 없는 점이나 선은 아무리 더해도 덩어리가 될 수 없다. 진동하는 현을 도입하면 점·선·면의 차이는 진동의 차이일 뿐이다. 점·선·면을 진동시켜 어떻게든 확장해나가면 건축을 넘고 도시를 넘어 세계에 도달한다. 이 책에서는 점·선·면 세 가지 분류로 나누어 현의 진동을 기술했다. 그것은 모두 진동이고 진동으로 나타난 결과다.

1978년 겨울, 구마 겐고는 도쿄 대학의 하라 히로시(原広司) 선생과 사하라사막으로 취락 조사를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건축은 그가 나고 자란 오두막이 심어준 감각과 맞닿아 있었다. 점이 집합한 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인 취락과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지은 열대 우림의 식물 집, 혹독한 환경에서 유목민을 지켜주는 부드럽고 얇은 천막까지, 새로운 땅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에서 구마 겐고는 미래 건축이 목표로 삼아야 할 모습을 발견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되살리는 소재, 생활을 지탱하는 힘을 만났다. 작고 약하고 덧없는 사물이야말로 이토록 황폐해진 세계에서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대상이 아닐까. 그것이 구마 겐고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편집자의 글

『점·선·면』은 건축의 존재 방식, 그 방법을 풀어나간 「방법서설」에 이어 작은 사물로 대표되는 「점」 「선」 「면」, 세 가지 파트로 나누어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건축가와 예술가의 작품, 구마 겐고의 대표작을 곁들인 설명을 덧붙이며 흥미를 더한다.

「방법서설」에서는 서양 건축의 시작이 되는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르네상스, 모더니즘, 현대에 이르는 시대 상황과 변화, 건축 예술 사조, 과학 이론이 등장하면서 칸딘스키의 판화론, 복수의 차원과 차원의 경계, 물질과 시간의 이야기를 축으로 분야와 시대를 넘나들며 구마 겐고의 입자 건축론을 펼치기 위한 방법을 서설한다.

「점」에서는 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조, 고대 건축물의 필라스터 기둥, 미스 반데어로에가 사용한 수직 디테일을 언급하며 덩어리가 아닌 독립된 점을 표현하고자 시도한 과거의 흔적을 짚어나간다. 구마 겐고는 일본 아시노 지역에 지은 돌 미술관, 중국 항저우 민예박물관, 신진 지‧예술관에서 독립된 점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2008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람회 출품작 워터 브랜치를 완성하며 점을 선으로 도약시킨다.

「선」에서는 목재를 엮어 가벼움과 개방감을 살린 일본 전통 건축을 내보이며 여기에서 단서를 얻어 선의 건축을 실현한 단게 겐조와 그 이후 선이 사라진 일본 건축사를 훑는다. 선을 부활시키고자 한 구마 겐고는 삼나무 목재와 얇은 종이를 이용해 주변과 점층적으로 연결된 바토히로시게 미술관, 자연과 도시를 잇는 V&A 던디를 완성하며 건축과 환경, 건축과 세계를 이어주는 선의 집합을 선보인다.

「면」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사막에 지은 건축물과 홋카이도 원주민의 생활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세운 천으로 된 집, 자연재해가 연이어 찾아온 시대에서 사람을 지키고자 고안한 우산 돔, 시모가모 신사에 설치한 자그마한 투명 집을 소개하며 얇은 면의 건축물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책 속에서

20세기를 총괄하며 비판할 생각으로 나는 2004년 『지는 건축(負ける建築)』(한국어판 『약한 건축』)이라는 책을 냈다. 20세기는 ‘이기는 건축’의 시대라서 딱딱하고 강하고 묵직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환경에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기는 건축’이 대량 생산되었다. 그래서 이를 대신할 ‘지는 건축’을 제안한 것이다.

「들어가며」, 7쪽

그 이전 시대에는 볼륨 바깥에 다양한 행복이 있었다. 예컨대 골목을 돌아다니거나 툇마루에서 빈둥빈둥 노는 행복은 볼륨 바깥이니까 할 수 있는 찬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사람들은 볼륨 바깥에서 일어나는 즐거운 일, 기분 좋은 일을 모두 버리고 볼륨 안에 틀어박혀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20세기는 볼륨의 시대」, 17쪽

다양한 물질과 대화하고, 물질이 어떻게 시간 안을 흐르고 시간이 물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계속 주시하는 나의 일상에서 새로운 시간론을 뽑아낼 수는 없는 걸까?

「운동에서 시간을 해방하다」, 47쪽

작은 사물은 언제까지고 우리 가까이에 있고, 언제까지고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으며 직접 접촉할 수도 있다. 세계는 일방적으로 커다란 사물로 진화하기보다 커다란 사물이 더욱 커지고 빠른 사물이 더 빨라지면서 우리는 작은 사물, 느긋한 사물에 매료되어 가까이 끌어당기게 된다.

「진화론에서 중층론으로」, 66쪽

나에게는 돌 미술관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전환점이었다. 우선 돌이라는 물질과 조우했다. 지구 탄생의 수수께끼로까지 이어지는 돌이라는 깊은 세계와 상대할 계기가 되었다. 묵직한 볼륨이 되기 쉽다는 성가신 악폐를 가진 돌을 만남으로써 오히려 점의 의미, 점의 가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점에서 볼륨으로의 도약」, 96쪽

모양과 치수는 같아도 재료를 바꾸자마자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일은 건축 세계에서 자주 겪는 일이다. 같은 모양의 점과 선이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물질과 인간의 관계는 그만큼 미묘하다. 인간의 지각은 물질에, 그리고 그 질감에 직접적으로 신체적으로 반응한다.

「바둑판무늬가 만드는 점」, 144쪽

이산성에 대한 동경, 점에 대한 관심이 사하라 여행에서 내 마음속에 싹텄다. 이산이라는 수학 개념으로 건축에 접근해보니 수학이나 양자역학이 건축을 생각할 때 큰 무기가 된다는 점을 실감했다. 이산이라는 수학 개념으로 건축에 접근해보니 수학이나 양자역학이 건축을 생각할 때 큰 무기가 된다는 점을 실감했다.

「이산성과 사하라사막」, 154쪽

식물이란 선 집합체였다. 아르누보에서 가우디에 이르는 세기말 건축가들은 그렇게 식물에 매혹되어 돌과 벽돌로 지은 볼륨의 건축물 대신 섬세한 선의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가우디의 선」, 180쪽

일본 전통 목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연마한 가늘고 이동하는 선을 되찾을 수 없을까? 아니면 아프리카 열대 우림의 꼴망태 같은 가느다란 선을 현대 건축에 도입할 수 없을까? 가는 선이 부활했을 때 어떤 건축이 탄생하고 어떤 도시가 생겨나며 인간과 선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히로시게의 작품 속 가는 선」, 205쪽

겨울밤이면 사막의 기온은 상당히 내려간다. 베두인은 신체와 모래 사이에 천을 겹쳐 신체를 부드럽게 지탱한다. 그렇게 기온 변화에 대응해 부드럽고 자그마한 신체 주변으로 누에고치 같은 영역을 형성한다. 천이 대지와 그들 신체의 관계를 정의하고 가지로 지탱한 얇은 천이 그들과 사막의 관계를 정의한다.

「사하라에서 만난 베두인의 천」 , 248쪽

『방장기』가 완성되고 800년이 지난 지금 시대는 상당히 혹독해졌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현대의 멍석을 안고, 그 유연하고 부드러운 면을 안고 이 황폐한 세계를 걸어가야 한다.

「800년 후의 방장암」, 290쪽

차례

방법서설
20세기는 볼륨의 시대
일본 건축의 선과 미스 반데어로에의 선
구성의 칸딘스키에서 질감의 깁슨으로
깁슨과 입자
주지주의 대 다다이즘
운동으로서의 시간에서 물질로서의 시간으로
덧셈의 디자인으로서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브루노 라투르와 사진총
건축과 시간
운동에서 시간을 해방하다
칸딘스키에 의한 차원의 초월과 삽입
상대적 세계와 유효 이론
건축의 확대
금융자본주의의 XL 건축
건축의 팽창과 새로운 물리학
진화론에서 중층론으로
초끈 이론과 음악적 건축
들뢰즈와 물질의 상대성


큰 세계와 작은 돌멩이
그리스에서 로마로의 전환
점 집합체로서의 시그램 빌딩
돌 미술관의 점을 향한 도전
점에서 볼륨으로의 도약
브루넬레스키의 파란 돌
브루넬레스키의 점 실험
브루넬레스키의 귀납법
건축에서의 연역법과 귀납법
폴리에틸렌 탱크와 날도래
액체로 점을 잇다
신진대사와 점
선이라 부를 정도로 얇은 돌
일본 기와와 중국 기와
점의 계층화와 노화
자유로운 점으로서의 삼각형
솔잎 원리로 성장하는 쓰미키 나무 블록
바둑판무늬가 만드는 점
선로의 자갈이라는 자유로운 점
바둑판무늬와 검약
이산성과 사하라 사막


르 코르뷔지에의 볼륨, 미스 반데어로에의 선
단게 겐조의 어긋난 선
선에서 볼륨으로 퇴화한 일본 건축
나무 오두막에서의 출발
가우디의 선
점묘화법
열대 우림의 가는 선
모더니즘의 선과 일본 건축의 선
전통 논쟁과 조몬의 굵은 선
이동하는 일본 목조의 선
중심선 치수와 안목 치수
히로시게의 작품 속 가는 선
소나기의 건축
V&A 던디의 선묘화법
살아 있는 선과 죽은 선
필식론의 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는 선
한없이 가는 탄소 섬유의 선
도미오카 창고의 비단 같은 선


리트벨트 대 데클레르크
반데어로에 대 리트벨트
사하라에서 만난 베두인의 천
젬퍼 대 로지에
프랑크푸르트의 천으로 된 다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사막 텐트
홋카이도 들판의 천으로 된 집
재해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카사 엄브렐라
풀러 돔과 건축의 민주화
텐세그리티로 지구를 구하다
세포와 텐세그리티
800년 후의 방장암

참고 문헌
도판 출처
찾아보기

구마 겐고

1954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건축도시계획학과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구마겐고건축도시설계사무소 대표이며 도쿄대학 특별 교수, 명예 교수이다. 주요 작품으로 기로잔 전망대, 워터/글래스, 숲의 무대/도요마마치 전통예능전승관, 바토히로시게미술관, 그레이트뱀부월, 나가사키현미술관, 산토리미술관, 중국미술학원 민예박물관, V&A 던디, 2020년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점·선·면』 『의성어 의태어 건축』 『작은 건축』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연결하는 건축』 『자연스러운 건축』 『약한 건축』 등이 있다.

임태희

교토대학에서 건축학 연구생 과정을 거치고 귀국해 6년 동안 건축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공예섬유대학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송태욱

연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환상의 빛』 『십자군 이야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형태의 탄생』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등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으로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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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