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명건축 24선을 통해 본 한국인의 미적 세계
전통 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성취한 미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과 같다. 전통 건축에 투영된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 예술에 대한 지적 통찰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살아 있는 효용과 가치를 가진다. 『명묵의 건축』은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시작하여 종묘의 정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탁월한 건축가들이 지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24채의 전통 건축물을 통해 한국미의 완형(完形)과 그 정신 세계를 탐색하는 길을 떠난다. 이 여정은 단순히 건축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한국인의 미적 세계로까지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전통 건축에 대한 김개천 교수의 예리하면서도 깊은 해석과 관조 스님의 탁월한 사진이 어우러져 우리 전통 건축에 대한 깨달음과 그로 인한 감동은 더욱 풍부해진다.
“외형상 작고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전통 건축은 우주만큼 넓고 깊게 체감되는 무한의 건축으로 완성했고, 물질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했던 예술적 성취들은 현대 미학이 추구하는 이상과도 맥이 닿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미적 한계에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며 자연과의 조화가 아닌 자연의 경지를 이룬 건축적 인문 세계를 보태어 자연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전통 건축을 보는 방법
20대 후반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한 이후부터 저자는 서구의 장대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왜 우리에겐 작고 평범하고 똑같은 건축물들 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랜 시간의 연구가 뒷받침 된 지금 저자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 나라의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관으로 비교하기보다는 그 나라의 지리적 풍토와 사회문화적 여건 등을 폭넓은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통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전통 건축을 대할 때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접근할수록 그 앎은 오히려 족쇄가 되어 자유로운 느낌을 제약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인간에게 허용된 무한한 상상력의 토대를 제공하는 최고의 예술적 형태이기에 알기 전에 보아야 하고, 느껴야 하고 거기서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명묵의 건축』을 통해 한국 전통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안내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우리 건축을 보고 느끼는 진정한 즐거움을 경험케 한다.
건축학자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스님 사진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한국미의 안내서
디자이너이자 건축학자인 저자는 맹목적으로 서양 건축화를 추구하는 시대에 진정한 전통 건축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양의 건축이 ‘비어 있음’을 단순히 어떻게 구성하고 처리하는가에 목적을 두었다면, 전통 건축에서 ‘비어 있음’은 고정된 형태와 크기가 존재하지 않지만 생명의 기운인 기(氣)가 가득하여, 무한히 변화하고 더욱 풍부해진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아름다움이란 유위적 조형으로도, 무위의 조형만으로도 이룩할 수 없으며 우주와의 합일을 통해 인간의 삶을 극대화하는 건축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시각화한 관조 스님의 사진은 이 책에 한층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1960년 범어사에서 득도했으며, 2006년 입적한 관조 스님은 우리 사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폭넓게 사진에 담아 왔다. 관조 스님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전통 건축의 지극한 ‘아름다움’과 그 속에 드러나는 ‘색’은 우리 건축에 대한 깨달음과 감동을 더욱 풍부하고 깊게 만든다. 2004년 첫 출간 이후 7년이 지나 개정판을 새롭게 출간하면서 내용을 보강했고, 우리 건축의 명장면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진들을 추가하여 책의 비주얼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