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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관찰학 입문

路上観察学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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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시가 재미있다!

거리 산책자의 필독 핸드북

맨홀, 굴뚝, 간판, 전단, 쓰레기통, 건물 파편……. 길에 흔하게 널린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노상관찰학 입문』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노상, 즉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는 ‘노상관찰학’의 깃발 아래, 도시의 현장 활동가들이 거리의 숨은 표정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그것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방법을 선보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재미있기 때문에 몰두할 뿐이다. 『초예술 토머슨』에 이어 거리 산책을 한층 즐겁게 해줄 노상관찰 핸드북으로,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 관찰을 하고 싶은 사람, 뭔지 잘 모르지만 즐겁다니까 해보려는 사람까지 “이미 노상관찰자인 사람에게도, 앞으로 관찰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다.

편집자의 글

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걸 주목해 관찰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이 책 『노상관찰학 입문』의 엮은이면서 지은이 중 하나인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앞서 『초예술 토머슨』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책 제목 자체가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건축물에, 또는 길바닥에 부착되어 그 환경의 일부로 보존된 구조물이나 그 흔적’에 붙인 이름이다. 이런 물건을 찾아다니던 ‘토머스니언’들을 비롯해, “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걸 주목해 관찰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어이 ‘노상관찰학회’를 발족하고 말았다.

1부 「매니페스토」에서 ‘노상관찰’의 탄생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이들 ‘노상관찰자’의 대장 격인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나는 어떻게 노상관찰자가 되었는가」에서 제법 점잖은 어조로 포문을 연다. 비록 그 내용은 야뇨증이 있었다느니 노상 근무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해서 그렇다느니 하는 것이지만 그런 배경이 어떻게 예술로 발전하고 다시 사라져 “그 생활 세계 전역을 바라보는 눈”만 남게 되었는지, 예술과 생활 세계의 경계에서 어떻게 고현학(考現學)의 존재를 만나게 되었는지까지 이어진다. 고현학이란 과거 인류를 연구하는 고고학(考古學)과 달리 현대 인류의 생활양식을 고찰하는 학문으로, 이어지는 「노상관찰이라는 깃발 아래에서」의 후지모리 데루노부가 설명하는 것처럼 노상관찰의 ‘어버이’쯤 된다.

2부 「거리가 부른다」에서는 앞선 두 사람에 미나미 신보가 합세해 마쓰다 데쓰오의 사회로 이 책의 ⅓ 분량에 육박하는 대담을 나눈다. 이들은 모두 예술이나 학문에서 출발해 종이 위를 ‘벗어나’ 거리, 즉 노상관찰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학문이란 본래 그런 거 아닐까요? 지금은 너무 훌륭하기만 합니다. 예술만 해도 그렇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 분명 더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초예술 토머슨, 간판건축, 벽보 고현학 등을 소개하며 일견 종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는 대담에서 노상관찰학회의 결성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실용성과도 거리가 멀고 예술이나 학문처럼 세상에서 인정받는 모든 개념도 벗어나 “노상에 데굴데굴 굴러” 나와서 “혼자 외롭게 떨고 있”는 노상관찰이지만, 3부 「나의 현장 노트」를 보면 노상관찰자들은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히 관찰을 이어 나가는 듯하다. 관찰 대상은 역시나 거리의 쓰레기통, 다리 부유물, 맨홀 뚜껑, 출근길에 보는 동물 등 이런 걸 관찰해서 뭐에 쓰나 싶은 것들이다. 무려 노상관찰자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는 하야시 조지가 「거리를 걷는 올바른 방법」에서 도시 걷기용 소도구 목록 같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초예술 토머슨』을 보고 토머슨을 찾고 싶지만 영 어려웠다는 사람이라면 「거리의 토머슨을 찾아서」에 나온 스즈키 다케시와 다나카 지히로의 방법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가 갈수록 중요하게 대두되는 시대다. 실내가 보여서 무심코 봤다고는 해도 남의 집을 보는 행위나,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아무리 악의가 없더라도 위험해 보인다.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어서 재미있는 것이라지만, 본문에서도 이미 ‘수상쩍어 보일 수 있다’ ‘자칫하면 치한이다’ 같은 경고를 거듭해서 던진다. 과연 요즘도 이런 노상관찰이 가능할지, 우려가 고개를 들 때쯤 4장 「관찰하는 눈알들」이 시작된다.

아라마타 히로시는 논고 「박물학은 노상관찰의 아버지: 노상관찰학으로의 진화사적 논술」에서 박물학과 노상관찰학이 같은 궤도에 있음을 주장하며, 여러 박물학자들의 생애와 관찰 방식을 소개한다. 근시가 되어가며 열정적으로 식물과 동물, 숲의 흔적 같은 것을 들여다본 박물학자들의 방식은 사생활 침해 요소가 없으니 참고할 만할 것이다. 그렇다면 산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또는 걷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도 노상관찰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셔우드는 어디로 사라졌는가」는 소년 만화에 등장하는 여러 공터를 관찰한다. 심지어 스기우라 히나코는 시간마저 뛰어넘어 「어느 날의 에도 지상 한 뼘 관찰」을 통해 에도 시대를 샅샅이 들여다본 듯한 기록을 남겼다.

실용성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벗어난 것’을 발견하는 기쁨

이렇듯 노상관찰에는 공간도 시간도 제약이 될 수 없다. 그저 ‘관찰하는 눈알’이 필요할 뿐이다. 게다가 ‘재료는 무한대’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오감에 닿는 그 무엇이든 관찰할 수 있다. 이 책의 엮은이 세 사람이 꿈꾸는 것처럼 “한 사람당 한 개의 노상관찰을 하는 시대”도 그리 멀지 않았다. 사실은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매일 걷는 길에서 무언가 거슬리는 것, 예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이 있다면 순간의 위화감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대신 자기 관찰 대상으로 삼아 기록해 보자.

관찰 기록이 아무 쓸모 없어도 괜찮다.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백남준에게 『초예술 토머슨』을 선물하고 “이 책은 팔리지 않는 쪽의 책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토머슨이나 노상관찰을 좋아하는 이유다. 사업으로 성립할 수 없고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압도적으로 넘쳐나는 사물들 속에서 황홀하게 감각 기관을 열어놓기만 하면 된다.”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삶은 분명 풍요롭다.

책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실제 거리로 나가 벽이나 전신주에 붙은 벽보나 포스터, 표식, 간판 등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의 관찰을 시작했다. 그것이 또다시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 현대예술 놀이가 생겨났다. 즉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목재나 그 이외의 생활용품이 일상을 초월한 상태, 도로 공사로 생기는 구멍이나 쌓아 놓은 흙, 점멸하며 반짝이는 표식 등을 보며 “앗, 현대예술이다!”라고 손으로 가리켜 외치면 그것이 개념이 되었다. 더불어 이것은 화랑이라는 공간에서 숨 쉬며 획득하는 예술 스타일을 향한 아이러니기도 했다.

아카세가와 겐페이, 「나는 어떻게 노상관찰자가 되었는가」, 14–15쪽

이렇게 우리 노상관찰은 예술과 박물학을 그리운 고향으로 삼고, 고현학을 어버이로 여겨 탄생해 성장했으며, 전문 분화 학문에서 벗어나 소비제국과 싸우고, 또한 피를 나눈 형제인 공간파와도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장소에서 혼자 외롭게 떨고 있었다. 이곳은 시대의 끝인가, 낭떠러지인가, 도대체 어디인가!

후지모리 데루노부, 「노상관찰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41쪽

미나미 화랑에서 뛰쳐나와 다양한 예술을 발견하는 일은 단순히 엄청 재미있습니다. 즉 처음에는 그저 패러디죠. 현대예술이다 뭐다 해도 밖에 굴러다니는 이런 것들과 같지 않느냐고 하면서 깔깔대는 게 현대예술 놀이예요. 그러다가 그런 놀이의 시선이 예술가 본인과 동일해집니다. 즉 평범한 사회인은 그런 시선을 가지지 않았기에 보통은 하지 않죠(웃음). 맨홀 뚜껑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평범하지 않아요(웃음). 이건 거의 예술가죠.

「거리가 부른다」, 55쪽

아카세가와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가치가 없는 것에 자기가 직접 가치를 매기는 일은 정말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거리가 부른다」, 115쪽

후지모리 아이의 눈은 그런 걸 발견하죠. 그러니 노상관찰의 기초는 아이의 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신도 될 수 없고 우주인도 될 수 없지만, 소년 시절로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거리가 부른다」, 153쪽

수면에서 눈을 들어 그쪽을 쳐다보려는데 스윽 하고 강 한가운데를 무언가가 천천히 떠내려갔다. ‘앗, 태아다!’ 그것은 비웃음을 피하려고 자기에게 하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명치를 꽉 누르는 듯한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환각이다, 환각.’ 하고 되뇌었다. 그런데 ‘환각이다, 환각.’ 하고 되뇔수록 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태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미나미 신보, 「고현학 숙제—1970년 7월에서 8월」, 183쪽

최근 거리에서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는 방목견을 만나면 내 걷는 방식이 개와 아주 비슷하구나 생각한다. 특별히 따라 하지는 않지만, 길 주변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면서 평면적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단조로운데 아직까지 싫증이 나지 않아 신기하다. 그렇더라도 내가 개와 비슷하다고 깨달은 뒤부터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텔레비전 병에서 탈출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개처럼 걷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하야시 조지, 「거리를 걷는 올바른 방법」, 206–207쪽

어제까지 높이 솟아 있던 굴뚝이 발아래에 무수히 많은 벽돌 파편이 되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작은 파편을 하나 주워들었다.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날마다 멀리에서 바라보았던 굴뚝이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적어도 이 벽돌 파편만이라도 남겨두어야겠다 싶어 소중히 안고 돌아왔다.
그 무렵 전후해서 집 근처에 있던 경찰서나 소방서도 재개발로 철거되어 그곳의 파편들도 마찬가지로 주워 왔다. 그렇게 나의 파편 모으기가 시작되었다.

이치키 쓰토무, 「건물 파편을 줍다」, 241쪽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은 정의(定義)가 아니라 실례(実例)다.
이와 같은 훌륭한 격언을 서두에 넣고 싶었다. 박물학에 대략 다음과 같은 사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리 독자에게 밝혀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물학자는 근시고 사생활이 비참해야 한다.

아라마타 히로시, 「박물학은 노상관찰의 아버지」, 367쪽

차례

1부 매니페스토
나는 어떻게 노상관찰자가 되었는가 | 아카세가와 겐페이
노상관찰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 후지모리 데루노부

2부 거리가 부른다 | 아카세가와 겐페이, 후지모리 데루노부, 미나미 신보, 사회 마쓰다 데쓰오
1 예술로부터, 학문으로부터
2 고현학에서 시작하다
3 노상관찰이란 무엇인가

3부 나의 현장 노트
고현학 숙제—1970년 7월에서 8월 | 미나미 신보
거리를 걷는 올바른 방법 | 하야시 조지
건물 파편을 줍다 | 이치키 쓰토무
거리의 토머슨을 찾아서
 토머슨 관측의 실제 | 스즈키 다케시
 토머스니언은 도시의 혜성 탐색자 | 다나카 지히로
아자부 다니마치 관찰 일기 | 이무라 아키히코
여고 교복 관찰기 | 모리 노부유키
류도초건축탐정단지 기고 | 호리 다케요시

4부 관찰하는 눈알들
박물학은 노상관찰의 아버지 | 아라마타 히로시
셔우드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 요모타 이누히코
어느 날의 에도 지상 한 뼘 관찰 | 스기우라 히나코

해설 『노상관찰학 입문』 입문 | 도리 미키
역주

아카세가와 겐페이

1937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현대미술가, 소설가로 무사시노미술대학교 유화학과를 중퇴했다. 1960년대 전위예술 단체 ‘하이레드센터(High Red Center)’를 결성해 전위예술가로 활동했다. 이 시절 동료들과 도심을 청소하는 행위예술 〈수도권 청소 정리 촉진운동(首都圏清掃整理促進運動)〉을 선보였고, 1,000엔짜리 지폐를 확대 인쇄한 작품이 위조지폐로 간주되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아사히저널》과 만화 전문 잡지 《가로(ガロ)》에 「사쿠라화보(櫻画報)」를 연재하며 독자적 비평을 담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다. 1981년 ‘오쓰지 가쓰히코’라는 필명으로 쓴 단편 소설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로 아쿠타가와류노스케상을 받았다. 1986년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 편집자 겸 일러스트레이터 미나미 신보와 ‘노상관찰학회(路上観察学会)’를, 1994년 현대미술가 아키야마 유토쿠타이시(秋山祐徳太子), 사진가 다카나시 유타카(高梨豊)와 ‘라이카동맹(ライカ同盟)’을, 1996년 미술 연구자 야마시타 유지(山下裕二) 등과 ‘일본미술응원단(日本美術応援団)’을 결성해 활동했다. 2006년부터 무사시노미술대학교 일본화학과 객원 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노인력』 『센노 리큐』, 공저로는 『일본미술응원단』 『교토, 어른의 수학여행』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책을 남겼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초예술 토머슨』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신기한 돈』 『나라는 수수께끼』 『사각형의 역사』와 공저서 『노상관찰학 입문』 등이 있다. 2014년 10월 26일 일흔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

후지모리 데루노부

1946년 나가노현 지노시에서 태어났다. 건축사학자, 건축가로 근대건축의 문헌 연구를 위해 1974년부터 연구실 동료 호리 다케요시{堀勇良}와 도쿄 도내의 근대건축 현장 조사를 시작했고 이후 다른 멤버들도 합류하면서 ‘도쿄건축탐정단(東京建築探偵団)’이라는 이름으로 『근대건축 가이드북: 간토 편』을 발행했다. 지은 책으로는 『메이지 시대의 도쿄 계획』 『건축탐정의 모험: 도쿄 편』 『일본의 근대 건축』 상·하 등이 있으며 한국에 소개된 책으로는 『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와 공저서 『노상관찰학 입문』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가 있다.

미나미 신보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만화가, 수필가다. 미학교에서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강사로 가르친 ‘미술 연습’ 과정을 수료했다. 7년 동안 잡지 《가로(ガロ)》 편집을 맡았고 일러스트레이션과 에세이를 함께 작업하며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문외한의 미술관』 『벽보 고현학』 『웃긴 과학』 『웃긴 사진』 『본인의 사람들』과 공저서 『노상관찰학 입문』 등이 있다.

서하나

건축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다가 직접 디자인하기보다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외어전문학교에서 일한통번역 과정을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언어도 디자인이라고 여기면서, 일한 번역가와 출판 편집자를 오가며 책을 기획하고 만든다. 『노상관찰학 입문』 『초예술 토머슨』 『저공비행』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과 《d design travel》 가나가와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