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책 속에서

『폴 랜드의 디자인 생각』은 짧고 명쾌한 문장으로 쓰였고, 생생하고 흥미로운 그림과 함께 마치 어린이 책처럼 단순하게 디자인되었다. 겉으로 보면 이 책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디자인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선언서이자 행동 강령이며 무엇이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지를 정의하고 있다.

변치 않는 원칙을 디자인에 적용할 때만이 외형적인 우수성을 획득할 수 있고 ‘유행’의 일시적인 속성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원칙은 시대를 넘어 항상 적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부적절하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수단과 방법에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선입견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 주의 깊은 관찰과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가 아이디어이고, 그 아이디어의 산물이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신적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상징이 상징으로서 가치 있으려면 단순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가장 우수한 상징 일부가 단순화된 이미지로 되어 있다는 점은, 단순화란 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성의 효과를 지칭할 뿐이다.

손이나 컴퓨터를 사용해 만든 ‘추상적’인 모양, 기하학적 무늬, 서체 등을 분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용이 단순히 그 자체를 나타내는 수단에 그친다면 결국 표현은 치졸해진다. 반면 시각 언어가 아이디어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고, 기능과 상상 그리고 분석적 판단에 근거를 둔다면 독창적일 뿐 아니라 의미심장해지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포토그램은 감광지에 빛을 비추는 단순한 기계적 원리에 의존하지만 디자이너에게 미적 가치와 수작업을 통한 폭넓은 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의미에서 포토그램은 대상 묘사가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이며 연속적인 운동감을 나타낸다.

디자이너가 매력적이고 설득적일 뿐 아니라 창의적이고 극적이며 재미있기까지 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그는 고객에 대한 의무를 다했을 뿐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을 발휘했다는 만족감도 얻게 된다.

폴 랜드는 의뢰받은 디자인으로 직접 경영자를 설득하고 집행했던, 그래서 디자인을 CEO 비즈니스의 단계로 격상시켜놓은 디자이너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디자인 초창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폴 랜드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상업적인 디자인을 아트의 경지에 올려놓은 ‘시각 시인’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