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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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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라는 가치 아래 드러내는 노동자의 페르소나와 개성, 그리고 존재감

이 책 『Core』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 두 영역의 경계를 탐구해 온 작가 최철용의 작품집이다. 동명의 전시 〈Core〉에서 최철용은 광부들의 작업복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패션 하우스 멜팅팟(Meltin’pot)과 랭글러 블루 벨(Wrangler Blue Bell) 프로젝트에서 광부 유니폼을 디자인한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광부들의 유니폼을 통해 집단 정체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광부 유니폼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의 기초를 마련했다. 광부 작업복은 노동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코드 없는 메시지로 작용하며, 작가는 이를 개별화된 초상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최철용은 ‘코어’라는 주제로 다양한 초상화와 설치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모든 개체가 하나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개념을 시각화했다. 이들은 노동의 요체를 설명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을 반영한다. 광부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작가의 작업 과정을 드러내는 ‘개념 지도’로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세 단어로 시작해 연상되는 광부 이미지를 그려내고, 재킷과 헬멧의 색채와 연결된 초상을 구성했다. 특정 인물에 관해 떠오르는 개념어들로 이루어진 제목은 초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앤다. 또한 ‘Core’라는 텍스트를 자수로 새긴 천 250장이 담긴 ‘코어 상자’를 배치해 개별성과 집단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최철용에게 코어는 물질적 사용 가치를 지니며,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확장하는 비평적 가치이자 미학적 가치이다. 이를 통해 그는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작업을 지속하며,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창조하는 전용(détournement)의 과정을 작업 방식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품집은 모든 텍스트에 기계자수를 사용해 실험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산업화된 기술을 상징하는 기계자수를 통해 집단의 복제성을 표현하면서도, 각 작품에 개별성과 페르소나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담았다. 이런 방식은 작가의 예술적 철학과 일치하며,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매체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집은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특별한 예술품으로 완성되었다.

전시 〈Core〉는 2024년 5월 14일부터 6월 22일까지 스페이스21 갤러리에서 열린다.

책 속에서

최철용에게 이탈리아에서 본 수많은 아카이브 자료와 사진 이미지 등은 광부 작업복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패션과 정체성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면서도 유니폼이란 반복해서 프린트되는 판화(실크스크린 등)처럼 복제된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통해 본 광부들의 작업복에는 석탄이 묻어서 더럽혀진 작업복을 입은 인물도 있었고, 작업복을 입고 음식을 먹다가 흘린 자국, 옷에는 그 사람의 노곤한 상황과 인생 모든 것들이 각인되어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결국 그가 행하는 노동행위, 삶의 흔적과 상황을 고스란히 제시해 주는—롤랑 바르트의 말대로—코드 없는 메시지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연심,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이러한 흔적을 제외한다면, 당시 이탈리아에서 그가 관찰하고 분석했던 아카이브들은 광부들의 개별적인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는 유형학적인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입은 유니폼을 통해 드러나는 컬렉티브한 집단성이 아니라 개별화된 인물들의 초상이나 군상으로 활기와 생기, 독특한 페르소나를 가진 개별 인물들로 재해석했다. 구체적 인물들이 사실 누구의 초상인지 중요하지 않으며 대신 어떤 의미들이 이러한 광부들의 초상에서 개념적으로 전이되는가가 더욱 중요해졌다. 즉 그는 알레고리적인 초상으로 이들 광부의 집단적인 이미지를 개성을 갖춘 이야기로 가득 찬 인물들로 변모시킨다.

정연심,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광부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최철용의 작업 과정을 드러내는 개념지도이다. 그는 세 단어로 시작하면서 그 단어를 연상시키는 광부 이미지들을 그려내고 광부에게 입힐 재킷과 헬멧, 색채와 연관된 광부의 초상을 연결시켜 나간다. 작품의 제목들은 명사와 형용사로 구성된 텍스트를 구성하면서 이미지의 관계를 보여주면서도 특정 인물에 대해 작가에게 떠오르는 개념어들이 제목으로 구성된다. 그가 선택한 제목은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열거함으로써, 초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면서 열려있는 해석체로 관람자가 상상할 수 있는 해석의 공간을 열어둔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야심 찬 대형 초상화 연작인 〈중첩된, 중앙의, 조화(Sovrapposizione, Cetnrale, Armoniosa)〉(2021)와 〈핵심 일꾼들(Core Workers)〉(2022)의 존재는 노동의 요체를 설명하는 최철용 특유의 시선을 반영한다.

정연심,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이러한 초상들은 모두 최철용이 제시하는 ‘코어’라는 전체적인 주제 속에서 함께 작동한다. 광부라는 집단, 또는 개별 초상이 가지는 회화적 가치에 그 미학적 의미가 반영된다. 그는 ‘코어’라는 미학적 개념 하에서 이러한 초상을 둘러싼 사회, 노동, 환경 등을 일상적인 기호로 서로 연결한다. 최철용의 ‘코어’ 선언문대로 “코어는 코어에 있다; 코어는 모든 개체와 함께한다; 코어의 아래에 코어가 있다”는 핵심 정보 시각화 장치가 그것이다. 이러한 ‘핵심 정보 시각화 장치’에는 모든 요소들은 개별화를 띠고 있지만 그것들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인 위계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별 요소들은 하나의 ‘코어’로 존재한다. 코어의 중심과 주변부의 긴장 관계나, 권력관계, 위계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코어의 가치는 각기 ‘다름’을 존재론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다른 ‘코어’라는 개체와 모두 함께한다.

정연심,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광부와 같은 대형 초상들과 달리, 시가 박스에 그려진 작은 초상들은 그가 이전에 본 아카이브들처럼 유형적인 동시에 이질적이며 다양하다. 이는 시각적 영감이자 기록의 순간을 보여주는 다소 즉흥적인 것으로 때로는 유희적이며, 즐겁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회의 소소한 객체들이다. 이들은 광부들만큼이나 사회의 핵심 일꾼들이며, 코어 다이어그램에서처럼 여러 객체들과 복잡하고 리좀적인 관계로 얽혀있는 인물들인 동시에 광부들처럼 ‘코어 재킷’을 입고 협력을 하며, 모든 개체들과 중첩된 구조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일상적 공간을 점유하며 일상생활을 실천하는 인물들인 셈이다. 작가에게 코어는 물질적 차원에서 사용 가치를 지니며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확장하는 비평적 가치이자 미학적 가치이다.

정연심,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차례

‘코어(Core)’의 사용가치: 최철용의 아트, 그리고 패션 | 정연심

전시 작품
전시장 전경
작품 목록
전시 크레딧

최철용

최철용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섬유 미술과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디자인과 아트의 경계에 관해 연구했다. 이탈리아 멜팅팟(Meltin’pot), 벨기에 랭글러블루벨(Wrangler Blue Bell), 이탈리아 마르텔리(Marteli) 등 유럽의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 및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뒤, 2009년 귀국해 본인의 브랜드 Cy Choi(씨와이초이)를 론칭했다. Cy Choi는 파리에서 18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서울패션위크에 10회 참가했으며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를 2회 수상했다. 2014년 《아레나(Arena)》 선정 올해의 패션 디자이너, 2010년 이탈리아 《보그(Vogue)》 선정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및 Cy Cho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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