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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로스의 건축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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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인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우리 시대의 교양서
아돌프 로스의 유명한 명제 “장식은 범죄다”는 과거가 아닌 오늘의 우리를 향한 일침이다

아돌프 로스의 수많은 건축 에세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글들을 가려 뽑은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자 필독서이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였던 빈은 아르누보를 내세운 제체시온(Sezession)의 근거지였다. 아돌프 로스가 보기에 당시 빈의 건축은 근대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장식에 기대 시대를 거스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빈의 건축계를 향해 “장식은 범죄다.” 라고 일갈하며 “장식이 아닌 고전주의의 합목적성에서 근대건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당시 그가 빈의 중심가 미하엘 광장의 모퉁이에 지은 ‘로스하우스’는 이 논쟁에 불을 붙여 당국이 공사를 중단시키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아돌프 로스의 주장은 수많은 근대건축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르 코르뷔지에가 “아돌프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라고 말할 만큼 근대건축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그렇다면 아돌프 로스는 왜, 무엇 때문에 ‘장식은 범죄’라고 말했을까. 그 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바로 이 책에 수록된, 짧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의 글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답에 도달하면 할수록 지금 이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적어도 예술과 관련한 분야의 종사자라면 더욱.

편집자의 글

아돌프 로스의 사상과 근대건축의 정신을 가장 쉽고 분명하게 확인할 기회

“문화의 진화란 일상에서 장식을 배제해가는 과정과 같다.” 아돌프 로스의 이 외침은 현대건축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에펠탑이 산업혁명의 과실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예술의 건축’과 ‘기술(기능)의 건축’은 대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예술을 표방한 보수주의 건축’과 ‘기술을 표방한 진보적 건축’의 대립이었다. 이 대립은 ‘예술은 곧 장식’이라는 전통적 개념과, ‘기술이 불러온 미(美)가 곧 현대적’이라는 진보적인 개념의 충돌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당시 보수적인 장식 예술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현대적인 미를 온몸으로 입증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로스는 역사적으로 승리했고, 15년 뒤 세계 건축계는 ‘장식 없이도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증거로 ‘현대건축’이라는 양식을 국제화할 수 있었다.

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의 우리 건축계에 던지는 화두

아돌프 로스의 문장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시공을 초월해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선다. “이제 우리는 안다. 미래의 건축가는 기꺼이 고전주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모든 종류의 직업 가운데 엄격할 정도로 고전주의의 기초를 닦아야 하는 이는 바로 건축가이다. 그런데 건축가는 모던한 인간도 되어야 한다. 시대의 요청에도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의 문화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첨단에 스스로 우뚝 서야 한다. 건축가는 평면도와 설계도로 문화 형태와 관습에 개성을 부여해야 하며, 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문화를 아래쪽이 아닌 위쪽으로 이끌 것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서 읽어야 할 필독서

아돌프 로스가 수행한 장식과의 전쟁은 모방의 혐오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시멘트로 석조 건물을 모방한다거나, 종이인 벽지로 실크를 모방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행위로는 진정한 예술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벽지가 종이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 외침이 100년의 유통기간을 보냈음에도 그 날짜가 아직 유효한 듯 보인다. 아주 쉽게, 우리가 방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면 인조 합판으로 원목 문양을 흉내 낸 기둥과 천장 마감, 대리석처럼 보이는 합성수지 싱크대, 온갖 시트지가 붙은 MDF 가구들을 빤하게 목격할 수 있다.

아돌프 로스는 이렇게 속삭인다. “이제 예술가의 과제는 새로운 재료를 위한 새로운 형식언어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모방일 뿐이다.” 또한, 아돌프 로스가 후배 건축가를 향해 던지는 진심어린 충고는 창작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이에게 고스란히 적용된다. “도면보다는 현장을 중시하고, 고전을 익히며, 사람의 기억과 마음에서 보편성을 읽어내는 동시에 무엇보다 미래를 생각하라”는 그의 조언은 어떤 예술 분야에 적용해도 너무나 옳다.

추천사

이 책에서 로스는 단순히 ‘장식이 있는 건축’과 ‘장식이 없는 건축’의 논쟁을 뛰어넘어 급기야는 ‘건축이 예술입니까?’라는 역설적인 질문으로 건축은 예술이기 이전에 ‘필요를 채우는 기능’이고 이 기능만으로도 예술의 경지에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에게 헌신하고 건축가는 보편에 헌신한다’는 로스의 주장은 ‘건축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예술이라는 개별적 가치’에 우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로스는 무조건 장식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내용을 채우지도 못하면서 외관에만 집착한 장식을 혐오했다. 로스가 내용(기능)과 형식(외관)의 일치를 이루었던 고전주의 건축가인 쉰켈(Karl Friedlrich Schinkel)을 존경한 점은 이 사실을 잘 뒷받침한다.
오늘날 우리가 로스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냥갑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 건축의 장식 없는 ‘획일화’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변화’로 예술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로스가 비판했던 것처럼 건축에 변화를 주고자 장식이라는 연미복을 입혀서는 획일화를 극복할 수 없다. 단순화와 획일화는 전혀 다르다. 단순화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면 ‘건축이 예술입니까?’라는 질문에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대답한 로스의 목소리에 현대 건축가들은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건축은 예술이다. 자기주장으로 이뤄지는 개별적 가치 예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서 이뤄내는 보편적 가치 예술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가치를 이루지 못한다면 장식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강병근(건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책 속에서

건축가의 위신이 곤두박질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국가 제도이며, 두 번째는 건축가 자신이다. 국가는 빈공과대학이 주관하는 자격시험을 도입했고 수험생은 이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장난은 도가 지나쳐 정부 지도자들은 ‘건축가’의 자격을 법으로 규제했다. 건축 관련 학과의 졸업생을 보호하려는 이유였다.
그런데도 빈 도시 전체가 이 사실을 비웃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시민이 시험 제도에 길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축을 익힐 수 있다고 믿었고 자격증만 획득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현상은 음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음악학교에서 치르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작곡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제도와 관계없이 음악은 절대적인 예술 그 자체일 뿐이다. (…) 그런데 시험 제도보다 더더욱 건축가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건축가 자신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린다. 세상도 수긍하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젊은 건축가들은 어렵게 자격증을 땄음에도 기껏 건축 설계도를 그리는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선 그들이 가졌다는 예술가의 능력조차도 별반 소용이 없다. 그들은 그저 카운터 점원이 받는 정도의 월급을 위해 건축 청부업자, 건축기사, 건축가의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고용주는 자신의 아틀리에를 상업적으로 유지해야 하니, 기꺼이 젊은 건축가를 노동자로 고용한다.
노동자가 된 ‘건축가’는 고용주 앞에서 자신이 가진 예술가의 신념을 기꺼이 포기한다. 애초에 예술가의 신념은 있지도 않았다. 고딕 양식으로 오늘 하루를 마치고 나면 내일부터 출근하는 다른 사무실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에 매달려 구원받길 기다린다. 그러고는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반문한다. 젊은 건축가들은 동료끼리 잘들 지내며 사람들이 자신들을 상업적으로 대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퇴근 후 자기들끼리 둘러앉아 술김에 고용주의 촌스러운 안목을 흉보면서 서로 안위한다. 다음 날 정각 여덟 시, 이들은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업무에 임한다.

「젊은 건축가들」, 9–11쪽

수공업자는 책 볼 시간이 없다. 건축가는 모든 것을 책에서 배운다. 엄청난 양의 서적이 건축가가 배워야 할 것들을 남김없이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교묘하고 노련한 출판업자들이 찍어내는 무수한 출판물이 우리의 도시 문화에 얼마나 독극물 같은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의 자기 성찰에 얼마나 방해가 되었는지 헤아리지 못했다. 건축가가 형태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아 그것을 머릿속에서 모사해내든, ‘예술적 창조’로 독창적인 도안을 내놓든 결국 모두 같은 것으로 귀착됐다. 그 효과는 항상 똑같았다. 항상 흉측했다. 그리고 이러한 흉측한 짓은 무한 성장했다.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이 책에 실려서 영원해지길 바랐다. 신문과 잡지도 앞다투어 건축가의 허영심을 북돋아주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건축가는 건축에 종사하는 수공업자들을 밀어내버렸다. 건축가는 도안을 배우면서 그것만 배웠기 때
문에 할 수 있는 것도 그것밖에 없다. 수공업자는 도안 작업을 하지 못한다. 손이 무거운 나이 든 장인은 도안 작업이 서투르고 어색하다. 그러나 건축 학교는 능숙한 도안가를 길러낸다. 민첩하고 세련되게 도안을 그리게 되면 어느 건축 사무실에서든 월급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런고로 건축은 건축가의 손에서 그래픽예술로 전락했다. 성공한 건축가란 최고의 건축물을 지을 능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종이 위에 재능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건축은 이제 건축의 대척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예술 분야를 일렬로 쭉 세워놓으면 그래픽에서 회화로 가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의 끝에 조형미술이 등장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건축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그래픽과 건축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시작과 끝인 것이다.

「건축이란」, 76–78쪽

대대로 인간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의 건축과 하나였다. 누구나 새로 구입한 집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집은 오로지 두 사람만 마음에 들어 한다. 바로 건축주와 건축가이다.
집은 모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예술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예술은 예술가의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집은 그렇지 않다. 예술은 수요가 없어도 세상에 나온다. 집은 필요하니까 만든다. 예술은 책임이 없지만 집은 책임이 있다. 예술은 인간이 느끼는 편안함을 벗겨내지만 집은 안락함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은 혁명적이지만, 집은 보수적이다. 예술은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미래로 인도한다. 집은 현재를 생각한다. 인간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인간은 안정의 기반을 흔들어대며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사랑하고 예술을 증오한다.
그렇다고 해서 집이 예술과 관련이 없으며 건축이 예술 아래로 기어들어가야 하는가? 아무렴 그렇다!
건축에도 예술이라 부를 것이 있긴 하다. 바로 묘비와 기념비다. 그밖에 목적을 지닌 모든 것은 예술의 영토에 속할 수 없다.
‘예술은 목적을 지닌다’는 말은 대단한 오해이다. 이 오해가 극복되고 ‘응용예술’이라는 기만적인 상투어가 국민 어휘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시대의 건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술가는 오직 자기에게 헌신하고, 건축가는 보편에 헌신한다. 이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과 수공업을 짬뽕해 우리 자신과 상대편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이로써 인류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까먹었다. 인류는 쓸데없이 화를 내며 예술가를 몰아붙여 ‘창작’을 거세해왔다.

「건축이란」, 87–89쪽

차례

젊은 건축가들
가짜 도시 포템킨
빈의 건축
오래된 새것과 건축예술
건축 재료
장식과 범죄
건축이란
나의 첫 집
미하엘 광장의 로스하우스
오토 바그너
산에 지을 때
성의 몰수
요제프 호프만

아돌프 로스

“장식은 범죄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근대 건축가이자 예술비평가로 1870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태어나 조각가이자 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보헤미아 공예학교에 진학했다. 그 뒤 빈 미술대학과 드레스덴공과대학에서 예술과 건축을 공부했다. 1893년 시카고로 건너가 3년간 체류하며 미국의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에 눈을 뜬 아돌프 로스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와 건축가, 가구디자이너, 실내장식가, 예술비평가로 활동하며 당시 아르누보 양식에 빠져 있던 빈의 건축 문화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의 작업은 르 코르뷔지에가 “아돌프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근대 건축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주요 저서로 『장식과 범죄』(1908)가 있으며 주요 건축 작품으로 슈타이너 하우스(Steiner House, 1910), 로스하우스(Looshaus, 1911), 빌라 뮐러(Villa Müller, 1930) 등이 있다.

강병근

건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베를린공과대학교에서 건축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만들기 연구소장으로 있으며, 장애인 건축 관련 연구와 설계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베리어 프리 건축·도시 계획론』 『1900년 이후의 근현대건축 1, 2』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매뉴얼』 등이 있다.

오공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대중문화 평론가와 출판사 외서 기획자를 거쳐 지금은 독일어와 영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디자인 소사』 『내 안의 돼지개 길들이기』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 『별빛부터 이슬까지』 『과학편집광의 비밀 서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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