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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네임리스건축이 짓고 에이리가족이 채워가는 아홉칸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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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는 네임리스건축이 지은 ‘아홉칸집’, 그곳을 채워가는 에이리가족
그들이 말하는 ‘미완의 여백’은 어떤 집의 모습일까

주택과 집은 다르다. 주택은 건물의 유형이고, 집은 가정이라는 공동체와 생활이 펼쳐지는 정서적 공간이다. 주택이 건축가의 예술 작품일 순 있지만 이것이 집이 되는 순간은 건축주의 삶이 그곳에 스며들면서부터이다. 주택과 집처럼 건축주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한 건축이 또 있을까. 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건축가이지만 이를 집으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건축주이다. 이 책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는 아파트를 떠나 집을 짓기로 결심한 에이리가족이 네임리스건축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촉망받는 젊은 건축가이지만 의외로 주택 설계 경험이 전무했던 네임리스건축! 그들은 집 이라 하기엔 왠지 어색하고 생경한 ‘아홉칸집’을 에이리가족에게 보여주며, 일부러 덜 만든 ‘미완의 집’이라 설명한다. 정사각형의 아홉 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독특한 주택에서 에이리가족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복도도 위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똑같은 크기의 방들이 영 불편하고 어색한 모습이지만, 반대로 이 이상한 공간 구조에서 건축가의 생각과 의도를 뛰어넘는 에이리가족만의 창의 생활이 시작된다. 이 책은 ‘아홉칸집’을 짓기 위해 건축주와 건축가가 나누었던 이야기와 준공 이후 가족이 그곳을 채워가는 생 활상을 ‘이어쓰기’의 형식으로 담고 있다. 에이리가족과 네임리스건축은 지난 1년 동안 이 집을 통해 느낀 삶과 건축 이야기를 각자의 소재와 글로 정리해 상대에게 보냈고, 이를 받은 쪽은 그 글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나갔다. 그들의 대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주택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질문하고, 현재 우리 삶을 만들어 내는 집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며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편집자의 글

기묘한 주택 설계, 그보다 더 오묘한 가족의 일상

‘아홉칸집’의 평면 구성과 입주 전 건축 사진을 보면 ‘과연 이 집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든다. 모든 방에 최소 두 개, 많게는 네 개의 문이 있고, 심지어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화장실에도 문이 세 개다. 게다가 욕조는 물론이고 부엌 싱크대까지 콘크리트이니 참 생경하다. 하지만 막상 에이리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아홉칸집’이 매우 창의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네임리스건축의 기묘한 설계를 창의적인 일상으로 수용해 가는 이 가족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가 암시하는 것처럼 에이리가족은 건축을 사랑하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존경한다. 그래서 반려견의 이름마저 코르뷔지에라고 짓고, 아이를 건축가로 성장시키고 싶어 한다. 에이리가족의 고경애는 일본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고 생활하다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다. 두 아이의 엄마와 화가의 삶, 그리고 새로운 주거를 갈망하는 그의 가치관이 ‘아홉칸집’의 건축적 실험을 어떻게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가는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소재를 두고 건축가-건축주가 함께 이어 쓰다

이 책은 마흔 개의 키워드로 구성된다. 이 책의 기획자이자 사이트앤페이지 박성진 대표는 네임리스건축이 지은 집에서 에이리가족이 살아가는 지난 시간 속에서 각자의 소재와 키워드를 발견해 절반의 글을 쓰고, 상대에게 원고를 보내 나머지 절반을 이어 쓰도록 제안한다. 이런 방식은 같은 소재에 대해 상대의 다른 생각을 엿보게 하며, 집을 설계한 이와 집에 살아가는 이가 어떻게 다른 시각과 관점을 갖고 있는지 발견하게 한다. 1년 동안 이어진 그들의 이어쓰기는 하나의 예술적 교감으로서 때로는 상대의 생각에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때로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며 고마움과 희망을 표현하는 창구가 되었다. 이들 사이를 오간 이야기는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의 대화를 넘어 우리의 집과 삶, 건축과 예술에 관한 깊고 진솔한 생각들이다. 1년 동안 ‘아홉칸집’을 오가며 내밀한 가족의 일상과 주변 풍경을 기록한 노경 작가의 사진들 또한 이들의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덜 만듦, 미완, 여백, 여지 ‘미술관’에서 ‘집’으로 돌아온 젊은 건축가

나은중, 유소래가 운영하는 네임리스건축은 화려한 국제 수상의 이력이 말하듯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건축가이다. ‘이름 없음’이라는 그들의 사무소명처럼 유(有)보다는 무(無)를, 완벽보다는 미완을, 채움보다는 비움을 건축적으로 모색한다. ‘완벽한 집보다 덜 만들어진 집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아홉 개의 칸은 마감도 되지 않고, 방의 목적도 정해진 바 없는 그저 비워진 구조물이다. 살아갈 사람은 방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여 생활의 흔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여백은 텅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라고 말하는 네임리스건축은 일면 매우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모습으로 ‘아홉칸집’을 그려냈다. 덜 만듦과 미완, 여백, 여지는 조선시대의 달항아리와 막사발, 일본의 와비사비와 연결되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미학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들은 이런 철학적 개념들을 어려운 언어와 현학적 의미로 설명하지 않고, 우리 일상과 닿아 있는 ‘우물’ ‘비밀기지’ ‘돈’ ‘옥상’과 같은 친근한 소재들로 설명하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완전한 집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야말로 새롭고 창조적인 집을 만들어가는 씨앗이다. 네임리스건축은 지금껏 건축설계의 출발점인 단독주택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 ‘아홉칸집’은 네임리스건축의 첫 주택 작업으로 미술관에서 펼치던 건축적 실험을 주택이라는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옮겨왔다.

책 속에서

아홉칸집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글을 쓰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했다. ‘아홉칸집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을 까?ʼ 이 물음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 집은 작고 너무 소박해 누군가에는 그저 볼품없게 비춰질 것이다. 집을 이루는 아홉 개의 방은 쓰임새도 정해진 바 없고 마감도 되지 않은 채 그저 덩그러니 내던져진 덜 만든 집이기 때문이 다. 이 책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에이리가족, 서문 「삶의 예술이 펼쳐지기를」, 9쪽

결혼을 하고 나니 거대한 우주는 너도 나도 아닌 식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깨알같이 얻었다. 어쩌면 부엌에 관한 이 이야기는 가족과 코르뷔지에의 이야기처럼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각별한 까닭은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하루 세 끼 중 아침 식탁이 더없이 소중한 건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안녕히 밤을 보내고 식탁에서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는 순간 우리의 표정에서 흐르는 평온함 탓이다.

에이리가족, 「부엌」, 48쪽

어쩌면 정교하고 오점 없는 완벽한 콘크리트는 전혀 멋스럽지 않은 건조한 기술에 불과할지 모른다. 현장의 우연성으로 채워진, 의도한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모든 과정이 이 집의 콘크리트 표면에 자연스러운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결국 조금 덜 만들어짐은 섬세하지 않고 투박하며 때로는 오류로 비춰질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의 여지를 남긴다. 빛과 바람과 햇살이 이 덜 만들어진 여백을 풍화해나갈 것이다. 덜 만들어진 건축은 자연스럽다.

네임리스건축, 「콘크리트」, 55쪽

우리의 비밀기지는 최근 둘만의 데이트 장소로 이용하는, 밤에만 출입문이 열리는 옥상이다. 잠든 아이들을 남겨 두고, 꽤 튼튼하지만 상당히 가파르고 층수가 많은 사다리를 사이좋은 도둑처럼 살금살금 기어 올라가 옥상에 다다를 때 묘한 매력이 있다. 어른들의 놀이터를 향하는 그 짧은 순간, 우리의 심장은 빠르게 뛴다. 어깨에 메고 온 의자를 펼치고 앉아 검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닿을 듯 말 듯한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올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형체만 드러난 숲 사이로 가만히 내려앉은 달빛 광채를 보고 있으면 신의 모습도 그 광채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에이리가족, 「옥상」, 83쪽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틈새를 이용해 놀이터를 만들어낸다. 좁은 공간에 벽 하나만 있어도 공간을 장난감 가게로 꾸밀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지닌 창조의 힘일 것이다. 침대와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 들어가 그림책을 보는 작은아이와 변기 앞에서도 장난감을 펼치고 노는 큰아이를 보면 공간에 대해 아이들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린아이일수록 장소에 대한 편견이 있을 리 없다.

에이리가족, 「비밀기지」, 207쪽

집도 그러하다. 완벽한 집보다 덜 만들어진 집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아홉 개의 칸은 마감도 되지 않고 방의 목적도 정해진 바 없는 그저 비워진 구조물이다. 살아갈 사람은 방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여 생활의 흔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네임리스건축, 「여백」, 224쪽

사람들은 왜 이러한 시골에 땅을 샀냐고 묻는다. 나는 당당히 숲을 산 것이라고 대답한다. 숲은 계절에 따라 변하고 그 변화는 하루를 소중히 하며 지낼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삶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가미스기에서 시작된 아홉칸집이 노곡리의 자연을 만나 완성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사회에서는 일의 효율을 높여 최고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회사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순간부터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집은 효율적인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곳,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소파에 앉아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 말이다.

에이리가족, 「집」, 258쪽

우리는 완성되지 않은 아홉칸집을 만들었다. 물론 집이 완성된다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건물이 물리적으로 완공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비워진 그릇이 완성되는 순간일 뿐이다. 그곳에 가족의 생활과 시간 그리고 기억들을 채워 삶이 깃든 집을 완성해간다. 집은 물리적인 실체인 동시에 물질화될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을 지닌다. 아홉칸집은 이러한 집의 근본을 바라보고자 했다. 텅 비워진 그릇을 생활로 채워나가며 흐르는 삶에 반응할 수 있는 유동적인 공간. 그곳은 불필요한 요소는 덜어낸 아홉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최소의 건축이다.

맺음말 「미완의 집」, 261쪽

차례

어차피 완전한 집은 없다
르 코르뷔지에
원형
천창
햇살
아파트
부엌
콘크리트
거실
3×3=9

노곡리

숲에게 말을 걸다
옥상
우편함
손님
건축가
커피콩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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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가족

화가인 고경애와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상욱이 꾸렸고 준성이와 은솔이, 그리고 반려견 ‘코르뷔지에’가 함께 이룬 가족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과 일본 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일하던 고경애는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오면서 일본에서 세 번, 한국에서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노곡리에 ‘아홉칸집’을 지어 정착했다.

네임리스건축

네임리스건축은 아이디어 기반의 설계사무소이다. 나은중과 유소래는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U.C 버클리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뉴욕에서 네임리스건축을 개소한 뒤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했으며, 예측 불허한 세상에 단순함의 구축을 통해 건축과 도시 그리고 문화적 사회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2012년과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미국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 AIA뉴욕건축가협회상, 보스턴건축가협회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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