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주택 설계, 그보다 더 오묘한 가족의 일상
‘아홉칸집’의 평면 구성과 입주 전 건축 사진을 보면 ‘과연 이 집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든다. 모든 방에 최소 두 개, 많게는 네 개의 문이 있고, 심지어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화장실에도 문이 세 개다. 게다가 욕조는 물론이고 부엌 싱크대까지 콘크리트이니 참 생경하다. 하지만 막상 에이리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면 ‘아홉칸집’이 매우 창의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네임리스건축의 기묘한 설계를 창의적인 일상으로 수용해 가는 이 가족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제목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가 암시하는 것처럼 에이리가족은 건축을 사랑하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존경한다. 그래서 반려견의 이름마저 코르뷔지에라고 짓고, 아이를 건축가로 성장시키고 싶어 한다. 에이리가족의 고경애는 일본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고 생활하다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다. 두 아이의 엄마와 화가의 삶, 그리고 새로운 주거를 갈망하는 그의 가치관이 ‘아홉칸집’의 건축적 실험을 어떻게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가는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소재를 두고 건축가-건축주가 함께 이어 쓰다
이 책은 마흔 개의 키워드로 구성된다. 이 책의 기획자이자 사이트앤페이지 박성진 대표는 네임리스건축이 지은 집에서 에이리가족이 살아가는 지난 시간 속에서 각자의 소재와 키워드를 발견해 절반의 글을 쓰고, 상대에게 원고를 보내 나머지 절반을 이어 쓰도록 제안한다. 이런 방식은 같은 소재에 대해 상대의 다른 생각을 엿보게 하며, 집을 설계한 이와 집에 살아가는 이가 어떻게 다른 시각과 관점을 갖고 있는지 발견하게 한다. 1년 동안 이어진 그들의 이어쓰기는 하나의 예술적 교감으로서 때로는 상대의 생각에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때로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며 고마움과 희망을 표현하는 창구가 되었다. 이들 사이를 오간 이야기는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의 대화를 넘어 우리의 집과 삶, 건축과 예술에 관한 깊고 진솔한 생각들이다. 1년 동안 ‘아홉칸집’을 오가며 내밀한 가족의 일상과 주변 풍경을 기록한 노경 작가의 사진들 또한 이들의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덜 만듦, 미완, 여백, 여지 ‘미술관’에서 ‘집’으로 돌아온 젊은 건축가
나은중, 유소래가 운영하는 네임리스건축은 화려한 국제 수상의 이력이 말하듯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건축가이다. ‘이름 없음’이라는 그들의 사무소명처럼 유(有)보다는 무(無)를, 완벽보다는 미완을, 채움보다는 비움을 건축적으로 모색한다. ‘완벽한 집보다 덜 만들어진 집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아홉 개의 칸은 마감도 되지 않고, 방의 목적도 정해진 바 없는 그저 비워진 구조물이다. 살아갈 사람은 방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가구를 들여 생활의 흔적으로 삶을 채워나간다. 여백은 텅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라고 말하는 네임리스건축은 일면 매우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모습으로 ‘아홉칸집’을 그려냈다. 덜 만듦과 미완, 여백, 여지는 조선시대의 달항아리와 막사발, 일본의 와비사비와 연결되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미학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들은 이런 철학적 개념들을 어려운 언어와 현학적 의미로 설명하지 않고, 우리 일상과 닿아 있는 ‘우물’ ‘비밀기지’ ‘돈’ ‘옥상’과 같은 친근한 소재들로 설명하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완전한 집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야말로 새롭고 창조적인 집을 만들어가는 씨앗이다. 네임리스건축은 지금껏 건축설계의 출발점인 단독주택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 ‘아홉칸집’은 네임리스건축의 첫 주택 작업으로 미술관에서 펼치던 건축적 실험을 주택이라는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