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라는 나무, 도시라는 숲
서울은 그저 한국의 행정부가 위치한 수도가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모든 것의 중심지이다. 한국에 살며 한국적으로 사고하는 이상 누구도 서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건축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지만, 숲 전체를 보려면 숲 밖으로 나가거나 숲 밖에 있는 이에게 물어야 한다. 지은이 울프 마이어는 서울 밖에 있는 이방인이며 그의 시선은 객관적이고 냉철하면서도 애정이 어려 있다. 우리에게 마냥 반가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 안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문화적·건축적 매력, 그리고 도시가 가진 다양성과 용기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은 그 생각의 전환이 단순히 건축물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 전체로 확장되도록 도우며 결과적으로 건축물이라는 나무를 모아 도시라는 숲을 보게 한다.
방대한 양의 한국 근․현대 건축물 망라
한국어판 발문에서 감수자이자 건축평론가인 이주연은 “독자들은 이 책이 ‘서울 속 현대 건축’이라고 해야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부분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곧 ‘우리 시대’의 서울을 직시하기 위함이라는 점 또한 언급한다. 그 말대로 이 책은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근·현대 건축의 전개 양상과 더불어 서울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2012년 출간된 영문판의 건축물 200개에 최근 지어진 건축물을 16개 추가하고, 건축물의 정보를 2015년 기준으로 첨삭·정리했다. 서울 중구에서 시작해 구별 대표 건축물과 인천․안양 등 주변 경기도 일부 지역 대표 건축물의 설립연도, 설계 건축가, 상세 주소와 건축 기법을 안내한다. 총 216개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건축물과 더불어 그만큼 다양한 건축가를 소개하기도 한다. 김수근부터 승효상, 김종성, 조민석 등 국내 건축가뿐 아니라 렘 콜하스, 자하 하디드, 구마 겐고 등 국외 건축가까지 서울의 건축에 관여된 건축가를 모두 포괄한다. 그 외에도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책 속에 등장하는 건축물과 관련된 기관이나 건축가와 직접 소통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추가 건축물의 원고는 이 책의 다른 감수자이자 월간 《건축세계》 편집장인 이경일의 손을 거쳐 전문성에 시의적 시선까지 더했다.
주요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지은이는 서울 방문객이 “도시의 ‘일상 건축’ 속에 숨겨져 처음에는 놓치기 쉬운 도시의 자그마한 부분까지도 들여다” 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 뜻에 호응해 한국어판에는 독자가 서울 구석구석까지 찾아갈 수 있도록 건축물의 지도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삽입하고, 책날개 안쪽에 서울 전체 지도와 가나다순으로 정렬한 건축물 목록을 수록했다. 이로써 서울 건축물 아카이브와 건축 연구 자료뿐 아니라 서울 건축 안내서의 기능까지 더해져, 이 책은 서울 건축 여행의 동반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