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의 진짜 무대는 거리였다
붓끝으로 포착한 패션의 예술
모든 사람이 카메라 셔터나 버튼을 눌러 빠르게 순간을 포착하는 사이, 임수와 작가는 붓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림 그릴 자리를 정하면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포토그래퍼와 인파가 시야를 가리고, 그사이 대상은 저만치 멀어져 가고, 한 패션쇼가 끝나면 다음 패션쇼장에 가기 위해 겨우 푼 짐을 다시 싸 들고 이동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작가가 붓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그린 초상화부터 두세 명이 대화하는 장면, 멀리서 바라본 거리의 패션 풍경까지, 『Fashion Moments』는 패션위크에서 목격할 수 있는 다양한 구도를 담았다. 특히 한 캔버스 위에 시간차를 두고 여러 순간을 겹겹이 그린 작품들은 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한눈에 포착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작가의 그림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거리의 흐름, 오고 가는 발걸음이 만들어낸 리듬을 표현한다. 런웨이 밖에서 펼쳐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은, 패션이 단순히 의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패션을 입고, 보고, 그리는 즐거움
작가는 각 도시의 고서점에서 찾은 빈티지 패션 도서를 캔버스로 삼았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시대의 패션이 겹치며,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에서 교차한다. 오래된 종이 위에는 깊이 있는 명암을 나타내기 위해 한국의 먹을 사용했고, 작가가 직접 휴대용 화판까지 만들어 갖고 다니며 정교하고도 빠른 붓놀림을 표현했다. 비가 내린 날이면 빗방울에 먹이 번지도록 했으며, 붓을 적실 컵이 없으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종이컵을 썼다. 임수와 작가가 거리에서 겪은 현장감은 그녀의 작품에 선명하게 남았다. 『Fashion Moments』는 단순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화집이 아니다. 패션을 입고, 보고, 그리는 즐거움을 담은 새로운 형태의 다큐멘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