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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 그리고 있습니다: Dear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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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토록 작고 시시한 고독은 왜 자꾸 오는가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삶 디자이너 박활민이 그린 산

지은이 박활민은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영화 아트디렉터, CF 감독, 인테리어 디자이너, 현대미술작가 등으로 활동했던 그의 이력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홀맨’이다. 한때 이동통신업계를 온통 사로잡았던 캐릭터. ‘홀맨의 아버지’로 불리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박활민은 여행을 하며 산업이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시대임을 깨닫고 ‘삶 디자이너’가 되기로 자처한다. 삶 디자인, 곧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에 만든 것이 ‘촛불소녀’ 였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온 여고생들을 보며 만들게 된 캐릭터를 통해 박활민은 시대가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 이후로는 ‘삶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삶을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삶을 어디서부터 턴할 것인가.’ 이런 화두로 도시에서의 주거 문제, 자급 생산, 생활 기술, 이동 수단, 에너지 전환, 커뮤니티 공간 등을 작업으로 발표한다.

편집자의 글

고독이란 손님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독’을 손님이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삶 디자이너이기를 자청하는 지은이 박활민은 고독을 ‘다루기 어려운 손님’이라 표현한다. “혼자 있는 날이면 책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맥주도 마셔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정성껏 해주면서 공을 들인다. 하지만 공이 끝나고 조명도 꺼지고 음악도 끄고 맥주잔을 싱크대에 놓을 때 고독이 찾아온다. (6쪽)”라는 부분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혼술(혼자 마시는 술), 혼밥(혼자 먹는 밥), 혼행(혼자 하는 여행)’이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혼자서 뭔가를 하는 일은 점점 익숙해지는데, 그 끝에 찾아오는 ‘고독’이란 손님은 매번 낯설기만 하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이 손님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지은이에겐 ‘고독’이란 손님이 더 자주 찾아온다. 그는 그때마다 0.03밀리 검정 펜을 든다. 자신을 외롭게 만들려고 찾아온 손님에게 되레 격려받으며 한 점 한 점을 정성껏 찍어나간다. 그 점들은 지은이를 집 밖으로 데려다주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곳으로 향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모여 이 책의 낱장을 이룬다. ‘나무, 사슴, 여우, 야크, 별, 설산…….’ 실존하는 단어들이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들이 꼭 현실에만 존재하는 것들은 아님을.

세계 인구가 70억이라고 한다면 지구에는 70억의 ‘고독’이 존재한다. 지은이는 고독이란 손님이 찾아오면 그림을 그리지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내’ 안에 답이 있다. 그 답을 찾기 어렵다면 지은이의 그림을 한 장씩 천천히 들여다보자. 고요하게 산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 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작가의 수첩을 고스란히 옮긴 작은 크기의 작품집

이 책 『요즘 산 그리고 있습니다』는 지은이의 글과 그림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은 영문, 중문, 일문으로도 번역되어 실렸다. 또한, 그림은 원작을 최대한 고스란히 옮겨왔다. 그림들은 원래 조그마한 수첩에 그려져 있었다. 기존에 나온 그림 작품집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지은이의 오리지널 수첩에서 느꼈던 신비로운 기분은 이 물성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수첩을 훔쳐보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첫 장을 열어보자.

책 속에서

홀로 있다는 것. 그 물리적, 심리적 요건들이 나를 그리게 한다. 홀로 있지 못하면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고독’이라는 재료가 준비되어야만 허가를 받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6쪽

혼자 있는 날이면 책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맥주도 마셔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정성껏 해주면서 공을 들인다. 하지만 공이 끝나고 조명도 꺼지고 음악도 끄고 맥주잔을 싱크대에 놓을 때 고독이 찾아온다. 고독은 언제나 마지막에 온다.

6쪽

그는 말이 없다. 공을 들여도 소용이 없다. 뭔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있는가? 하나의 가설을 세워본다. 혹시 홀로 있을 때만 작동하는 내가 모르는 작동법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홀로 있을 때 그걸 하라고 독려하기 위해 고독이 오는 게 아닐까. 만약 당신이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걱정스러운 당신의 고독은 무언가를 하기에 적합한 타이밍이 되어준다. 무엇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7쪽

다시 겨울밤. 나는 그 고독한 분위기에 격려받으며 한 점 한 점을 찍어나간다. 점들이 모여 작은 나무가 되고, 사슴이 되고, 점들이 쌓여 여우의 울음이, 야크의 근육이, 쏟아지는 별빛이, 눈 덮인 설산이 되어간다. 천천히 작은 노트에 새겨지는 놀라움이 내게 전해져온다.

10쪽

박활민

‘삶 디자이너, 생활 방식 모험가, 노머니경제센터장, 잔액부족초기 족장, 생각 수집가, 넝마스터, 다거점 거주 생활 방식을 위한 장소 임대업자, 낮 시간 기획자.’ 이렇게 이상한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나 산업이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시대임을 깨닫고 삶 디자인으로 개종했다. 삶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삶을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삶을 어디서부터 바꿀 것인가? 이런 화두로 도시에서의 주거 문제, 자급 생산, 생활 기술, 이동 수단, 에너지 전환, 커뮤니티 공간 등을 작업으로 발표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삶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을 기반으로 시작할 수 있다.”라는 좌우명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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