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작은 건축

小さな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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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중심의 건축을 추구하는 구마 겐고의 외침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세계적인 대화재와 대지진 등 큰 재앙을 겪으면서 인간은 콘크리트와 철골 중심의 ‘강하고 합리적이고 큰 건축’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에 이은 원전 사고는 ‘큰 건축’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작은 건축’을 지향하는 구마 겐고는 ‘물 벽돌(water block)’ ‘워터 브랜치(water branch)’라는 개념을 활용한 전시용 건축에서부터 오페라하우스와 세계적 브랜드 매장에 이르기까지, 크고 현대적인 건축보다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이용해 일반적인 통념을 넘어선 앞서가는 건축을 실현하고 있다.

편집자의 글

단순히 작은 것만으로는 ‘작은 건축’이라 할 수 없다. 이상적인 ‘작은 건축’은 자립하는 건축이다. 단순히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이용해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가 바로 ‘작은 건축’이다. 이 책에서 구마 겐고는 ‘쌓기, 의존하기, 엮기, 부풀리기’라는 네 가지 주제로 새로운 개념의 ‘작은 건축’을 실현하고 있다. 구마 겐고를 통하면 ‘물 벽돌(Water Block)’과 ‘워터 브랜치(Water Branch)’를 이용한 쌓기, 벽이나 자연물에 의존하기, 천과 나무, 타일 등을 이용한 엮기, 다실과 같은 작은 공간에 활용한 부풀리기 기법 등 상식을 뛰어넘는 이동과 재생이 가능한 ‘작은 건축’이 탄생한다.

물 벽돌, 워터 브랜치

19세기 서유럽 건축의 중심적인 시스템이었던 벽돌은 사람이 다루기 쉬운 소재였으나 무게와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고 재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도로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탱크에서 힌트를 얻은 구마 겐고는 폴리에틸렌 탱크 안에 물을 넣고 뺄 수 있는 물 벽돌이라는 아이디어에 창안해, 2004년 치과 의료 관련 덴탈 쇼에 이동과 복원이 가능한 작은 건축을 실현했다. 블록 쌓기의 기본 원리를 이용한 이 물 벽돌 건축은 그 뒤 영화를 상영하는 가설 부스, 민가의 재생 작업 등 다양한 장소에서 활약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마 겐고는 물을 넣어 쌓기만 하던 물 벽돌에서 밸브를 만들어 물이 내부에서 흐르게 하는 ‘워터 브랜치’ 단위를 개발했다. ‘워터 브랜치’를 이용해 지붕까지 가설하고 물의 온도 조절로 난방까지 해결할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무 엮기, 천 엮기

건축은 본질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다. 자연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마 겐고는 벽돌처럼 작은 단위를 쌓는 건축뿐 아니라 단위끼리 의존하는 구조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의존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위와 단위를 엮는 것이다. 잘 엮여야 튼튼하고 강한 건축을 만들 수 있다. 구마 겐고는 밀라노 스포르차 성 안마당에, 유목민들의 텐트에서 힌트를 얻어 나무막대를 사용해 엮는 건축을 실현했다. 이 엮는 건축은 더욱 발전해 정글짐 같은 구조를 이용한 아이이치 현 가스가이 시의 GC박물관, 일본 건축의 가장 큰 특기인 ‘나무 엮기’ 기술을 활용한 다자이후의 스타벅스 매장 등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매우 독창적이고 기발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그 후에도 엮는 구조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타일을 엮는 구조를 이용한 이탈리아 타일회사의 야외 기념비, 천 엮기 방법을 이용한 상하이 에르메스 매장 인테리어 작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건축물 쌓기, 우산 돔

그 외에 기생하는 나무로 빌딩을 덮은 긴자 티파니, 벌집 모양 구조를 이용한 스페인의 그라나다오페라하우스, 여덟 개의 단층 목조 주택을 쌓아올린 듯한 모습의 아사쿠사관광문화센터 등 자연 진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건축에 대한 구마 겐고의 관심과 노력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구마 겐고는 대재해 이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정부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이재민의 주택 만들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대재해가 닥칠 경우, 물자와 기술자들이 도착해 가설주택을 만들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임시 주거시설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구마 겐고가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활용한 것은 집에 있는 우산을 이용한 우산 돔이다.

구마 겐고의 ‘작은 건축’ 이후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계를 만드는 데 치중했고, 그 기계를 사용해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벽돌과 콘크리트, 철골에 열중하던 중에 19세기 후반 엘리베이터의 등장으로 건축은 더 크고 더 높이 만들기에 열중했다. 워터 브랜치라는 작은 건축의 목적은 기계론적인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부정이었다. 또한 20세기 이후 건축은 국가에 의해 준비된 자원과 에너지의 인프라에 깊이 의존했다. 구마 겐고는 건축이 생물들처럼 자립하고 인프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도시와 집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 세계인의 관심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의 손을 사용해 세상과 대치하려 하고 있다. 원전과 같은 큰 시스템을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들이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직접 둥지를 짓고 직접 에너지를 얻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신하고 있다. ‘작은 건축’은 그런 변화 속에서 탄생했다.

책 속에서

건축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새삼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지금까지 지나친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다. 거대한 재해가 건축계를 전환시켜왔다는 사실이었다. …… 인간은, 행복할 때에는 과거의 행동을 되풀이할 뿐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지만, 재해를 만나거나 비극을 당하면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앞으로 나간다. …… 비극을 계기로 발명이나 진보의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극에서 시작되는 건축사」, 7–8쪽

원래 한국의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의 장지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지문과 한국의 장지문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일본의 장지문은 나무틀이 실내 쪽에 있고 바깥쪽에 종이를 바른다. 반대로 한국의 장지문은 실내 쪽에 종이를 바르고 바깥쪽에 나무틀이 보이게 한다. 따라서 실내에서 보면 종이 너머 쪽에 나무틀의 그림자가 비쳐 보인다.
이 부분적 차이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는 자신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구성해가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두 가지 대조적인 해답이 감추어져 있다. 종이가 나무틀 바깥쪽에 있느냐 아니면 안쪽에 있느냐에 따라 생물로서의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거칠고 듬직한 한국의 건축」, 133쪽

강함과 크기를 뽐내는 사고는 얼마나 야만적인가. 중요한 것이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임을 인식하는 순간,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와 집착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듯하다. 오히려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질량이 아니라 질적 깊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한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작은 건축’은 자유를 넘나드는 좋은 무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를 통해 목격했다.

임태희, 「감수의 글」, 276쪽

차례

머리말 – 비극에서 시작되는 건축사

쌓기
작은 단위
물 벽돌
작은 주택 – 워터 브랜치
흐름, 자립하는 건축

의존하기
강한 대지에 의존한다
생물적인 건축 – 알루미늄과 돌의 ‘의존’
벌의 비밀 – 벌집이 낳는 공간

엮기
나무를 엮는다 – ‘지도리’박물관
구름 같은 건축 – 타일 엮기
카사 페르 투티 – 풀러돔에서 우산 돔으로

부풀리기
프랑크푸르트의 부풀린 다실
공간을 회전하고, 연다

마치고 나서
도판 출처, 사진 촬영자 일람

구마 겐고

1954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건축도시계획학과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구마겐고건축도시설계사무소 대표이며 도쿄대학 특별 교수, 명예 교수이다. 주요 작품으로 기로잔 전망대, 워터/글래스, 숲의 무대/도요마마치 전통예능전승관, 바토히로시게미술관, 그레이트뱀부월, 나가사키현미술관, 산토리미술관, 중국미술학원 민예박물관, V&A 던디, 2020년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점·선·면』 『의성어 의태어 건축』 『작은 건축』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연결하는 건축』 『자연스러운 건축』 『약한 건축』 등이 있다.

임태희

교토대학교에서 건축학 연구생 과정을 거치고 귀국해 6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그뒤 교토공예섬유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환경디자인전공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정을 거쳐 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내일의 건축』『마카로니 구멍의 비밀』『연결하는 건축』 『삼저주의』『백』『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준비된 행운』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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