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작은 것만으로는 ‘작은 건축’이라 할 수 없다. 이상적인 ‘작은 건축’은 자립하는 건축이다. 단순히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이용해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가 바로 ‘작은 건축’이다. 이 책에서 구마 겐고는 ‘쌓기, 의존하기, 엮기, 부풀리기’라는 네 가지 주제로 새로운 개념의 ‘작은 건축’을 실현하고 있다. 구마 겐고를 통하면 ‘물 벽돌(Water Block)’과 ‘워터 브랜치(Water Branch)’를 이용한 쌓기, 벽이나 자연물에 의존하기, 천과 나무, 타일 등을 이용한 엮기, 다실과 같은 작은 공간에 활용한 부풀리기 기법 등 상식을 뛰어넘는 이동과 재생이 가능한 ‘작은 건축’이 탄생한다.
물 벽돌, 워터 브랜치
19세기 서유럽 건축의 중심적인 시스템이었던 벽돌은 사람이 다루기 쉬운 소재였으나 무게와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고 재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도로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탱크에서 힌트를 얻은 구마 겐고는 폴리에틸렌 탱크 안에 물을 넣고 뺄 수 있는 물 벽돌이라는 아이디어에 창안해, 2004년 치과 의료 관련 덴탈 쇼에 이동과 복원이 가능한 작은 건축을 실현했다. 블록 쌓기의 기본 원리를 이용한 이 물 벽돌 건축은 그 뒤 영화를 상영하는 가설 부스, 민가의 재생 작업 등 다양한 장소에서 활약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마 겐고는 물을 넣어 쌓기만 하던 물 벽돌에서 밸브를 만들어 물이 내부에서 흐르게 하는 ‘워터 브랜치’ 단위를 개발했다. ‘워터 브랜치’를 이용해 지붕까지 가설하고 물의 온도 조절로 난방까지 해결할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무 엮기, 천 엮기
건축은 본질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다. 자연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마 겐고는 벽돌처럼 작은 단위를 쌓는 건축뿐 아니라 단위끼리 의존하는 구조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의존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위와 단위를 엮는 것이다. 잘 엮여야 튼튼하고 강한 건축을 만들 수 있다. 구마 겐고는 밀라노 스포르차 성 안마당에, 유목민들의 텐트에서 힌트를 얻어 나무막대를 사용해 엮는 건축을 실현했다. 이 엮는 건축은 더욱 발전해 정글짐 같은 구조를 이용한 아이이치 현 가스가이 시의 GC박물관, 일본 건축의 가장 큰 특기인 ‘나무 엮기’ 기술을 활용한 다자이후의 스타벅스 매장 등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매우 독창적이고 기발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그 후에도 엮는 구조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타일을 엮는 구조를 이용한 이탈리아 타일회사의 야외 기념비, 천 엮기 방법을 이용한 상하이 에르메스 매장 인테리어 작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건축물 쌓기, 우산 돔
그 외에 기생하는 나무로 빌딩을 덮은 긴자 티파니, 벌집 모양 구조를 이용한 스페인의 그라나다오페라하우스, 여덟 개의 단층 목조 주택을 쌓아올린 듯한 모습의 아사쿠사관광문화센터 등 자연 진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건축에 대한 구마 겐고의 관심과 노력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구마 겐고는 대재해 이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정부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이재민의 주택 만들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대재해가 닥칠 경우, 물자와 기술자들이 도착해 가설주택을 만들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재료를 이용해 임시 주거시설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구마 겐고가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활용한 것은 집에 있는 우산을 이용한 우산 돔이다.
구마 겐고의 ‘작은 건축’ 이후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계를 만드는 데 치중했고, 그 기계를 사용해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벽돌과 콘크리트, 철골에 열중하던 중에 19세기 후반 엘리베이터의 등장으로 건축은 더 크고 더 높이 만들기에 열중했다. 워터 브랜치라는 작은 건축의 목적은 기계론적인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부정이었다. 또한 20세기 이후 건축은 국가에 의해 준비된 자원과 에너지의 인프라에 깊이 의존했다. 구마 겐고는 건축이 생물들처럼 자립하고 인프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도시와 집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 세계인의 관심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의 손을 사용해 세상과 대치하려 하고 있다. 원전과 같은 큰 시스템을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들이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직접 둥지를 짓고 직접 에너지를 얻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신하고 있다. ‘작은 건축’은 그런 변화 속에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