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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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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뜰 속에 숨겨진 생명들을
간송미술관 연구원 탁현규가 오감으로 찾아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인 사임당, 그녀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초충도는 이름 그대로 뜰에 사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따라서 사임당의 그림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자연인 뜰이 주 무대였다. 『사임당의 뜰』은 그동안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알려졌던 사임당의 생애를 말하는 대신에 화가이자 예술가로서 사임당이 남긴 화첩 속 그림이 전하는 생명의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지은이 탁현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연구원으로 옛 그림들을 소개하는 『그림소담』 『고화정담』 등을 집필했다. 오랫동안 옛 그림을 보아온 지은이가 생각하는 초충도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오늘날에도 사임당이 크게 회자되고 초충도가 주목을 받는 이유를 “살아있는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 밝힌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땅에서 풀벌레와 어울리는 삶은 돈을 내고 경험하는 행위가 되어버렸지만, 생명체보다 사람의 감각을 더 크게 자극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도 초충도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사임당의 뜰』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사임당의 화첩〉과 〈매창의 화첩〉은 사임당의 그림 스물여섯 점과 매창의 그림 네 점을 소개한다. 책에 수록한 사임당 초충도는 사임당에게 전칭되는 작품들 가운데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오죽헌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초충도는 사임당 그림과 함께 여러 문인의 글과 시가 전해지는 중요 작이기도 하다. 또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임당의 큰딸인 매창의 화조도를 함께 실었는데 ‘작은 사임당’이라 불렸던 매창은 사임당과는 달리 먹으로 매화와 대나무 등을 그렸다. 사군자의 시초를 지은이는 매창의 화조도에서 발견한다. 2부 〈함께 이야기 나누며〉에서는 그동안 사임당에게 궁금했으나 물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가상의 대화를 통해 묻고 답한다. 매창, 율곡, 사임당과의 대화를 통해서 ‘어머니로서 사임당’뿐 아니라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는 ‘여성 예술가 사임당’을 소개한다.

편집자의 글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사임당의 초충도를 모사했을까

붉은 원추리, 남빛 개미취, 흰 패랭이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철이 되면 피어난다. 꽃이 피면 나비와 벌은 꽃으로 날아들기 바쁘고 계절이 익어감에 따라 열매도 함께 무르익어간다. 사임당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앞뜰에 소담하게 핀 꽃과 말없이 자라난 풀들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는지 깨닫게 된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사임당의 그림에서 생명력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모사작이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조선 시대 숙종 임금이 모사하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사임당의 초충도는 국내외 300여 점이 넘는 모사작이 있다고 전해진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기에 다양한 모사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임당과 매창의 화첩 속에서 살아난 생명들

사임당에 뜰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사임당의 뜰』은 사임당이 가꾸고 그린 그녀의 뜰을 책 속에 담았다. 지은이 탁현규는 사임당 화첩에 그려진 모든 생명들을 이야기한다. 슬쩍 보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벌레 한 마리조차 지은이는 소홀히 넘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 속 작은 무당벌레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찾는 재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무당벌레를 가리켜 “해충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곤충이자 남녀 간의 맺어진 사랑을 뜻한다”고 밝히며, 사임당이 작은 곤충을 그린 의미를 곁들여 준다. 또한 이 책은 사임당의 그림 속에 숨겨진 ‘마음’을 읽어준다. 가까운 이들이 건강하길 기원하는 마음, 아이가 시험에 붙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새로운 생명이 건강히 태어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사임당의 그림에 담겨져 있다. 이런 사임당의 마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임당의 뜰』은 꽃밭에 핀 꽃들을 찬찬히 바라보듯 사임당 그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게 한다. 그리고 세상에 제 소임이 없는 생명은 없다는 듯이 부지런히 그림 속을 기어가는 사마귀와 방아깨비, 도마뱀, 개구리 등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흙을 만지고 밟는 일이 힘들어진 것처럼 풀과 꽃, 열매, 곤충들의 이름을 알고 부르는 일 또한 어려워졌다. 이 책에 실린 초충도를 보며,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들의 생김새와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는 일도 소중한 교육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눈이 보고 싶어 하고 귀가 듣고 싶어 하고
입이 먹고 싶어 하고 코가 냄새 맡고 싶어 하는 것 중에
뜰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1쪽, 윌리엄 로슨(William Lawson)

뜰은 마당으로 들어온 작은 산수이다. 유람이 자유로웠던 남성들이 산수를 화폭에 담았다면 여성들은 뜰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해서 사임당은 자연스레 뜰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임당이 자신의 뜰을 그림으로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 시대의 뜰을 경험할 수 있다. 사임당의 뜰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사임당의 그림 속 뜰에 들어가 풀을 만져보고 꽃향기를 맡아보자. 그리고 벌과 나비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흙을 밟는 상상을 해보자.

12쪽, 「뜰에 들어서며」에서

묵포도 그림에서는 포도 알맹이의 농담을 달리해야 한다. 모두 짙어도 안 되고 모두 옅어도 안 된다. 모두 짙으면 송이가 무거워지고 모두 옅으면 가벼워진다. 무엇보다도 농담이 같으면 단조로워 기가 돌지 않는다. 옅은 알맹이도 농담이 조금씩 달라야 입체감이 생긴다. 줄기와 가지도 농담이 다르다. 오래된 줄기는 옅게, 새로 난 가지는 짙게 하는 것이 포도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그리는 방식이다.

20쪽, 「사임당의 화첩」에서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또한 초충도는 일종의 약초 도감이라 할 수 있다. 약으로 쓰이는 풀과 열매를 공부하는 교과서가 바로 초충도이다. 그런데 꽈리는 여름에 열리고 민들레는 봄에 핀다. 그래서 이 그림은 서로 다른 시기에 피는 꽈리와 민들레를 같이 담고 있기 때문에 연출했다고 할 수 있다. 민들레도 뿌리와 잎을 약으로 먹기 때문에 꽈리와 함께 놓은 것이다. 따라서 초충도를 그리면서 약초 공부도 겸하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38쪽, 「사임당의 화첩」에서

오이밭에 외꽃만큼 예쁜 무당벌레가 찾아 들었다. 무당벌레는 해충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곤충으로 여겼다. 무당벌레는 남녀 간에 맺어진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작은 무당벌레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찾는 재미가 있다. 여치는 베를 짜는 여인을 상징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곤충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오이, 나비, 무당벌레, 여치와 같은 생물들은 모두 가정이 편안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46쪽, 「사임당의 화첩」에서

옛사람들은 뜰에 사는 작은 생물에서도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보았다. 미물 더 이상 미물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생명이다. 미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초충도를 그리고 감상하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이었을지 모른다. 미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생명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사임당이 초충도를 그렸던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47쪽, 「사임당의 화첩」에서

매창은 기러기와 갈대, 달을 먹빛 하나로 그렸다. 화폭이 작아서 물은 생략하고 기러기도 한 마리만 크게 그렸다. 기러기의 가슴팍에 가로로 줄무늬가 있은 걸로 봐서 쇠기러기 같다. 물갈퀴 발을 땅에 디디고 고개를 들어 달을 본다. 저 기러기는 떠나온 북쪽 땅을 그리워하는 걸까? 보름달은 밤안개에 반쯤 가렸다. 안개는 푸른 먹으로 물들였고 달 주변은 검은 먹으로 물들여 안개와 밤하늘을 구분하였다.

149쪽, 「매창의 화첩」에서

어머니가 어릴 때 놀던 곳에서 저도 놀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머니의 피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환경까지도 이어받은 셈입니다. 동해의 넓고 맑은 기운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을 뵈지 못했던 외할아버지 신명화 공의 서재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서재에서 외할아버지의 책을 펼치며 저에게 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읽은 책을 어머니도 읽으시고 어머니가 읽은 책을 제가 다시 읽은 것이지요. 삼대가 같은 책으로 공부하였으니 이것이 글 읽는 집안의 아름다운 전통일 것입니다.

162–3쪽, 「율곡과의 대화」에서

저는 먹으로 매화나 대를 치다가 자연스레 다른 꽃나무로 소재를 넓혀 나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새가 나뭇가지에 앉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그린 수묵화조도가 탄생했습니다. 화조도는 이미 중국에서 있었지만, 초충도처럼 짙은 색에 세밀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수묵화조도는 중국 화조도와는 다른 그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초충도의 원조라면, 저는 수묵화조도의 선두주자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174–5쪽, 「매창과의 대화」에서

그림은 그리워서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운 게 없으면 그릴 게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늘 보고 자란 푸른 동해, 한양과 강릉을 오가느라 숱하게 넘은 대관령, 강릉에서 살던 집 마당에 핀 각종 꽃과 벌레들. 분주하고 팍팍했던 한양 살림을 이겨내는 데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유년을 보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가 닿을 수 없는 아쉬움을 머나먼 한양에서 그림으로 달랠 수 있었습니다.

191쪽, 「사임당과의 대화」에서

살면서 사생을 할 수 없다면 풀에 앉은 나비와 벌레, 나무와 새를 그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파트의 베란다처럼 작은 공간을 각종 식물이 가득한 작은 뜰로 바꿔 놓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사임당의 후손들이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주는 정성이 아직 남아 있는 한국인은 우리 시대의 초충도를 그릴 힘이 있다. 그런 힘을 북돋워 주는 선배가 바로 사임당이다.

199쪽, 「뜰을 나오며」에서

차례

뜰에 들어서며

사임당의 화첩
묵포도
쏘가리

사임당초충화첩
달개비와 추규
민들레와 땅꽈리
맨드라미와 도라지
오이와 개미취
가지와 땅딸기
수박과 개미취
원추리와 패랭이
양귀비와 호랑나비

신사임당필초충도
수박과 들쥐
가지와 방아깨비
오이와 개구리
양귀비와 도마뱀
원추리와 개구리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여뀌와 사마귀
추규와 개구리

신사임당초충도병
오이와 메뚜기
수박꽃과 쇠똥벌레
수박과 여치
가지와 사마귀
맨드라미와 개구리
양귀비와 풍뎅이
봉선화와 잠자리
원추리와 벌

매창의 화첩
월매도
신죽쌍작
월야노안
화간쟁명

함께 이야기 나누며
매창과의 대화
율곡과의 대화
사임당과의 대화

뜰을 나오며

용어 해설
도판 출처
참고 문헌

탁현규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미술사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사임당의 뜰』 『그림소담』 『고화정담』 『조선 시대 삼장탱화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있으며 서울교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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