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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사비: 다만 이렇듯

Wabi-Sabi: Further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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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평범하고 특출나지 않은 듯한 것에
존재감이 아예 없는 듯한 것에 깃든 비범함

이 책 『와비사비: 다만 이렇듯』은 한국어판 기준 2019년 출간된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를 보완하는 동시에 더욱 심화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 레너드 코렌은 전작에서 와비사비를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이며 미완성된 것들의 아름다움이다. 소박하고 수수하며 관습에 매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다.”이라 명시했다. 저자는 전작 이후 와비사비의 인식 체계가 광범위하게 수용된 것에 만족했지만, 동시에 와비와 사비가 결합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는 데 소홀했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 책은 그로 인해 파생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쓴 것이다.

책은 먼저 와비사비의 인식 체계와 어원을 다시금 간략히 설명하고, 와비차가 창안된 전국시대부터 ‘활기 띤 시대’를 지나 최후를 맞기 전까지를 톺아보며 와비사비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명확히 밝힌다. ‘와비차의 시대’의 생성과 실행에 동참했던 이들은 적합한 물질성, 환경, 심경에 관한 자기 생각을 편지, 일기, 시, 주석 등 수많은 문서로 남겼다. 저자는 연구 결과와 자신의 통견을 거쳐 와비사비의 온전한 의미, 즉 명료하게 개진된 사상의 매개체를 언어로 정리했다. 미적 타자, 일상적인 것의 변용, 무의 가장자리에 있는 아름다움, 고매한 청빈, 그리고 불완전성. 이 모두가 와비사비 본유의 특성에 대한 감을 일깨워주는, 와비사비의 미적 구성 요소의 토대다.

마지막 두 장에서는 현대 세계에서 와비사비의 위치라는 색다른 문제를 다루었다. 전작이 출판된 후 각종 분야의 창작자가 더러 와비사비라고 묘사된, 고의로 낡고 해묵어 보이게 한 걸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디지털화된 현실과 와비사비가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와비사비가 디지털 형태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와비사비처럼 보이는 것들이 정말 와비사비인가? 와비사비는 단지 스타일이 되었을 뿐인가? 누가, 무엇이 와비사비를 만드는가? 와비사비와 디지털 영역은 왜 양립 불가능한가? 책은 이런 의문을 상세히 고찰하며 독자와 함께 물질성 및 물질성의 본질을 숙고한다.

편집자의 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청빈, 겸허와 겸양, 그리고 단순함의 태도

현대의 다도는 보수적이고 고상한 취미 정도로 취급받지만, 와비차 다두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센노 리큐가 가장 중요하게 열거한 ‘조화, 존중, 순수, 평온’은 바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덕목들이었다. 오히려 와비차의 시대에 다도가 강조했던 것은 ‘선(禪)의 태도’였다. 단순함을 철저히 지향하고, 인위적인 기교를 지양하며, 청빈을 심미화했다. 공손하게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작은 문을 통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온 다객이라면 신분의 차이 없이 동등하게 차를 마셨다.

다실에서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과, 외국의 것은 국내의 것과, 매끈한 것은 거친 것과, 값비싼 것은 값싼 것과, 유명한 것은 무명의 것과,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과 나란히 놓였다. 농부의 밥그릇을 찻잔으로, 빈 기름병과 약통을 차 보관함으로, 짚을 엮은 농가의 지붕을 초막 다실의 지붕으로 활용했다. 평범할지라도 모든 사물이 지닌 ‘본질적인 특이성’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책을 통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성으로 가득한 예술적 모험을 거치고 나면, 사물을 보는 방식이 새로워지며 일상의 순간마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옮긴이의 말처럼, “우리에겐 저마다의 달이 있다. 결국 우리가 이 책을 경험하며 발견하는 것은 불성(佛性)처럼 우리 각자가 본디 지닌 와비사비의 마음이다.”

번역 과정에서 추가된 옮긴이의 흥미로운 주석은 거의 그대로 두었다. 대신 저자의 주석 대부분을 본문에 녹여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책의 물성 면에서는 원서와 마찬가지로 작고 가볍고 수수한 책을 만들기 위해 잠잠한 색깔, 자연스러운 촉감의 종이, 간솔한 서체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했다. 원서의 부제가 한국어판 서문의 제목으로 차용한 ‘상세한 고찰(Further Thoughts)’인 만큼 이 책은 전작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를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설명의 과정을 거치지만, 함께 본다면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사유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와비차의 발생지는 다실(茶室)이었다. 와비차의 다실은 규모가 작았고 비교적 투박했다. 주로 정원 내에 있는 별도의 작은 초막을 다실로 삼았다. 바깥세상의 고초와 근심으로부터 단절된 다실의 안쪽에서는 사회의 관습과는 관계없이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가치가 정착했다.

18쪽

왜 와비와 사비는 한 단어로 합쳐진 적이 없었을까? 그 누구도 와비사비가 매우 어색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나, 혹은 다뤄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역사가 및 다도 관련 기관 들에게 두 단어를 하나로 결합하는 데 드는 노력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너무 막중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수백 년의 전통을, 더 거슬러 올라 어원의 희미한 흔적을 뒤집어 놓을 수도, 그리고 문화의 수면을 전반적으로 휘저어 놓을 수도 있다. 그 위험을 무릅쓸 일본 예술 유산의 수호자는 거의 없어 보인다.

43쪽

적잖은 궁리 끝에 와비사비는 오늘날 와비차의 개념적 후계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개념으로서의 와비차이기 때문에 차는 있든 없든 상관없다. 와비사비는 분명 와비차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다소 다른 것으로, 더 포괄적이고 더 평등한 것으로 탈바꿈되어 왔다. 한때 와비차가 사비의 모든 의미를 포괄했듯이 이제 와비사비는 와비차의 모든 의미를,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을 포괄한다.

52쪽

창작의 과정을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사물은 (예술가나 제작자의) 기술적이거나 개념적인 개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이 관점엔 자아가 없다. 일본인의 언어 관습을 빌려 와비사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서술한다면 와비사비는 그저 ‘발생한다’는 단순한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71쪽

어느 경우에도 물질성의 영리화에 문제는 없다. 심지어 물신화에도 문제가 없다. 물질 가치를 만들어 영위하는 것은 인류가 늘 해오던 것이다. 와비사비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전적인 관습은 누군가에게 와비사비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기실 와비사비의 것들은 ‘깨달음을 주는 물질’로서, 더러 신비스러운 지위를 방불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물질성은 그저 물질성일 뿐이다. 물질성 자체에 내재한 목적은 없다.

77–78쪽

와비사비의 시선으로 볼 때 쓸모없고 사소하며 중요치 않은 것들은 오묘함의 양상들이다. 오묘함은 극도로 정밀하고 섬세하며,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것들을 함유한다. 또한 오묘함은 인식하거나 분석하거나 서술하기에 난해하다. 와비사비에 있어 그 어떤 정보든 도외시되는 것은 자연계에서 어느 한 종(種)이 소멸해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91쪽

차례

더 상세한 고찰

와비사비의 우주
와비사비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1
와비사비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2
와비사비 본유의 물질성
와비사비의 현실과 디지털 현실

주석
사진 설명
옮긴이의 글

레너드 코렌

뉴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한 레너드 코렌은 건축을 전공했지만 기이하게 생긴 일본식 다실을 제외하고는 정작 아무것도 지은 적이 없다. 영구적인 대형 건물의 설계는 철학적으로 너무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집필과 출판에 눈을 돌려 1970년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매거진이라 평가받는 《WET: the Magazine of Gourmet Bathing》을 발간했다. 1981년 잡지 발행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이주해 여러 권의 미학 관련 책을 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디자인과 미학 분야의 저술 활동을 한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배치의 미학』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 『이것은 선이 아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박정훈

국문학과 사진을 전공했다. 〈검은 빛〉 〈먼 산〉 〈시절들〉 〈Every Little Step〉 외 사진전을 열었다. 레너드 코렌의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 『이것은 선이 아니다: 자갈과 모래의 정원』 『예술가란 무엇인가』 『와비사비: 다만 이렇듯』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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