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千利休 無言の前衛

온라인 판매처

뛰어난 인문학적인 통찰과 예술적 감각으로 빚은
전위예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예술론

『나라는 수수께끼』 『사각형의 역사』 『신기한 돈』 등 아이와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전위예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일본 최고의 다인 센노 리큐와 다도(茶道) 이야기로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며 독자와 다시 만난다. 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는 예술의 전방위에서 활약한 겐페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한 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담은 책이다. 겐페이의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할복 명령을 받고 불운하게 삶을 마감한 일본 다도의 대가 센 노 리큐의 삶을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 의뢰로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그 길에서 그는 다도의 가치, 리큐와 히데요시의 관계성, 일본과 서유럽의 미의식의 차이, 거리의 사소한 것들에서 미적 감각을 찾아내는 노상 관찰학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예술’이라는 개념에 접근한다. 그리고 한국의 평범한 밥그릇에서 미를 발견하고 다도를 완성한 센노 리큐의 길을 따라 찾은 한국에서 동아시아의 공통된 미의식을 발견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비단 그가 살았던 시대에 국한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예술가, 디자이너에게도 이는 영원히 품고 가야 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겐페이는 이 어려운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센노 리큐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설득해 굴복시키는 히데요시와 말없이 표현하는 리큐, 말이라는 경제로 지배하려는 히데요시와 그 경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리큐, 말이 많은 세계에 살았던 히데요시와 말이 없는 세계에 살았던 리큐를 예술과 정치라는 상반된 세계의 대표자로 놓고 그 흥망성쇠를 통해, 이 세상에서 예술이 어떻게 소비되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설명한다. 겐페이에게 예술이란 언어를 넘어서는 것, 즉 무언이자 직감이자 자연이다. 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에는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그린 일러스트가 곳곳에 담겨 있다. 그의 정감 어린 일러스트와 함께 인문학적인 통찰과 예술적 감각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사유의 과정은 뛰어난 에세이스트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진수를 만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편집자의 글

예술의 의미를 찾으려는 한 예술가의 웅숭깊은 사유

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는 문학, 미술,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한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센노 리큐와 다도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예술론이다. 겐페이에게 예술은 다도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언어 너머, 무언의 선상에 존재하며 극소와 축소를 추구한다. 다도가 바로 그런 예술적 사상운동의 실험실이었다는 것이 겐페이의 시선이다.

그는 그런 축소와 극소의 힘을 일본의 미적 감각 전반에서 찾아내면서 그것을 ‘빈핍성(貧乏性)’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의식은 센노 리큐가 구상한 축소의 다실, 다실의 출입문인 니지리구치(にじり口), 거리의 벽보, 아스팔트에 생긴 작은 정원 쓰보니와(壺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미의식이 바로 전위(前衛)의 시선이며 전위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즉 이미 존재하는 세상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단 한 번뿐인 독창적인 미의식. 그것이 예술의 근원이며 가치라고 본다.

겐페이는 이러한 전위의 시선이 한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동아시아적 미의식이라고 분석한다. 서유럽화의 흐름, 다시 말해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성을 드러내는 문화가 아닌 자신을 자연 안에 숨기는 문화, 소박하고 극소의 미를 추구하는 미의식이 동양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설치미술가 최재은, 현대미술가 이우환과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을 창경궁 후원에서, 다실의 출입구인 니지리구치를 한국 양반촌에서 발견하고 그 미의식의 공통점과 의미를 분석한다. 즉 한국의 도공들이 빚은 소박하고 단순한 이도다완 같은 다기들이야말로 일상에서 외면당한 가치를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동양의 예술 감각이라는 것이다.

겐페이는 이 책에서 예술의 거대한 근원이 무엇인지 끝없이 묻는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불 완전하고 불균형한 미의식을 예시하는 이유도 서유럽의 미의식에서 벗어나 일그러짐, 어긋남, 비대칭 등 더 작고 소박한 미적 감각에 감응하기 위해서다. 결국 겐페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술의 순수성이다. 인위적이고 가공된 언어의 잔치, 화려하고 이상적인 형식미가 아닌, 언어를 추월해서 언어를 빠져나가는 언어 너머의 예술,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가는 전위의 예술이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는 그저 한 지식인이 풀어놓은 어려운 예술 이론서가 아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 예술가의 웅숭깊은 사유의 여정이자, 예술을 향한 한 예술가의 순수한 애정이다. 독자들은 에 도시대와 전후 시대를 넘나들고, 일본과 서유럽, 한국을 건너며 펼쳐지는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지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의 여정을 따라가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일본의 역사는 그 단순한 차를 추구한 끝에 다도라는 ‘도’를 만들어냈다. 용해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응결되고 굳어지면서 하나의 사상을 낳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느낌이다. 즉 차는 산책과는 다른 결과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가무음곡(歌舞音曲), 무술이나 학문 등을 추구하여 하나의 사상에 이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차가 그런 사상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고 해학적이며, 그럼에도 통쾌한 쾌거다.

「다도의 마음」, 8쪽

다도는 조용한 예술이다. 언어를 개입시켜 토론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얻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원래 말이 많은 세계는 아니다. 다도는 다실에서 차를 달이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그 흐름 속에서 손과 도구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대화 형태를 띠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비해 말수가 매우 적은, 말이 없는 세계다. 따라서 리큐도 말이 없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리큐는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차를 통해 무언의 원리를 표현하려 했다.

「다도의 마음」, 19쪽

전위예술은 빛의 미립자, 아니, 그림자의 미립자가 되어 일상생활 전역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첨단부에서 찾는 것보다 오히려 예술에서 벗어나 일상의 거리를 걷다가 그곳에 흩어져 있는 전위예술이라는 그림자의 미립자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노상관찰학(路上觀察學)’이 완성되었다.

「타원의 다실」, 34쪽

일본의 다도에서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이도다완은 일상에서 외면당한 가치를 소생한 것이다. 사실 이도다완의 근본은 한국에서 극히 일상적으로 쓰는 밥공기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싸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와 리큐의 눈에 띄면서 “훌륭해.”라는 감탄을 낳았고, “이런 것은 일본에서 본 적이 없어.”라는 새로운 발견을 안겨주었다.

「리큐의 발자취」, 131쪽

다도는 직감의 세계다. 직감은 언어의 논리를 추월하는 감각이다. 언어를 추월해서 언어를 빠져나간다. 언어의 논리로 보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언어의 연장선 위에 존재한다.

「리큐의 침묵」, 197쪽

다도이건 화도이건 이른바 기술이라고 불리는 것은 구조가 비슷하다. 거기에 존재하는 형식미에 몸을 맡기는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라톤 선두 그룹이 그렇지 않다, 본래 와비차는 형식미가 아니라 형식미를 무너뜨리는 데 존재한다,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데 존재한다고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뒤에서 따라오는 그룹은 그런 현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이게 좋아. 정해진 형식을 완수해내는 데서 기쁨을 느끼거든. 그러니까 당신은 빨리 앞으로 돌아가 선두에서 열심히 달려.” 하는 거부 반응이 나오는 것이 전위의 비애다.

「리큐의 침묵」, 205쪽

우연도 무의식도 모두 자연이 만든다. 자연을 따른다는 것은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타력사상은 그렇게 자신을 자연 속에 맡기고 자연체로 확장하면서 인간을 초월하는 것 아닐까.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자연체인 내 몸 안에서 확대된 리큐를 만났다.

「타력의 사상」, 215쪽

차례

서론: 다도의 입구

타원의 다실
리큐에게 다가가는 루트
축소의 예술
불균형의 미의식

리큐의 발자취
사카이에서 한국으로
양반촌에서 교토로

리큐의 침묵
다도의 마음
언어의 힘과 침묵의 힘
내가 죽으면 다도는 끝난다

결론: 타력의 사상

마치고 나서
참고문헌
옮긴이 주

아카세가와 겐페이

1937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현대미술가, 소설가로 무사시노미술대학교 유화학과를 중퇴했다. 1960년대 전위예술 단체 ‘하이레드센터(High Red Center)’를 결성해 전위예술가로 활동했다. 이 시절 동료들과 도심을 청소하는 행위예술 〈수도권 청소 정리 촉진운동(首都圏清掃整理促進運動)〉을 선보였고, 1,000엔짜리 지폐를 확대 인쇄한 작품이 위조지폐로 간주되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아사히저널》과 만화 전문 잡지 《가로(ガロ)》에 「사쿠라화보(櫻画報)」를 연재하며 독자적 비평을 담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다. 1981년 ‘오쓰지 가쓰히코’라는 필명으로 쓴 단편 소설 「아버지가 사라졌다(父が消えた)」로 아쿠타가와류노스케상을 받았다. 1986년 건축가 후지모리 데루노부, 편집자 겸 일러스트레이터 미나미 신보와 ‘노상관찰학회(路上観察学会)’를, 1994년 현대미술가 아키야마 유토쿠타이시(秋山祐徳太子), 사진가 다카나시 유타카(高梨豊)와 ‘라이카동맹(ライカ同盟)’을, 1996년 미술 연구자 야마시타 유지(山下裕二) 등과 ‘일본미술응원단(日本美術応援団)’을 결성해 활동했다. 2006년부터 무사시노미술대학교 일본화학과 객원 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노인력』 『센노 리큐』, 공저로는 『일본미술응원단』 『교토, 어른의 수학여행』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책을 남겼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초예술 토머슨』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신기한 돈』 『나라는 수수께끼』 『사각형의 역사』와 공저서 『노상관찰학 입문』 등이 있다. 2014년 10월 26일 일흔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정을 거쳐 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내일의 건축』『마카로니 구멍의 비밀』『연결하는 건축』 『삼저주의』『백』『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준비된 행운』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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