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과잉의 시대에 수작의 의미를 묻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넘쳐나는 기술에 압도당하고 있다. 가면 갈수록 평범한 삶과 멀어지는 거대 기술의 진화 방향 때문에 사물의 원리나 설계에 대한 이해 없이 맹목적인 소비만을 강요당하기 일쑤다. 당장 우리는 가까운 미래를 알아보는 눈조차 잃어가고 있다. 결국 이렇게 차고 넘치는 기술은, 미래에 대한 투명성과 권능을 부여하기보다는 우리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저 멀리 어두컴컴한 ‘암흑상자’ 같은 밀봉된 미래로 인도할 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기술을 사료 삼아 먹고 자라 탐색과 자율 감각을 잃은 현대인의 기괴한 모습에서 과감히 벗어나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저항을 촉구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제작 문화’를 통해 사물의 설계와 원리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사물에 수작 부리기’는 이렇듯 기술 소외로 퇴화하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대응이자 미래 생존과 공생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수작’은 손과 몸으로 기계와 사물을 더듬어 지혜에 이르는 ‘수작手作’ 부리는 행위이기도 하고, 그 사물의 질서에 비판적 딴죽을 거는 ‘수작酬酌’질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책에서 말하는 수작이란 줄곧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오로지 쓰는 데만 익숙한 채 사물과 기술의 질서를 대하는 우리 현대인의 안이함과 무기력함을 일깨우기 위한, 손과 몸을 매개한 인간의 적극적인 실천과 개입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기존 과학기술의 성장, 발전, 승자독식 개념을 공동체적 공생의 ‘수작과 제작’이란 프레임으로 재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의 허상에서 기술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으려 헤매기보다는, 이제 조금 느리더라도 주어진 환경에 맞춰 움직이려는 제작 문화를 구상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찾는 ‘기술과 몸의 앙상블’이란 문명의 지혜에 다가서는 길이기도 하다.
제작 문화의 [심], 미학적 가치와 담론을 그리다
이 책에 참여한 8인의 필진은 제작 문화와 관련해 꾸준히 연구하며 대안의 교육 설계, 문화 실천 그리고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가치 찾기를 시도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제작 문화를 대하는 사회 감각과 현장 배경도 매우 다채로운데, 이 책에서는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되 방향성에 따라 크게 두 묶음으로 나누었다. 먼저 1부 제작의 ‘심’에서는 주로 제작의 미학적 가치와 철학, 역사, 담론을, 2부 제작의 ‘꼴’에서는 그것의 구체적 양상과 실천 방법을 논한다. 1부 네 편의 글은 주로 수작과 제작 관련 이론에 방점을 두어 오늘날 제작 문화의 위상학적 지형을 그려내고 이로부터 대안 구성까지 논의하고 있다.
1부 제작의 ‘심’을 여는 첫 글에서 이광석은 제작 문화를 동시대 기술 환경뿐 아니라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사물에 대한 성찰적이고 공생의 관계론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사물을 꿰뚫어보는 제작의 힘이란, 사물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다시 고쳐 쓰면서 현대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몸 감각의 퇴화를 유보하고 사물의 이치를 간파할 때 생성된다고 말한다. 이때 제작하는 감각을 단순히 개인 차원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호혜적 관계 속에서 사물에 대한 공통 감각을 개발해 상생과 공존의 삶을 도모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이어지는 장훈교의 글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미래 설계와 제작 문화 전망과 비전을 연결하고 있다. 특히 탈성장 운동과 제작자 운동의 융합을 도모해 시장 발전주의적 지향을 털어내고 ‘성장 이후’의 구체적 미래를 구상한다. 그는 이 둘의 운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재정립하길 요청하면서, 소비를 줄여 하나의 상품을 고쳐 쓰는 ‘절제’의 방법과 자본주의 상품 의존을 줄이는 대안 제작 방법을 모색한다. 아울러 새로운 도시의 자유를 탐구하는 ‘시민제작도시’를 규정하고, 분산제작 시스템의 도입과 확산을 통해 일상생활의 필요를 충족하는 대안 제작의 기술을 시민에게 접속할 것을 제안한다. 한편 최혁규는 국내 제작 문화에 대한 논의를 크게 세 가지로 살피고 있다. 중앙정부에 따른 경제주의 담론, 서울시와 관련 정부 연구기관들을 통한 사회혁신 담론, 문화와 예술 현장을 둘러싼 비판적 제작 담론이다. 그의 글은 제작 담론의 지형을 살피는 목적을 지니지만, 동시에 국내 제작 문화의 역사적 전통과 맥락, 이미 국내 제작 문화의 주류가 된 ‘메이커 운동’의 확산 의도, 창작·제작 담론들의 상호 관계 등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1부를 마무리하는 신현우의 글은 주류화된 메이커 문화의 질서 속에서 궁극적으로 제작 문화의 대안 찾기에 대해 되묻고 있다. 그는 ‘DIY(자가제작 운동)’의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전사를 통해 제작 문화의 옛 계보를 따지는 한편, 현재 진행 중이나 비판적 태도에서 벗어난 ‘메이커 운동’의 자본주의적 포획을 크게 우려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마르크스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개념을 가져와 자본주의적 노동과 생산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개인들의 연대와 상호 공동체를 만들어 기술사회적 지평의 확장을 꾀할 것을 제안한다.
제작 문화의 [꼴], 구체적 양상과 실천 방법을 제안하다
2부 제작의 ‘꼴’에서 만나는 네 편의 글은 현실에서 관찰되는 제작 문화의 실제 모습을 비판적으로 전달한다. 좀 더 현장의 목소리에 가까운 경험과 통찰을 담아 제작 문화를 통한 사물 탐색과 공생의 실천에 깊이 닿아 있다. 그 포문을 여는 박소현은 ‘크리티컬 메이킹(비판적 제작 문화)’이라는 서구에서 시작된 제작 문화의 주요 개념적 논의를 정리한다. 예컨대 ‘만들기making’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제작 문화의 근원, 주류화된 ‘메이커 문화’에 대비되는 제작 문화의 비판 정신 그리고 제작 행위를 통한 문화정치적 저항과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서구 제작 문화의 비판적 전통과 달리, 이미 국가 주도형 사업이 되어 다양한 시민사회의 공적 가치 개입이 요원해진 국내 4차 산업혁명의 과잉을 현실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접근할 것을 요청한다. 이어지는 세 편의 글은 그들 스스로 창작과 제작을 몸으로 직접 수행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먼저 언메이크랩 최빛나, 송수연 듀오의 글은 사물로서 ‘키트’를 매개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제작 문화의 역사를 살핀다. 이들은 키트에 대해 그 사물이 닫힌 완제품의 기술이라기보다 이용자의 해석과 다른 사물과의 접합으로 무한히 열린 과정적·매개적·수행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이는 두 사람이 키트를 상업화된 기술의 ‘암흑상자’라 간주하기보다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며 구축하는 ‘회색상자’로 보고 접근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다음은 ‘오토마타Automata’ 예술을 행하는 전승일 작가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된 오토마타, 즉 자동인형기계의 동서양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자본주의 자동기계와 오토마타의 다른 점을, 인간의 미학적 이상과 감성이 이입된 자동인형의 운동성과 생동성에서 찾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표준화된 기계와 사물의 꽉 짜인 시장 질서가 주는 지루함이 아니라, 자동으로 반복해 움직이지만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이 응축되고 스며들어 내적으로 결합된 사물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적 희열을 높이 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정리하는 글을 쓴 생활기술 실천가 김성원은 몸소 경험한 자전적 수작론을 펼치고 있다. 오랫동안 생활기술이자 적정기술의 일환으로 삼고 흙, 실, 철, 석조, 볏짚, 목공 작업을 하며 손과 몸의 감각을 익힌 그는, 이를 통해 사물의 원리를 이해하고 삶을 재조직할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김성원은 동시대 제작자 운동이 불붙은 경위에 전 세계 자본주의 금융과 발전 위기가 가로놓여 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각자도생의 방안으로 시작된 오늘의 제작자 운동을 잘 보듬어 인간 삶을 이해하고 풍요롭게 하는 촉매로 적극 견인해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책을 관통하는 주요한 메시지이자 제작 문화를 이루는 모두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