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

Wabi-Sabi for Artists, Designers, Poets & Philosop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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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본질에 집중해
홀로 소박하게 실천하는 삶의 사유, 와비사비

한국 영화로 리메이크까지 만들어진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일본의 국민배우 기키 기린이 다도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일일시호일〉.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완벽한 일상은 아니지만 소소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와비사비의 철학이 담겨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책 『와비사비』는 일본의 미학이라고 알려진 ‘와비사비’를 이방인 레너드 코렌이 일본의 다회를 체험하고 쓴 책이다. 기대를 하고 찾아간 다회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화려하고 완벽하기만 해 본질이 사라진 와비사비였다. 현대의 와비사비는 모더니즘에서 파생된 심플라이프, 미니멀라이프에 속한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진정한 와비사비는 그런 깔끔하게 비워낸 라이프 스타일과는 다르다. 자연과 시간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활 속에 녹아 있는 투박하고 따뜻한 생활 정서이며 지금에 집중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실천적 삶의 태도다.

이 책은 ‘와비사비’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역사적 배경과 그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다. 와비사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다도(茶道)다. 와비사비가 다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고 그 사상이 왜 변질되었는지 상세하게 서술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했던 와비사비의 특징을 인위적이지만 체계적으로 분석해 삶의 방식으로서의 ‘와비사비’를 지금에 맞게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지은이가 와비사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건조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느낌의 사진으로 담아 말로는 명확하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와비사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와비사비가 결코 낯선 것이 아닌, 지금 주변의 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라 말해주며 나만의 와비사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편집자의 글

모더니즘의 트렌드를 뛰어넘어
투박하고 단순하며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와비사비’의 의미에 대해 일본인에게 물었을 때 과연 얼마나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대부분 대답하기를 꺼려하면서 설명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지은이 레너드 코렌은 와비사비의 역사가 그 의미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와비(わび, 侘)와 사비(さび, 寂)라는 일본어는 의미가 전혀 다른 뜻이었다. 와비는 자연에서 홀로 지내는 참담함과 허탈함, 생기 없는 감정을 나타내지만 사비는 쓸쓸하고 수척하며 메마른 것을 나타냈다. 하지만 선불교, 다도와 결합되고 긴 역사를 거치면서 그 경계는 모호해져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현대에는 그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어 모더니즘에 바탕을 둔 라이프 스타일의 일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와비사비의 맥락은 모더니즘의 그것과 사뭇 다르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확실히 모더니즘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둘 다 그 시대의 주류였던 미적 감성의 반작용으로 태어났고 불필요한 모든 장식을 배제하며 전혀 반대되지만 뚜렷한 표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른 점이 훨씬 더 많다. 모더니즘은 영구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인공적이고 매끈한 표면과 완벽한 물질성을 추구하며 차갑다. 반면 와비사비는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현재지향적이며 자연적이고 가공되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본연의 물성을 중시하며 따뜻하다.

와비사비의 아름다움은 일상의 소박함과 까다롭지 않은 단순함, 자연에 순응하며 변해가는 불완전함을 즐기는 데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한 켠 어딘가에 소소하게 존재하는 것들이며 현재에 집중해 자신을 마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와비사비는 왜 한중일의 아름다움인가

초기 와비사비는 도교와 선불교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움,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와 9–10세기 중국의 시와 수묵화에서 느껴지는 적막함과 우수, 미니멀리즘적 감각에서 기인했다. 이런 요소들이 16세기에 일본풍의 와비사비로 통합되면서 다도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실현되었고 승려이자 다진 센노 리큐(千利休)를 통해 그 정신이 확립된다. 센노 리큐는 중국식의 화려하고 완벽한 보물을 가치 있게 보던 미적 관념에서 벗어나 조선의 막사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농촌의 오두막을 원형 삼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온전히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한 평짜리 다실로 와비사비 미학을 완성한다. 이것이 레너드 코렌이 조선의 막사발이 없었다면 와비사비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며 와비사비를 한중일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와비사비는 센노 리큐 이후 상당히 변질되어 지금은 와비사비하게 들리고 와비사비하게 보이는 것들로 넘쳐난다. 그렇다면 한중일의 미적 감성이 융합되어 탄생한 와비사비를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센노 리큐가 말한 일기일회(一期一會), 바로 이 순간 발생하는 모든 것에 집중해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책 속에서

본래 와비(わび, 侘)와 사비(さび, 寂)라는 일본어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녔다. 와비는 세상과 동떨어져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는 참담함과 낙담하고 허탈한 마음 그리고 생기 없는 감정의 상태를 뜻했고 사비는 원래 ‘쌀쌀한’ ‘수척한’ ‘메마른’ 등을 뜻했다. 14세기 무렵부터 두 단어의 의미는 더 긍정적인 미적 가치의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은자(隱者)와 도인의 자발적 고립과 금욕은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기회로 여겨졌다. 이상적 취향을 가진 이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리 중요할 것 없는 일상의 세세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과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모른 채 지나치는 자연의 면모를 보는 통찰력을 길러주었다. 결국 별 매력이 없던 소박함이 새롭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기반이 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잠정적 정의」, 30쪽

전쟁이 빈번하던 센고쿠 시대(戰國時代)가 지속되었지만, 16세기 후반은 예술 분야에서 위대한 창조의 시대였다. 다도는 다구, 건축 공간 그리고 의례 자체에 대한 상당한 실험이 행해졌다. 리큐는 바로 이런 문화적 흐름 한가운데에서 가장 확고한 미적 업적을 세웠다. 그는 일본과 조선의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든 투박하고 토착적인 민예품 즉 와비사비한 것들을 중국에서 온 완벽한 보물들과 동급으로,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예술적 지위로 확고히 격상시켰다.

「역사적 배경」, 41–42쪽

새로운 와비사비의 철학적 근거는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라는 ‘일기일회(一期一会)’다. 이는 선불교의 옛 격언을 리큐가 달리 표현한 것으로, 바로 이 순간 발생하는 모든 것에 최대한 관심을 기울여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다.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이 특별한 일탈이 다도를 더욱 와비사비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줄지 그 성과는 지켜봐야 한다.

「역사적 배경」, 46쪽

와비사비는 서구의 이상적 아름다움, 즉 기념비적이고 장대하며 영구적인 것의 정반대에 존재한다. 와비사비는 꽃과 초목이 만개했을 때가 아닌, 피거나 질 무렵 자연에서 발견된다. 와비사비는 우아한 꽃, 장엄한 나무, 화려한 풍경에 있지 않다. 와비사비는 사소하고 숨겨진 것,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너무나 미묘하고 순간적이어서 범속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신적 가치」, 62쪽

와비사비의 단순함은 마음에서 우러나 성실하고 겸허한 지성에 도달하는 ‘유현幽玄의 경지’라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지 모른다. 이런 지성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수단을 줄이는 것이다. 본질에 이를 때까지 줄이되 시를 내버리지 않는 것. 사물을 청결하게 유지하되 소독할 정도로 청결에 얽매이지 않는 것. (와비사비한 것은 정서적으로 결코 차갑지 않으며 따뜻하다.)

「물질적 특성」, 89쪽

와비사비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적 사상이자 감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와비사비의 태동부터 발전에 이르는 과정 곳곳에는 언제나 우리 선조의 공예 및 정신 문화와 접점이 있었다. 영어판 『와비사비』에서는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이 부분을 ‘옮긴이 주’를 통해 부족하나마 제시해보았다. 이는 와비사비에 우리의 지분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와비사비가 우리 안에 이미 가부좌하고 있는, 그래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쉬이 되찾을 수 있는 우리의 심성이기도 하다는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옮긴이의 글」, 104쪽

차례

한중일의 미적 감성, 와비사비

불완전한 아름다움

역사적 관점에서 본 와비사비
불명료화의 역사
잠정적 정의
와비사비와 모더니즘
역사적 배경

와비사비의 우주
형이상학적 원리
정신적 가치
마음의 상태
도덕적 계율
물질적 특성

주석
사진 설명
옮긴이의 글

레너드 코렌

뉴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한 레너드 코렌은 건축을 전공했지만 기이하게 생긴 일본식 다실을 제외하고는 정작 아무것도 지은 적이 없다. 영구적인 대형 건물의 설계는 철학적으로 너무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집필과 출판에 눈을 돌려 1970년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매거진이라 평가받는 《WET: the Magazine of Gourmet Bathing》을 발간했다. 1981년 잡지 발행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이주해 여러 권의 미학 관련 책을 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디자인과 미학 분야의 저술 활동을 한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배치의 미학』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 『이것은 선이 아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박정훈

국문학과 사진을 전공했다. 〈검은 빛〉 〈먼 산〉 〈시절들〉 〈Every Little Step〉 외 사진전을 열었다. 레너드 코렌의 『와비사비: 그저 여기에』 『이것은 선이 아니다: 자갈과 모래의 정원』 『예술가란 무엇인가』 『와비사비: 다만 이렇듯』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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