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솔부터 풀칠까지,
전통 장황의 모든 과정과 용어를 정리한 첫 책
궁을 방문해도 사극을 시청해도 조선시대 임금이 앉는 자리인 어좌 뒤에는 항상 일월오봉도가 있다. 보물 제931호인 태조 어진은 위아래로 청색 회장 비단을 배접하고 붉은 유소를 드리운 족자 형태로 봉안돼 있다. 며칠 전 〈TV쇼 진품명품〉에 등장한 궁중모란도의 감정가는 150년 전 도화서에서 제작했으며 보관 상태가 좋다는 점에서 1억 8천만 원으로 책정되었다. 세 문화재의 공통점은 병풍, 족자 등의 형태로 꾸며져 보존되었다는 점, 즉 장황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SOKO의 두 저자는 작품을 장식하고 보존하는 기술인 장황을 독립적인 전문 공예로 본다. 그래서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모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전통 장황의 모든 과정과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응노연구소 책임연구원 김경연은 『표구의 사회사』(연립서가, 2022)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21세기 현재 장황/표구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이공계 계통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전통 장황의 기법을 복원하고, 지류문화재 보존과 관련한 기술적인 발전을 연구한다. 다른 하나는 인문학, 구체적으로는 미술사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예술을 보존하는 풀칠의 기술, 장황』은 전자의 “기술적”인 연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책은 크게 「도구」 「재료」 「장황」 세 주제로 나뉜다. 「도구」에서는 풀솔, 자, 칼, 풀, 작업대 등 장황 작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의 종류와 쓰임새를 정리한다. 「재료」에서는 장황 문화재의 주재료인 배접지, 장황 비단, 기능지, 접착제의 특성과 선택 기준을 설명한다. 「장황」에서는 장황 작업물을 건조판, 액자, 병풍, 족자, 서책으로 나누어 각 공정의 구조를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술한다. 특히 지류문화재 보존・복원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배접(裱褙)은 작업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사진은 물론, 단계별 그림을 통해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일본 용어를 병기해 기성세대 기술자와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게 했다.
그다음으로 「변화하는 장황」에서는 시대가 바뀌며 전통 장황과 현대 장황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변화했는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또한 각 장황 공정의 일본어 명칭을 「부록」에 정리해, 관련 도구를 살 때 유용하게 쓰일 뿐 아니라 답습한 일본 용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장황 재료 전문 매장 목록」을 추가하여 독자가 장황 작업을 좀 더 쉽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왔다.
왜 ‘표구’가 아닌 ‘장황’인가?
한국에서는 장황보다 표구(表具)가 일반적이다. 원래 장황은 표장(表裝), 장표(裝表), 장배(裝褙), 배첩(褙貼) 등으로 불렸으며, 표구는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표현이다. 국내 장황 현장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표구나 배첩은 “바르다” “붙이다” “갖추다” 등 종이나 비단을 바르는 행위만을 의미하고, 장황은 이에 더해 “장식하다” “꾸미다” 등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장황을 단순히 종이를 배접하는 보조 기술이 아닌, 독립적인 예술이자 문화재 보존・수복의 핵심 기술로 인식하여 ‘장황’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저자는 한국식 장황과 일본식 표구를 가리고 분리하려는 의도가 없다. 현재 두 나라의 장황은 억지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름의 방식대로 발전해 왔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과 일본말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장황 기술이 기록되지 않아 전통문화가 더 이상 계승되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전통 장황은 글로써 정리되지 않았고, 현대 기술자는 대개 스승의 방식만을 전수해 왔다. 그래서 더욱이 두 저자는 전통 장황이 미래에도 이어지도록 장황 및 문화재 현장에서 실행하는 모든 공정을 정확하게 기록하려 했다.
보조 기술을 넘어,
문화재를 수호하는 예술로
이 책은 장황을 서화를 보호하는 보조 기술로만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공예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여러 단계로 구성된 공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장황은 보존 작업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미적 감각과 기술이 필요하다. 실력이 뛰어난 장인은 작품의 고유한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한다. 족자의 비단 색을 조화롭게 조합하거나 병풍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은 장인만의 정교함이 발휘되는 과정이다. 문화재 보존, 미술 복원, 공예 기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섬세함과 꾸준함을 요하는 장황이 예술을 보존하는 예술 그 자체로서 값진 전통문화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