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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북 디자이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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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디자이너 열 명으로 읽고, 보는
동시대 북 디자인 문화

이 책 [세계의 북 디자이너 10]은 세계의 각 나라 또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북 디자이너 열 명과 이들의 작품을 다룬다.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의 마생(Massin)에서 아티스트 북 전문 독립 출판사 로마 퍼블리케이션스(Roma Publications)의 로허르 빌렘스(Roger Willems)까지. 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문화를 바라본 대표적 인물들이다.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아트 디렉터 열 명을 다룬 전작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을 통해 보여준 지은이의 통찰과 성실함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기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점이다. 한편, 지은이는 일차적으로 각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각 인물과 관련된 시대적 상황을 포함해 디자인 역사, 이들과 협업한 편집자, 디자이너, 사진가 등을 언급하며 이 책이 인물론만으로 그치는 상황을 경계한다.

표현적 타이포그래피, 제3의 타이포그래피,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 훈민정음, 동아시아, 사진 책, 상업 출판, 독립 출판 등 북 디자이너 열 명이 저마다 위치한 지점은 자연스럽게 여러 층위를 담은 지형도를 만든다. 이를 둘러보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히 ‘북 디자인’이 아닌 오늘날의 ‘책’과 ‘디자인’을 만난다.

이 책은 크게 글로 이뤄진 1부와 도판으로 이뤄진 2부로 나뉘고, ‘인쇄된’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를 얼마간 참조한다. 무엇을 어떻게 취할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관심사 또는 취향에 달렸다. 어떤 독자는 2부의 도판을 글에 관한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어떤 독자는 1부의 글을 도판에 관한 긴 각주로 읽을 것이다. 많지는 않겠지만,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른다. 책 내용과 별개로, 구조로서 책 자체와 책을 대하는 방식에 관해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는 셈이다. 소설가 이태준이 [무서록(無書錄)]에서 말한 것처럼 말이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 속에서

이 책을 쓴 전가경과 정재완은 일차적으로는 ‘인물’을 부각했지만, 해당 인물은 어디까지나 참조 사례이다. 각 글의 개념적 토대는 인물론이되, 이 인물론은 책과 디자인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관통하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

9쪽,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는 보다 아름다운 책들을 더 많이, 자주 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는 ‘북 디자인’의 수행성에 대해 더 싸우고 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던지는 유일한 답이라면, 북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영원히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이 품고 있는 유일한 주제라면,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12쪽, 「들어가는 글」에서

책의 위기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읽기와 문자 그리고 읽기와 타이포그래피 간의 관계는 역사적 궤도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운명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생의 ‘표현적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한결같은 부침은 깊은 울림이 있다.

30쪽, 「마생—목소리에서 타이포그래피까지」에서

바로 이 대목에서 장크트갈렌 디자인의 특징이 드러난다. 독단과 폐쇄로 치달을 수 있는 교조주의적 양식주의를 거부하는 태도로서 내용에 따른 가장 최적화된 디자인을 따른다는 것이 장크트갈렌 디자인이다.

43쪽, 「요스트 호훌리—제3의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에서

그는 북 디자인이나 책 표지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를 우려한다. 어디까지나 협업의 모델이자, 사회의 한 산물로서 생산되는 책의 디자인에 개인의 강한 자아가 개입되는 것은 좌파 성향의 홀리스에게는 교환 가치로 획득되는 허상일 수도 있다.

62–63쪽, 「리처드 홀리스—유연한 모더니즘」에서

2000년대 들어 정병규의 작업은 책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문자, 이미지, 한글이라는 좀 더 원초적인 디자인 재료에 접근한 점이 특징이다. 이 시기 정병규의 작업은 이전보다 자유롭고 이미지성이 물씬 풍긴다. 그것은 마치 액체처럼 ‘흐르는’ 문자였다.

73쪽, 「정병규—책, 문자 그리고 한글」에서

뤼징런은 디자이너가 정보 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 정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뤼징런은 ‘북 디자인 3+1’ 개념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모든 과정이 융합되고 반복되는 순환 과정이라 설명한다.

89쪽, 「뤼징런—북 디자인 3+1」에서

그에게 영화는 완성품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미완성품이다. 완성은 영원히 미뤄진 과제이다. 그래서 스즈키에게는 일방적 해석을 강요하는 멜로드라마는 진부하다. 이는 그가 바라보는 사진 책에도 적용된다.

102쪽, 「스즈키 히토시—미묘한 삼각관계: 영화, 사진 그리고 책」에서

아트 북 페어에 관심 없다는, 또는 잘 모른다는 미국 대형 출판사의 유명 북 디자이너에게 상업 출판과 아트 북이 이토록 노선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생리가 다른 아트 북 판은 책이라는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상이 다른 것일까. 뉴욕의 상업 북 디자이너 칩 키드에게 〈뉴욕아트북페어〉는 존재해도 해독이 불가능한, 또는 그 시야 안으로는 들어서지 못하는 몸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126쪽, 「칩 키드—배트맨 키드」에서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숱한 이미지는 시각이라는 구성체를 이뤄낸다. 그 구성체의 역학과 구조 원리는 이미지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해, 표면으로 드러난 가시성에 대한 의문이 곧 지금의 시각 문화 이해를 위한 진입로가 되는 것이다.

139쪽, 「로허르 빌렘스—타이포그래피에서 구조로」에서

오늘의 흐름 속에서 책과 출판의 의미를 살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라이너 노츠』는 소유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뿐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취한 제스처 또한 단일화된 저자의 개념에서 탈피하고 있으며, 책을 제작하게 된 배경 또한 다층적 구조와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55쪽, 「마르쿠스 드레센—현대적 책」에서

이 선집에서 주목할 부분이 바로 여기 있다. 출판계의 브랜딩을 일정 부분 크게 책임지는 전집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조형적 통일성은 방법론으로 숨어버렸다. 이는 출판 디자인과 이를 통한 정체성 문제가 과거의 방법론에 더 이상 안주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이기도 하다. 조형적 요소가 아닌, 비가시적인 체제와 방법론이 곧 가시적인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173–174쪽, 「데이비드 피어슨—책 표지 디자인의 수사학」에서

차례

들어가는 글

마생(Massin) – 목소리에서 타이포그래피까지
요스트 호훌리(Jost Hochuli) – 제3의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리처드 홀리스(Richard Hollis) – 유연한 모더니즘
정병규(鄭丙圭) – 책, 문자 그리고 한글
뤼징런(吕敬人) – 북 디자인 3+1
스즈키 히토시(鈴木一誌) – 미묘한 삼각관계: 영화, 사진 그리고 책
칩 키드(Chip Kidd) – 배트맨 키드
로허르 빌렘스(Roger Willems) – 타이포그래피에서 구조로
마르쿠스 드레센(Markus Dreßen) – 현대적 책
데이비드 피어슨(David Pearson) – 책 표지 디자인의 수사학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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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전가경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디자인 스튜디오 AGI 소사이어티에서 출판팀장으로 일했다. 홍익대학교 석사 논문 「텍스트로서의 사진과 이미지로서의 사회: 〈트웬(Twen)〉의 사진 다루기」(2006)를 시작으로 ‘사진‐ 텍스트‐ 디자인’이라는 매개항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운영하는 사진 책 출판사 ‘사월의눈’은 이런 관심사의 연장이다. 지금까지 다섯 권의 사진 책을 기획하고, 다수의 매체에 그래픽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했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아트디렉터 10』(안그라픽스, 2009), 『Bb: 바젤에서 바우하우스까지』(PaTI, 2014, 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그래픽 디자인 사용 설명서(Graphic Design: A User’s Manual)』(세미콜론, 2015, 공역)가 있다.

정재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정병규출판디자인과 민음사출판그룹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했다. 거리 글자에 관심을 가지고 2008년부터 개인전 〈글자풍경〉을 네 차례 열었으며, 2018년에는 전시 〈정재완 북 디자인전〉, 2019년 지역 시각 문화를 기반으로 한 〈(북성로) 글자풍경〉 전시를 열었다.

함께 지은 책으로 『세계의 북 디자이너 10』 『전집 디자인』 『아파트 글자』 『디자인된 문제들』 등이 있으며 디자인한 책 『산업의 자연사』가 1회 한솔 인스퍼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작업의 방식』이 2022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다. 현재 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이자 AGI 회원, 한국디자인사학회 회원,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사진책 출판사 ‘사월의눈’ 북 디자인을 도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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