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문자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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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의 거장 안상수

한글 문자로 사유하는 시각예술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시각예술 등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안상수 작가의 〈홀려라(Be Spellbound)〉 연작을 망라한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안상수는 장르명이면서 창작법이기도 한 ‘문자도’를 통해 문자, 말, 소리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여 “문자가 말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되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문자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내몰리곤 하는 동시대 인식에 안주하지 않는 작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이동국 경기도미술관장과 권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의 심도 있는 해설은 작품에 내재한 뜻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안상수 작가의 작품집을 시작으로 선보이는 ACA 컬렉션(AG Contemporary Art Collection)은 동시대 한국 예술가의 사유를 탐험하는 안그라픽스의 작품집 시리즈다. 그들의 작품에 내재한 철학은 곧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자반야』를 비롯한 ACA 컬렉션은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과 사유를 들여다봄으로써 담론의 장으로 작동할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문자도 〈홀려라〉 연작은 2024년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아트부산》에서 공개되었으며, 개인전 《홀려라(Be Spellbound)》는 2024년 5월 2일부터 6월 9일까지 부산 오케이앤피(OKNP)에서 열렸다.

편집자의 글

〈홀려라〉에서 한글은 수단이자 목적 그 자체가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이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교장 ‘날개’로 알려진 안상수는 지난 40여 년간 한글 문자의 조형을 깊이 연구하며 문자가 중심이 된 시각의 세계를 탐구해 왔다. 그의 작품에서 문자의 형상에 깃든 말, 소리, 생각은 순수한 이미지로 거듭나며, 조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보이는 세계 이면에 잠재한 문자의 정신적인 부분을 추적해 낸다. 가장 최근의 대표작 〈홀려라〉(2017-현재)는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 《날개.파티》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로 변주를 거듭해 온 작품이다. 『문자반야』는 지난 10년간 전개된 〈홀려라〉를 한자리에 망라하고, 작품에 관한 전문적인 해설을 통해 그의 ‘문자도’를 더욱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언제나 한글을 중심에 둔

안상수 작가가 그려온 궤적

날개 안상수는 디자인과 순수예술, 교육자와 기획자, 타이포그래피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넘나들며 기존의 경계나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시각 활동을 만들어 왔다. 캔버스, 책, 웹, 포스터, 로고 등 다양한 미적 공간에서 구축되는 그의 ‘문자도’는 변화하는 매체적 환경과 긴밀하게 조응하며 새로운 관계를 매개하고, 이 모두를 어떤 규칙과 의미를 생성하는 ‘언어’로서 나아가게 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위치에서 전개해 온 여러 활동, 그리고 한글 문자를 중심에 둔 우리 역사에 관한 애정과 기억에서 비롯된 삶의 실천과도 같다.

동시대 한국 예술을 관찰하는

안그라픽스 ACA 컬렉션

어느 예술가에게 관심이 있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는 몇백 년 전 예술가들을 소환하곤 한다. ‘고전 미숱 작품으로 보는 OOO’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예술 분야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견고히 지키는 것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온 과거 예술가에 대한 배움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실제로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역사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대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바는 같은 시대와 사회를 경험해 온 우리에게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작가와 현대인의 공통분모 ‘동시대’에는 ‘한국적인 것’도 포함된다. 예술의 경계가 국경을 아득히 넘어선 지금, 한국 예술가만이 발하는 ‘한국적인 것’은 고유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동시대 한국 예술가들에게 더욱 주목해야 한다.

ACA 컬렉션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심(深深)한 해설을 덧붙여 일종의 공감과 비평, 질문과 대답, 배움과 공유의 장을 연다. 이처럼 안그라픽스는 ACA 컬렉션을 통해 동시대 한국 예술가들의 행보를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며, 그 처음으로 한글 문자를 탐구한 안상수 작가의 『문자반야』를 선보인다.

책 속에서

날개의 예술적 행보는 오늘날의 기계시대에 문자가 단순한 도구, 방편, 기능, 그리고 수단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문자의 해방구 찾기, 그리고 동시에 문자 자체가 목적이 되는 문자의 원래 자리 찾기에 있다고 해석된다.

이동국, 「기계시대 서가(書家)의 문자도」, 137쪽

날개 안상수의 작품은 문자에 내장된 말과 소리의 회복, 내지는 그것의 독립을 통해 말의 그림자인 문자에서 역으로 문자의 그림자가 소리이고 말임을 증명해 낸다. 문자언어, 말과 소리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여, 문자가 말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 되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선가(禪家)에서 말하듯 문자는 실상(實像)을 설명하는 방편이자 반야(般若)가 되는 문자반야(文字般若)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고, 혹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이동국, 「기계시대 서가(書家)의 문자도」, 139쪽

세종이 훈민정음에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文)이 있다.”라고 적은 그대로이다. 여기에는 글자가 단순히 말의 기록이자 수단이 아니라, 말로서는 다 할 수 없는 뜻을 표현해 내는, 인간의 감정까지 모두 다 드러내는 입상진의(立像盡意)의 경지가 있다.

이동국, 「기계시대 서가(書家)의 문자도」, 147쪽

날개는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에게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실험 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실험 정신’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만의 논리를 깨뜨리는 ‘자기 부정’ 속에 있으니, 두려워 말고 ‘아픔’을 느끼라 말한다.

권진, 「문자도의 소리를 따라서」, 173쪽

장르나 매체의 구분 없이 진행되는 날개 안상수의 예술적 실천은 한결같이 타인 혹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출발하며, 관계를 즐겁게 맺어가는 방법으로서 과정이 생겨난다.

권진, 「문자도의 소리를 따라서」, 177쪽

‘문자도’라는 일종의 장르명이면서 창작법은 지난 40여 년간 작품 세계를 하나로 사유하게 하는 생각의 틀이 되어준다. … 예술이라는 구분이나 경계를 낮추고 자연스럽게 예술적 놀이에 참여하게 하는 문자도는 그것의 역사, 사회, 관계와 상황적인 맥락까지 아우르며 이 모두를 더욱 큰 언어의 파편으로 엮어낸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언어 속에 담긴 의미와 감각의 세계를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권진, 「문자도의 소리를 따라서」, 197쪽

차례

0는 ㅎㅎ올씨다. | 날개 안상수
《홀려라》 2017-현재 | 안상수
기계시대 서가(書家)의 문자도 | 이동국
문자도의 소리를 따라서 | 권진

작품 목록
연표
필자 소개

안상수

안상수는 우리 시각 문화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이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2년 조기 은퇴 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을 설립, 현재 날개(교장)로 있다. 2007년 독일 라이프치히시로부터 구텐베르크 상을 받았으며, 베이징 중앙미술학원(CAFA) 특빙교수, 국제그래픽디자인연맹(AGI) 회원이다.

이동국

한국의 서(書) 연구자이며 기획자이자 현재 경기도박물관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35년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신화, 생명의 노래 –암각화에서 무신도까지》(1999), 《한국서예이천년》(2000), 《오세창의 전각.서화감식.콜렉션 세계》(2001), 《천명(天命), 다산(茶山)의 하늘》(2012), 《걸레스님 중광(重光) 만행(卍行) 타계 10주기 특별전》(2012), 《한글서 × 라틴타이포그래피》(2016), 《김종영, 붓으로 조각하다》(2017), 《치바이스 목장에서 거장까지》(2017), 《추사 김정희 괴(怪)의 아름다움》(2018), 《판타지아 조선 민화의 아름다움》(2019), 《ㄱ의 순간》(2021) 등을 기획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추사체의 괴(怪)의 미학」(『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예술의전당, 2020)와 『미술 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한길아트, 2004)가 있다.

권진

현대미술 연구자이며 기획자이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한다. 아르코미술관,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거쳐 2016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재직하며 안상수 개인전 《날개.파티》(2017), 남미현대미술전 《미래과거를 위한 일》(2017-2018), 중동현대미술전 《고향》(2019-2020), 이불 개인전 《이불-시작》(2021)을 기획하고 연계 도록을 편찬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시작’이라는 알레고리」(『이불-시작』, 서울시립미술관; BB&M; 미디어버스; BOM DIA BOA TARDE BOA NOITE, 2021)과 「저 산까지도 정원으로 들여왔어라」(『Kang Seung Lee』, 갤러리 현대,
202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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