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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노멀: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 슈퍼노멀

Super Normal: Sensations of the Ord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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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디자인이 언젠가 ‘평범normal’한 것이 된다면, ‘멋지지super’ 않을까?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 슈퍼노멀

수많은 디자인 작품은 왜 평범함을 상실하는가. 평범함이 사라진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과연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외형상의 문제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이 있는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 제품들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 있어지는가.

재스퍼 모리슨은 간디가 아마다바드에 살던 당시의 물건들, 밥그릇, 옷, 안경 등을 가리켜 그 물건들이 간디 자신에게는 슈퍼노멀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얼마 전(17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내 전례박물관에서 공개된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 갈라지고 빛바랜 검은 플라스틱 안경테와 검은색 실내화, 어머나와 함께 찍은 사진, 도장, 베이지색 팔리움, 빨간 스컬캡 등의 물품 역시 추기경 자신에게는 슈퍼노멀이 아니었을까.

평범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함, 오랜 시간 동안 평범하지만 특별한 가치를 지닌 지금까지 우리 속에 함께했던 디자인,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디자인이 지향할 바를 완벽하게 함축하는 그것이 바로 ‘슈퍼노멀’이다.

편집자의 글

‘슈퍼노멀’은 아름다움을 디자인하기보다는 편안해 보이고 기억에 남을 일상적 요소를 디자인하는 데 더 관심을 둔다. ‘화려하거나’ 혹은 ‘시선을 사로잡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았지만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끌리는 그런 매력이다. 마치 새로운 디자인을 기대하면서 무언가를 바라볼 때, ‘별로네’ 혹은 ‘그저 평범하네’ 하는 부정적 첫인상이 ‘근데 썩 나쁘지 않네’로 바뀌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처음의 감성적 거부감을 극복하다 보면, 육감적으로 왠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매력을 느끼고, 이상하게도 친숙한 끌림이 있다. 우리를 마구 흔들어 제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성질을 지닌 것들이 ‘슈퍼노멀’이다.

사람들은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특별한’ 것을 생각하고, 디자이너든 사용자든 모두 ‘특별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디자인의 전부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측 모두 실생활과 동떨어진 환상에 빠져 있다. 디자인은 물건을 특별해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니 특별해질 수 있는 마당에 그 누가 평범하고 싶겠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오랫동안 자연스럽고 자의식 없이 자라온 것들을 쉽게 대체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거리의 상점들이 지닌 평범함, 이들이 파는 다양한 제품과 여기서 이루어지는 숱한 거래는 하나의 섬세한 유기체이다. 오래된 것들이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새로운 것들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시선을 끌기 위해 디자인된 것들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특별해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는 것보다 더 나은 디자인 방법론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것은 평범한 것보다 덜 실용적이고, 길게 보면 유익하지도 않다. 특별한 것들은 그릇된 이유에서 시선을 끈다. 어쩌면 그런 특별한 것들이 어정쩡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좋았을 수도 있을 분위기를 흩뜨리고 만다.

물론 평범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함은 자의식을 갖기 이전 시대의 산물이다. 낡은 것을 새롭고 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디자이너들은, 평범함의 요구 조건인 순수성을 누리지 못한 채 작업한다. 옛 물건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보이지 않는 유령의 형체를 드러내듯 슈퍼노멀의 존재를 드러낸다. 즉, 슈퍼노멀이 존재하듯이 느껴지지만 실제로 보기는 어렵다. 슈퍼노멀한 물건은 일상용품의 형태가 오랜 시간 진화적 발전을 이룬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슈퍼노멀은 그들 속에서 자기 위치를 알기에, 형태의 역사에서 떨어져 나오기보다는 그 역사를 간추리려고 노력했다. 슈퍼노멀은 평범함을 인위적으로 대체한 것으로, 시간이 흐르고 이해를 얻으면서 일상생활과 접목될 수 있다.

슈퍼노멀이라 여길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탐색해보았으면 한다. ‘아닌데’라고 간주해버리는 것들 속에서 그것만이 지닌 매력을 재확인하는 기쁨과 재미를 공유했으면 한다. 보이지 않던 것을 차근히 들여다보게 되고, 디자인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찾으려던 사람은 우리가 이미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재확인하면서 신선한 놀라움으로 눈뜨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우리는 현재의 디자인 패러다임이 짓누르는 구속에서 해방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의 느낌에 충실할 때, 진정 ‘슈퍼노멀’해진다.

키워드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 두 명의 제품 디자이너가 ‘슈퍼노멀’이라는 주제로,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사용하는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던 물건들을 특별한 존재로 되살려냈다. 『슈퍼노멀』은 요란하지도 않게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오브제들에 대한 찬사이다. 책 속에는 ‘슈퍼노멀’이라는 명명 하에 모리슨과 후카사와가 선택한 50여 점의 작품 설명과 200여 점의 작품 목록이 담겨 있다. 결코 두껍지는 않지만, 어떤 두꺼운 이론서보다 디자인의 정수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내용은 책에 실린 제품들은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과도 상통한다. 사진과 글을 여백을 두고 여유 있게 배치함으로써 마치 전시실에 들어가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특히 두 저자의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가 이 책의 백미다. 저자이자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이기도 한 두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편안함, 신뢰감, 눈부신 단순미와 절제미의 세계를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슈퍼노멀’이라는 주제로 전시했던 오브제 일부를 소개하면서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추천사

슈퍼노멀은 마치 ‘디자인되지 않은’ 듯한 사물의 겸양을 보여주었다.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에게 ‘슈퍼노멀’이란 사람을 관찰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용의 과정 속으로 끌어들이고 생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다져온 그러한 평범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의 원형적 지위에까지 도달한 물건의 특정한 형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그 물건 본연의 기능 자체를 충실히 형태로 번역했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퍼노멀’은 시각과 경험이라는 대당 위로 기명과 익명의 디자인을 중첩시킨다. 이러한 대당을 통해 드러나는 이 평범한 사물들은, 너무도 평범하여 오히려 범상치 않은 경지에 다다른다. 그러고는 디자인의 시각적 요소를 넘어 배후에 존재하는 디자이너의 존재를 넘어, 자신이 슈퍼노멀해지기까지 거쳐온 과정의 경험과 익명의 차원을 조용히 드러내 보인다. 그러므로 슈퍼노멀은 필립 스탁의 자기혐오 이상의 저항이라 말할 수 있다. 평범함의 복권은 스펙터클이 된 디자인들이 난무하는 동시대의 다자인 지형 속에서 그 의미를 얻는다.

이재희, 「몇 개의 의자들을 통해 오늘의 디자인 신을 바라보다」, 《디자인플럭스 저널 01: 암중모색 상편》, 2008

책 속에서

19 스툴
앞에 나온 병따개와 마찬가지로 이 의자들의 형태 역시 오래되었지만 새롭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형태는 그리 대단할 것은 없지만 사용하기 편리하다. 그런데 소재를 바꾸는 바람에 새로운 관점에서 이 제품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형태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서, 이 물건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52쪽

34 디지털 카메라
상대적으로 넓은 손잡이 부분 때문에 한 손으로도 카메라를 다루기 쉽다. 원래는 소형 필름 카메라였는데, 기존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기능만 디지털로 바꾸었다. 렌즈 교환 기능, 고품질 이미지, 고해 상도 같은 기능을 갖추어, 전문가용 일안 반사식 SLR 카메라의 기능과 맞먹는다. 변하지 않는 평범한 형태와 고도로 강화된 성능이 조화되어, 이 카메라는 슈퍼노멀이 된다.

72쪽

46 우유병
우유는 한때 이른 아침 문 앞에 배달되곤 했다. 신문처럼 말이다. 이 우유병의 모양은 그때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병은 거듭해서 재사용되기 때문에, 유리를 두껍게 하여 쉽게 깨지지 않도록 했다. 고소한 우유 맛이 이 병의 모양에서 연상된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친근한 이 병은, 우유를 담기에 가장 적합하고도 평범한 형태이다.

88쪽

52 펠트 속버선
보온 양말처럼 고무 부츠 안에 신도록 만들었는데, 부츠 밖으로 꺼내놓고 보니 모든 신발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슈퍼노멀한 물건이라기보다 슈퍼노멀의 본질 같다. 펠트 시트는 워낙 판판한 소재인지라, 이 신발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제품처럼 보인다.

96쪽

피치: 슈퍼노멀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후카사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언가가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일 때, 모두들 그것을 가리켜 “정말 평범하구나!”하고 말하죠. 또 한편으론, 새롭게 디자인된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움이나 특별함 때문에 압도될 거라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그런 새로운 디자인 말예요. 그런데 압도당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 어?, 이거 그냥…평범하잖아!”라고 말합니다. 슈퍼노멀은 이처럼 우리 기대에 어긋나는 놀라움을 가득 줍니다.

모리슨: 좀 더 간단히 정의하자면, 무언가를 곁에 두고 싶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태에 대해 생각하거나 또는 숨겨진 의미나 속임수를 캐낼 필요 없이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는 것들이죠. 가게에 접시를 사러간다면, 가장 접시다운 접시를 보게 되겠죠?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접시다울 거예요. 접시다운 접시가 지닌 장점은, 디자이너 식기처럼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도 자기 본분을 다한다는 거예요. 거의 모든 종류의 물건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100쪽, 《도무스》 편집자 프란체스카 피치와의 인터뷰에서

피치: 슈퍼노멀이 개인적인 미적 개념과 관련이 있나요? 미에 관해서 두 분의 개인적 관점을 이해하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만, 사물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보세요? 두 분이 생각하시기에 무엇이 아름다운 사물입니까?

후카사와: 아름다움은 형태나 모양을 의미할 수 있죠. 그러나 이 경우에는 사람, 환경, 주변 상황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슈퍼노멀은 우리가 무언가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메아리입니다. 이런 관계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제품을 비슷한 상황 및 환경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니까요. 그래서 관계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특정 상황으로 좁혀집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간장을 따를 때 간장통을 잡는 방식이 동일하고, 또 간장을 따르는 행동이 생선회를 즐기는 분위기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면, 새로 나오는 디자인은 이런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기가 힘들겠죠. 이런 아름다움은 물건을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때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모리슨: 슈퍼노멀은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른 수준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와 관계있다고 봅니다. 즉,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사용하다 보니 아름다워지는 아름다움, 매일 일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볼품없지만 실용적이고 오래가는 아름다움 말이에요. 아름다운 물건이라고 모양이 제일 예쁘란 법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흉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아름다운 물건에 매혹되어, ‘쓸모 있겠지’ 하면서 덜컥 사지만, 나중에 보면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그 제품이 아름다워 보이지를 않아요. 사실 아름다움이란 게 과대평가되지 않았나 싶어요.

104쪽, 《도무스》 편집자 프란체스카 피치와의 인터뷰에서

후카사와 나오토

1956년 일본 야마나시에서 출생했으며, 1980년 다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學)을 졸업했다. 세이코엡손사(Seiko Epson)에 입사해 시계 및 기타 마이크로 전자제품들의 선행 디자인을 담당했고, 1989년에 아이디오(IDEO)의 전신인 샌프란시스코의 제품 디자인 회사 아이디투(ID Two)에 입사했다. 1996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아이디오 도쿄 지사를 출범시키고 총괄했으며, 2003년에는 나오토후카사와디자인(naoto fukasawa design)을 설립했다. 2001부터 무지(MUJI)의 디자인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며, 2003년에는 ±0(PLUSMINUSZERO)를 출시했다. B&B이탈리아(B&B Italia), 드리아데(Driade), 마지스(Magis), 아르떼미데(Artemide), 대니스(Danese), 보피(Boffi), 삼성 등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회사에서 주문을 받아 디자인하고 있다.

재스퍼 모리슨

195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런던 킹스턴폴리테크닉(Kingston Polytechnic), 베를린 예술대학(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런던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공부했고, 1986년 런던에 오피스포디자인(Office for Design)을 설립했다. 파리의 갤러리크레오(Galerie kreo) 소속으로 알레시(Alessi), 카펠리니(Cappellini), 플로스(Flos), 마지스(Magis), 무지(MUJI), 삼성, 비트라(Vitra) 등 유럽과 아시아에 있는 다수의 유명 회사를 위해 디자인했다. 재스퍼모리슨사(Jasper Morrison Ltd.)는 런던, 파리, 도쿄에 지사를 두고 있다.

박영춘

연세대학교에서 세라믹공학, 미국 UArts(前 Philadelphia College of Art)에서 공업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헬싱키경제경영대학(Helsinki School of Economics) 경영학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이다. 뉴욕 디자인 전문회사 IDI(Innovations and Development Inc.)에서 시니어 디자이너, 데스키 어소시에이츠deskey associates에서 디자인 디렉터를 지냈다. 미국 파슨스미술대학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제품 디자인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1995년 귀국해 현재 삼성디자인학교 SADI 제품 디자인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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