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앞서 제기된 날선 질문
디자인은 하나의 역사이자 학문이다. 기술과 콘텐츠를 품는 그릇이고, 미학과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이며, 소통과 갈망의 수단이다. 또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무엇이며,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하는 궁극적인 명제를 둔 이 책의 주요 골자는, 디자인 업계뿐 아니라 현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분야와도 맞닿아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소통하여 더 나은 삶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디자이너의 활동 무대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라, 삶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온 디자인의 현주소를 읽고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데 있다. 이는 디자이너가 어떤 현안에 대해 여러 분야와의 접점에서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유연하고 메타적인 시야를 확보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비교적 젊은 학문이다. 국제적인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학제간 통합에 앞장서 온 프랭크 바그너는 고전적인 원칙이 배제된 성장, 무한 경쟁, 새로운 디자인 분야의 탄생을 지켜보며 의문을 품는다. “디자인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시대에 과연 디자인이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디자인은 외면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 위상이 높아질 것인가?” 그는 시류에 편승하기 전에 지금의 ‘디자인’을 완성한 요소들을 되짚어보기로 한다. 디지털화와 버금가는 사회적 변혁이 일어난 산업혁명 시대, 대량 생산 체제가 시작된 18세기 유럽에서는 순수예술에서 분리된 디자인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당시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과거 디자이너들의 시도와 성취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바그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자기반성과 성찰을 불러오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했다.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열띤 변론
프랭크 바그너는 조형이나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는 확장된 접근,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에 미래가 있다고 보았다. 어드밴스드 디자인(Advanced Design)이라 부르는 이 개념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변화를 위한 변화를 지양하고,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이로운 디자인이 무엇인지 고찰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우리는 가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해야 한다.” 그는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Adorno)를 인용하며 창작자는 직관을 따르는 동시에 어드밴스드 디자인과 연계해 실체화된 결과물을 만들고 의미를 채워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책임감으로 이어지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윤리 행동 규준, 즉 코덱스 디자인(Codex Design)으로 귀결된다. 역사와 학문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을 구성하는 요소와 활용 방법 그리고 그 효과, 제품과 서비스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과정, 창의력을 고취하기 위한 각종 이론들, 이상과 윤리를 반영한 변화의 방향까지.
하루하루 급변하는 시대에 여전히 디자인의 가치를 믿는 협업 디자이너의 열띤 변론을 담은 이 책은,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전언으로 요약된다. “나는 이미 20년 전 현장에서 은퇴했지만 프랭크 바그너가 제기한 디자인계 현안을 보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의 탁월한 사유가 책으로 엮인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