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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문화사

By Any Other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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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사이먼 몰리 교수가 장미의 고유성에 매료되어 장미를 지식의 장으로 불러들였다. 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장미를 단지 아름답기만 한 식물이 아닌 인류에게 예술적, 종교적 영감을 제공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문학, 회화, 종교, 식물학, 정신분석학 등의 철학과 예술,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장미를 주제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장미 인문학이라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편집자의 글

장미가 인류사에 남긴 놀라운 역사에 관하여

철학, 예술, 문화사에 숨은 장미의 자취와 의미를 쫓다

가장 널리 알려진 꽃이자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명명되는 장미.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선물로, 오일과 향수로, 화초로, 예술적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문화적 상징으로 인류와 함께 해온 장미는 저자의 말처럼 “모든 꽃 가운데 ‘평화와 진리와 애정의 무한한 속삭임’을 전하는 매개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꽃이다. 저자는 장미에 부여된 ‘꽃의 여왕’이라는 한정된 인식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장미가 인류에 남긴 철학적이고 예술적이며 인문학적인 의미를 찾아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의 시선이 닿는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신화부터 종교, 정신분석학, 심리학, 문학, 회화, 식물학, 가드닝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문화, 더 나아가 산업 분야에 스며들어 있는 장미의 흔적을 찾아 풍성한 장미사를 엮어낸다. 유일신을 숭배하는 기독교에서 이교도의 상징으로 배척되던 장미가 어떻게 기독교의 신성함 안으로 유입되었는지, 장미가 가진 특유의 물질성이 왜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은유가 되었는지, 각 시대별 화가들은 장미를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의미로 구현해 내고 있는지, 소설과 시에서 장미는 어떤 시어와 메시지가 되었는지 작가와 작품들을 통해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 사이언 몰리의 깊고 넓은 지적 탐험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이 책은 꽃이자 식물인 장미를 조명하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다. 수많은 장미의 종류와 이름을 소개하고, 장미 애호가와 육종가들이 장미를 대중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교배의 측면에서, 산업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장미가 비즈니스화되면서 환경문제나 생태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장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조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장미를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문화사’라는 제목에 매력을 느낀 독자 중에는 장미에 대해 이렇게까지 전문적이고 세부적으로 접근해야 하느냐고 의구심을 표현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가 이 책을 써낸 의도가 읽힌다. 저자는 장미를 온전히 정의하려면 “과거의 인습과 편견을 고려한 역사적 맥락을 헤아려야 하는 것처럼, 생태 위기라는 더욱 폭넓은 현대적 맥락을 제외하고 장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장미가 “단순히 보기 좋은 빛깔을 자랑하며 달콤한 향기를 피워내는 현실 도피의 상징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장미의 문화사』는 장미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정원의 여왕으로, 이국의 상징으로, 인조 장식물로, 복식의 문양으로, 향기로, 상상의 소산으로, 그 외 수많은 외피를 두르고 우리의 삶에 틈입”하는 장미의 놀라운 문화적 힘의 긴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한 권의 장미학이자 장미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우리가 장미를 이렇게나 깊이 읽고 알아야 할까? 20세기를 풍미했던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작사가가 한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감히 말하건대, 장미는 인생에 대한 풍자다.”

책 속에서

환락의 신들에게 바쳐지던 장미의 신성함은 격하됐지만 장미가 누리던 지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기독교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구약성경 역시 인류의 역할이 자연을 길들이고 극복하는 것이며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명시했다. 이 세계관에서 자연은 인간의 번영을 위해 긴요하게 활용되는 자원이다.

「유일신의 장미」, 107쪽

사랑은 인간 삶의 중심에 놓여있지만 그것은 전혀 가시적인 형태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고 보충하여 실질적으로 소통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서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사랑의 특징적인 속성을 개별적인 대상에 투영하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장미는 매우 유효적절한 수단이었다. 장미는 아름답고 섬세하고 연약하고 덧없이 지는 데다 높은 가치를 지닌 살아있는 유기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시가 있기 때문에 거칠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므로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장미는 육체적 욕망의 승화와 열정을 의미하는 은유지만 비물질에 대한 고양된 열정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경우 육체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영원하면서도 미묘한 사랑의 영역을 점하고 있기도 하다. 사랑은 계층 구조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개념화되고 장미는 사랑의 모든 계층에 위치한 사람들, 즉 밑바닥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거나 음란물을 제작하는 이들부터 중간층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과 최상층에서 영적인 교류를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선택한다.

「사랑과 장미」, 134-135쪽

죽음을 둘러싼 의식을 행하는 데 꽃은 분명한 실용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장미는 기분 좋은 향기를 발하여 부패하는 냄새를 희석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애도하는 자들을 위로하며, 황홀한 향기를 통해 행복했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또한 상실을 맞이한 이들에게 삶의 희망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꽃은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돕는다. 순수한 아름다움은 상실의 아픔을 조금 덜어내는데, 이를 통해 의례적인 애도 공간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소소한 기쁨의 상징을 나누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망자를 기억하는 의미로 꽃을 건넬 때는 마치 인간이 삶에서 ‘꺾인’ 것처럼 살아있는 식물일지라도 우선 꺾어야 한다. 또한 꽃을 바치는 관습은 자연을 통제하고 극복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을 재확인하고,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혼란스런 세력에 맞서 일정한 질서를 도모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죽음과 장미」, 139-140쪽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장미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진 경향이 있으며 미적인 쾌감을 자극하는 힘을 가졌다. 그의 장미는 예술가의 욕망이나 주제를 의인화하려는 의도보다는 캔버스 위의 색상 표현이나 그 표현을 구사한 예술가의 몸과 마음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미적 충동을 더욱 자극한다. 전통적인 상징주의는 부드러운 물감 표현의 한 층 아래로 가라앉게 된 셈이다.

「회화 속의 장미」, 192-193쪽

또 다른 영국계 아일랜드인 W. B. 예이츠는 이상idealism과 현대 대중사회의 타락한 현실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데 장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시에서 비극적인 역사의 수렁에 빠진 인간 세상의 추함은 시대를 초월한 이상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장미와 병치된다. 「비밀의 장미The Secret Rose」에서 예이츠는 『신곡』에서 묘사된 단테의 환상적인 장미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머나먼 곳에 있는, 가장 비밀스러운, 그리고 존중받아 마땅한 장미 시간 속의 내 시간으로 나를 감싸기를.” 1899년에 쓴 한 사랑의 시에서 예이츠는 장미와 인간의 마음 사이의 익숙한 비유를 나타냈는데 거기에 초월적인 함의를 추가했다.

「모더니스트의 장미」, 238쪽

장미가 원예용 식물로 대성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장미 유전자가 섞이면서 개화 기간이 몇 주에서 몇 달로 파격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실용적인 측면이었다. 다른 수많은 꽃과 달리 장미는 ‘방치하면 번성’하는 매우 강건한 정원 식물로 알려졌다. “다른 어떤 식물 속屬이 그토록 다양한 특성을 가졌거나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달콤한 꽃을 피운단 말인가?”라고 쓴 사람은 윌리엄 폴이었다. “게다가 재배하기 쉽다. 매우 다양한 토양에 잘 적응하고 방치돼도 살아남아 꽃을 피운다. 그러나 제공받은 모든 수고에 대해서도 풍부한 보상을 내놓는다.” 50년 후 거트루드 제킬은 자신의 저서 『영국 정원의 장미들』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다. “장미는 비교적 온순하고 수용적이며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면 재배에 성공할 수 있다.”

「장미 정원과 가드닝」, 270쪽

장미는 앞으로도 세계 곳곳의 정원과 공원에서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을 것이다. 장미는 상징과 은유로도 우리 곁에 남아 낭만적인 소설과 팝 음악을 풍성하게 할 것이며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 소재나 소시민들의 장식 예술에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유쾌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지만 더 야심 찬 작가와 음악가와 예술가 들은 낡고 오래된 클리셰cliché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장미, 오늘과 내일」, 330쪽

차례

서문
들어가며

제1장 로사 - 장미의 가족을 만나다
제2장 장미는 왜 아름다운가 - 원종과 변종이 공존하다
제3장 내게 장미 소나기를 내려줘, 제발 - 이교도의 장미
제4장 가시 없는 장미 - 유일신의 장미
제5장 그래서 나는 나의 밝고 붉은 장미를 얻었네 - 사랑과 장미
제6장 할 수 있을 때 장미꽃봉오리를 모으세요 - 죽음과 장미
제7장 장미는 꿀벌에게 꿀을 선사한다네 - 신비로운 장미
제8장 오 장미여! 누가 섣불리 그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가? - 19세기와 시상詩想의 장미
제9장 장미 바구니 - 회화 속의 장미
제10장 파크스 옐로 티센티드 차이나 - 동양의 장미가 서양으로 전해지다
제11장 새롭게 태어난 하이브리드 티로즈 - 현대의 장미
제12장 완벽한 장미는 타오르는 불꽃이니 - 모더니스트의 장미
제13장 정원 풍경을 바라볼 때 마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 장미 정원과 가드닝
제14장 로즈앤로지즈 - 장미 비즈니스
제15장 실론젬 로제아 - 장미, 오늘과 내일

나가며
감사글
주석

사이먼 몰리

미술가이자 작가다. 지은 책으로는 『불길한 징조: 현대 미술 속 언어와 이미지(Writing on the Wall: Word and Image in Modern Art)』(2001), 『세븐키: 일곱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 현대미술』(안그라픽스, 2019), 『다른 이름으로: 장미의 문화사(By Any Other Name: A Cultural History of the Rose)』(2021) 등이 있으며 2023년 『현대 회화: 간결한 역사(Modern Painting: A Concise History)』를 출간할 예정이다. 『숭고미: 현대 미술의 기록(The Sublime: Documents in Contemporary Art)』 편집에 참여하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영국의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강의와 투어 가이드를 했으며, 신문과 잡지에도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2010년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단국대학교 미술대학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또한 모노크롬을 그린다.

김욱균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관광, 해운 분야에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쉰 살이 넘어서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식물, 사람, 환경의 상호관계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장미의 반복 개화 특성과 문화적 관계성에 흥미를 느끼면서 장미 분야로 활동 영역이 확장되었다. 현재 한국장미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장미회는 2018년 세계장미회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의 국가 회원으로 승인을 받아 장미의 재배 교육, 장미 문화의 확산과 보급 그리고 한국자생장미 보존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장미회는 유엔이 제정한 국제평화의 날(9월 21일)을 기념하여 매년 ‘평화의 장미 정원Peace Rose Garden’을 조성, 기부하고 있다. 프랑스 바가텔 국제장미품평대회Concours International de Roses de Bagatelle 및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장미품평대회Barcelona International Contest of New Roses 등의 국제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노윤기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국제관계와 기업 홍보 업무를 보았으나 좋은 책을 소개하는 번역가의 업에 매료되어 바른번역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군중의 망상』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옥스퍼드 튜토리얼』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남자의 미래』 『단순한 삶의 철학』 『커피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