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파리의 불안과 혼돈 속에서
대중의 예술적 갈증을 채워준 아르누보의 거장
‘예술가의 초상’ 시리즈 제1권 『알폰스 무하』는 파리, 뉴욕을 거쳐 프라하로 이어지는 알폰스 무하의 예술 여정을 따라가며 시기별 작품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색채의 톤을 입으라, 파리」에서는 고국인 체코를 떠나 파리에서 그래픽아트에 아르누보 양식을 유행시킨 무하의 행보와 작품들을 살펴본다. 이 시기 작품들은 화사하고 밝은 색채, 뚜렷한 윤곽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미를 보여준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식패널 〈사계절〉은 각 계절을 의인화한 그림으로 수줍고 부드럽게 피어나는 봄, 강렬한 소낙비가 갠 듯 구름이 나른하게 깔린 뜨거운 여름, 농익은 레드와인처럼 깊은 가을, 나뭇가지에 고상하게 내려앉은 눈 속의 겨울을 묘사했다.
또한 무하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한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한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를 그리게 되는데, 이 포스터는 전신 크기라는 파격적인 사이즈와 유려한 곡선으로 얽힌 장식적 패턴, 반투명의 녹색, 갈색, 보라, 핑크, 황금색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밝고 은은한 색채로 단숨에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이후 희곡 〈연인들〉 〈로렌차치오〉 〈사마리아 여인〉 〈메데〉 등의 공연 포스터를 연이어 작업하며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선보인다. 이 포스터들은 저자 김은해의 표현에 따르면 ‘환상적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을 준다. 이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 세기말 파리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산업사회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불안과 소외를 느끼는 대중의 마음을 포착한 무하는 인물의 내면세계,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청년 시절에 예술과 역사에 관한 책을 탐독했던 경험이 채색 석판화 〈살로메〉, 일러스트레이션 〈삼손과 데릴라〉 등 성서나 신화에서 모티프를 딴 작품 속 인물을 그릴 때 빛을 발한다. 무하는 그 인물들을 통해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끼는 동시대 사람들의 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 무하는 비스킷, 주류, 자전거 광고 포스터를 작업하며 대중의 손이 닿는 생활 속 사물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린 광고 포스터에는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미인 혹은 청초하고 전원적 순수성을 지닌 미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퍼펙타 자전거 광고 포스터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카락을 통해 자전거 타기가 주는 경쾌함, 역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무하는 아름다운 여성 모델을 통해 상품이 지닌 건강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원하는 여성의 욕망을 도발적인 신여성으로 표현했다. 이는 동시에 팜므파탈을 꿈꾸는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도 충분했다. 무하는 세기말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꿰뚫으며, 시대가 원하는 여인상을 로맨틱하고 강렬하게 그려냄으로써 소비 창출로 연결시킨 영리한 예술가였다.
「현대미술의 산실, 뉴욕」에서는 세계적인 화가로의 도약을 위해 뉴욕행을 선택한 무하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뉴욕 시절에 무하는 회화와 그래픽아트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 사진을 찍으며 완성작의 전체 구성을 머릿속에 그렸다. 또한 자신의 예술철학을 강의하며 미학적 원칙과 창작의 테마를 융합시킨 세 가지 개념 ‘황금비율, 자연, 민족’을 확립하고, 민족의 혼과 그 문화적 콘텐츠를 작품 속에 표현하는 꿈을 키워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꿈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후원가를 찾아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인맥을 쌓아갔다.
평생의 꿈이던 ‘장엄한 놀이’
조국을 위한 예술에 헌신하다
무하는 예술을 민족의 영혼이자 인류 영혼의 일부로 보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내내 민족을 테마로 하는 예술 작업을 염원했다. 그만큼 그에게 고국은 예술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었다. 「유럽의 심장, 프라하」에서는 귀국 후 민속과 민족의 페이소스를 투영하여 위대한 인간 정신을 표현해낸 무하의 예술을 탐구해본다. 무하는 고국의 공공예술에 참여한 대표적인 예술가로 손꼽힌다. 그는 프라하 시민회관 시장 홀 천장 프레스코 작업을 포함해 체코슬로바티아의 지폐, 국가 엠블럼, 정부 레터헤드, 군복, 우표 등을 디자인하며 고국이 지나온 발자취를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교감하도록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담았다. 그리고 마침내 20여 년에 걸쳐 체코의 역사와 민족애를 담은 대작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한다. 연작으로 제작한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무하는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들고 러시아에서 발칸반도에 이르는 긴 여정을 떠난다. 이를 통해 그가 남긴 슬라브 민족의 역사, 전설, 민속예술, 풍습에 관한 기록은 당시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인문학을 예술에 융합시켜 놀이처럼 즐긴 무하. 그는 예술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고 삶의 해법을 구하고자 했던 거장이었다. 이 책에 그려진 무하의 삶과 작품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술을 통해 자신을 브랜딩하고 소비를 창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삶의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는 인간의 내면을 위로한다. 또한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자아실현에 관한 화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