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

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 요리후지 분페이의 직업적 권태 탈출기

絵と言葉の一研究

절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요.
그림과 언어로 찾아가는 분페이의 일 휴식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으로 좋아하는 일에 대한 태도를 전했던 요리후지 분페이가 개성 있고 유머러스한 빨간 색연필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돌아왔다. 이 책 『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은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가 일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되었을 때 찾아온 직업적 권태기를 그만의 디자인 공통항목인 그림과 언어로 풀어내며 작업과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비단 회사원이 아니어도 보통 어느 한 일에 대한 고비는 3년 정도가 되면서부터 찾아온다고 말한다. 맡은 일에 대한 경험치가 생기면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지고 답답함을 느끼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는 잘나가는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요리후지는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디자인은 하고 싶지만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잠시 멈춰 그만의 사적인 노트인 이 책을 만들며 휴식의 시간을 가졌고 잃었던 길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면서 겹겹이 쌓여 있던 답답함을 조금씩 벗겨간다. 이 책은 직업적 권태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리후지의 고민의 흔적과 일 휴식기를 따라가다 보면 흐릿하기만 했던 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불안의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작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실제로 직업적 권태기에 빠진 3년 차 직장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요리후지 분페이의 두 권의 한국어판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찾아온 답답함의 시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 책을 작업하며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오늘도 출근을 고민하고 아직도 길을 찾아가고 있는 날것의 고민을 읽다 보면 지금 드는 답답한 마음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의 글

분페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만나는
요리후지 분페이의 그림과 언어

이 책을 읽다 보면 비슷한 사람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묘한 그림과 만나게 된다. 분페이 1호, 분페이 2호, 분페이 3호……. 이 책의 지은이 요리후지 분페이는 ‘분페이 채널’이라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1호는 직관으로 그림을 그리고 2호는 그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며 3호는 작품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필요할 때마다 이 객관적 자아를 늘려가며 일을 바라본다. 이 책 『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에도 분페이 1, 2, 3호처럼 다양한 채널로 생각한 그의 사고가 담겨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하고 아르바이트 디자이너로 일하며 느낀 사회의 벽, 그림과 언어로 모색하는 그만의 디자인 방식, 북 디자이너의 독서법, 알기 쉬움에 대한 고찰 등 일에 관련된 생각을 담아간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나요?’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서른한 가지 디자인 생각’을 통해 디자인을 구상할 때 하는 생각의 흐름도 따라갈 수 있다.

매일 작은 일을 묵묵히 쌓아가며
안다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접점을 찾아가다

일은 하고 싶지만 일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요리후지 분페이라면 디자인은 하고 싶지만 디자이너이기 싫은 순간에 찾아온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시기에 느꼈던 답답함의 정체에 대해 한국어판 서문을 쓰며 떠올린다. 새벽까지 일하다 나와 문득 지금 자신의 모습이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될 미래일지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혀 어쩌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는 요리후지 분페이. 그리고 지금 그 예감은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고민은 어떤 일에 익숙해지면서 갑자기 찾아왔다가 어느 순간 해결되었다고 갑자기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이상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 고민의 답은 지은이의 말처럼 매일 작은 일을 쌓아가면서 그 일을 지금보다 더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그 접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요리후지를 세상에 알린 초기 일러스트레이션 작풍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그림들이 말하고 언어가 그려내는 『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을 통해 요리후지가 자기 일을 정리하며 정의해갔듯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때의 예감이 하루하루를 좇을 때마다 더 크고 강해진다고 느낀다. 만약 어딘가에서 그때 내가 느꼈던 그 예감에 사로잡혀 어쩌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이 그의 책장에 꽂혀 있기를 바란다.”

책 속에서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디자인을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은 재미있습니다. 단지 어렴풋이 디자인 세계에 답답함을 느껴 벗어나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사회학자에게 물으면 마치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 같은 ‘요즘 시대의 폐색감’이라 할 테고, 심리학자에게 물으면 ‘과거의 트라우마’라고 할지 모릅니다. 주변에 털어놓으니 다들 좀 쉬라지만, 원인을 찾아봐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디자이너 그만둬야 할까요」, 8쪽

내가 아무리 지면과 광고 목적에 맞춰 생각하고 싶다고 해도 상대방은 ‘요리후지의 작풍’만 요구했다. 이건 광고회사와 제작사 사이에 있던 벽이자 나와 오구폰 사이에 있던 벽이었다. 선배를 도와주던 일을 그만둔 뒤 사무실을 열었고 일러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 벽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작업의 경제성」, 52쪽

내가 하는 일은 분명 평범한 소통을 종이 위에 재현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목소리를 문자로 바꾸고 표정을 그림으로 바꿔 원래대로 묶는다. 그림과 언어를 사용해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과 언어를 조합해 무언가 획기적인 것을 하기보다 평범한 것을 종이 위에 재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림과 언어의 관계」, 76쪽

지금까지 ‘재미있다’든지 ‘즐겁다’는 안다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감탄하는 것을 ‘안다’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비난 받으면서도 만화에서처럼 ‘두둥’ 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괴로운 얼굴로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다. 내 경험에만 비추어봐도 안다는 것은 분명 더 밝다. 즐겁고 재미있다. 그것이 ‘안다’ 운동의 큰 에너지다.

「아는 것과 알기 쉬운 것」, 192쪽

디자인은 보는 이의 내면에 새로운 시점을 만들어낸다. 그 내면에 나만의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내는 마법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점이 대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일까. 보는 이의 내면에 수많은 그만의 채널을 만들어 그 상자를 점점 더 거대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자신이 좋다고 생각해 만들어내는 그림이나 디자인이 결국 더 답답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페이 6호인지 7호인지가 가끔 나타나더니 최근에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후기와 같은 분페이 채널」, 206쪽

차례

한국어판 서문을 쓰며

디자이너 그만둬야 할까요

제1장 정보를 그리는 일
제2장 작업의 경제성
제3장 그림과 언어의 관계

제4장 서른한 가지 디자인 생각
제5장 북 디자이너의 독서법
제6장 아는 것과 알기 쉬운 것
제7장 후기와 같은 분페이 채널

빌어먹을 3년 차 권태기가 찾아왔습니다

요리후지 분페이

북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저술가. 재치 넘치는 작업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사시노미술대학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중퇴하고,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일했다. 1988년 요리후지디자인사무실을 열고, 2000년 유한회사 분페이긴자를 설립했다. 2008년 『생활잡담수첩』,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로 제29회 고단샤 출판문화상 북디자인부문을 수상했다. 카피라이터 오카모토 긴야岡本欣也와 함께 제작한 일본담배산업의 포스터와 신문광고로 도쿄ADC상과 일본타이포그래피연감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죽음 카탈로그』, 『원소생활』 등이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지진』, 『숫자의 척도』, 『쾌변천국』, 『낙서마스터』 등이 있다.

서하나

건축을 공부하고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다가 직접 디자인하기보다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외어전문학교에서 일한통번역 과정을 졸업하고 안그라픽스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언어도 디자인이라고 여기면서, 일한 번역가와 출판 편집자를 오가며 책을 기획하고 만든다. 『토닥토닥 마무앙』 『초예술 토머슨』 『저공비행』 『느긋하고 자유롭게 킨츠기 홈 클래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