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취리히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취리히에서 졸업하고 식자공 직업교육을 마친 후 파리에서 유학했고, 파리스위스산업회Cercle Commercial Suisse de Paris에서 프랑스어 학위를 받았다. 이후 취리히 출판사에서 광고 인쇄 책임자로 일했다. 취리히예술산업학교Kunstgewerbeschule Zürich의 조판 및 활판인쇄 주간반을 다녔으며 알프레드 빌리만Alfred Willimann(1900–1957)과 발터 케흐Walter Käh(1901–1970)로부터
타이포그래피를 배운다. 1942년 바젤산업학교(AGS Basel)의 상임 타이포그래피 전공 교사로 임명되었다. 1947년 같은 학교의 제3부(예술산업 직업교육부)에 활판인쇄 전문반을 개설, 이곳의 책임자가 된다. 1948년 스위스공예협회(SWB)의 바젤 지부장을 맡았다. 1956년 스위스 산업 박람회의 「Die gute Form(좋은 형태)」 심사위원이었으며, 스위스공예협회의 중앙이사회 회원으로 (게오르크 슈미트의 뒤를 이어) 선출되었다. 같은 협회의 운영위원회 회원으로도 일했다. 1959년 ATypI(국제타이포그래피협회) 스위스 대표로 활동했다. 1961년 스위스 응용예술연방위원회에서 (베르흐톨트 폰 그뤼니겐의 뒤를 이어) 위원이 됐으며, 스위스 우편전신전화국의 우표 제작부 예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1962년 뉴욕 ‘국제타이포그래피예술센터(ICTA)’을 공동 설립하고, 1965년 바젤산업학교 교장 및 산업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1966년 스위스공예협회의 두 번째 회장이 됐다.
1967년 스위스의 니끌리 출판사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출간하고, 1968년 바젤산업학교 그래픽 디자인 고등과정을 아르민 호프만과 함께 창설했다. 1970년 바젤에서 눈을 감았다.
사람들
에밀 루더
Emil Ruder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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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모든 이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지은 책으로는 『밀양 전쟁: 공통자원 기반 급진 민주주의 프로젝트』가 있으며, 다음 책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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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중앙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브랜드 디자인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브랜딩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2009년 디자인 스튜디오 ‘핸드프린트’를 거쳐서 2013년부터 동료들과 함께 ‘일상의실천’을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UX/UI 디자인 분야에서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웹사이트 개발을 주요 작업 영역으로 삼고 있으며, 디자인이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을 탐구하며 웹 기반의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 왔다. 2022년 〈제1회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주제전시: 길몸삶터〉 큐레이터, 2021년 〈제20회서울디자인페스티벌〉 아트디렉터를 맡았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서 UX/UI 디자인과 개발을 가르치고 있다. -
발렌티나 베르가라
디자인을 변화의 촉매로 사용하고자 하는 다학제적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인 교육에서의 젠더 격차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억압적인 디자인 사고를 타파하고 주변화된 관점을 옹호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 탐구 중이다. -
이푸로니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지식경제부 선정 차세대디자인리더로 선정되었으며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스타상품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
박상우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에서 사진영상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부대학교, 연세대학교, 홍익대학교에서 사진미학, 사진과 현대미술의 관계, 영상미학, 매체미학, 예술론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부교수로 있다. 저서로 『롤랑 바르트, 밝은 방』(2018)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두 얼굴』(공저, 2012), 논문으로 「롤랑 바르트의 ‘그것이-존재-했음’, 놀라움, 광기」(2017) 「롤랑 바르트의 사진 수용론 재고」(2016) 「빌렘 플루서의 매체미학: 기술이미지와 사진」(2015) 「빌렘 플루서의 사진과 기술이미지 수용론」(2015) 「롤랑 바르트의 어두운 방: 사진의 특수성」(2010) 등이 있다. -
정연종 추모전 추진위원회
디자이너 정연종의 작고를 기리며 그의 디자인 사료를 발굴하고 기록하기 위해 동료 및 선후배 디자이너,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이다. 류명식 위원장을 필두로 김현, 명계수, 이영혜, 김성천 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도록 발간과 추모 전시를 통해 정연종이 남긴 한국적 디자인의 가치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전승일
계원예술대학교 공간연출과 겸임 교수이자 오토마타 아티스트. 스튜디오미메시스와 오토마타 공작소 대표 감독으로 애니메이션과 오토마타, 키네틱아트 분야에서 교육과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토마타 공작실』(공저)이 있으며, 주요 전시로 ‹전승일의 생각하는 오토마타›(2017) ‹고구려벽화 오토마타›(2017) ‹하늘세계의 친구들›(2017) ‹스코틀랜드 무빙토이 특별전›(2017) SICAF ‹전승일 오토마타 초청전›(2016) ‹정조대왕 화성 능행차›(2016) 등이 있다. -
김성도
1963년생으로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교에서 언어학과 기호학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연암재단의 교수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미술사학과 및 언어학 연구소 방문교수, 플브라이트 펠로 자격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 프랑스 리모주대학교 석좌초빙교수, 프랑스 디종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방문교수, 프랑스 아브르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지냈으며, 포스코청암문화재단에서 아시아 연구 펠로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기호학회, 국제인문언어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및 영상문화학 협동과정 주임교수이며, 세계기호학회 집행위원과 기호학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지인 《세미오티카》 편집위원, 한국기호학회 회장, 한국영상문화학회 부회장이다. 《세미오티카》의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드그레》 《랑가주》 《코디카스》 등 국제 기호학, 매체학, 언어학 분야의 학술지에 다수의 … -
콜린 모엣
역서로 『아트&에콜로지: 대칭적 삶을 위한 예술 실천들』 『토마스 사라세노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스틸 컷, 희수』, 저서로 『Tree, Body and Snow』가 있다. -
플러 왓슨
RMIT 대학교 건축 및 디자인 학부의 부교수이며 협력적 큐레토리얼을 실천하는 스튜디오 섬싱 투게더(Something Together)의 창립 이사다. 비영리 조직 오픈하우스멜버른의 사무국장 겸 수석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현재 이사회 임원이다. RMIT 디자인허브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디자인 실험, 프로세스, 리서치에 대한 전시 프로그램을 공동 감독하기도 했다. 리옹하우스뮤지엄갤러리의 창립 수석 큐레이터, 빅토리아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멜버른 나우〉의 초청 건축 큐레이터, 유럽 문화 수도(슬로베니아 마리보르, 2012)의 프로그램 큐레이터(건축) 등 오스트레일리아와 여러 나라에서 책임 큐레이터를 역임한 바 있다. 또한 ‘언리미티드: 아시아–태평양을 위한 디자인’, 스테이트 오브 디자인 페스티벌을 비롯한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독립 갤러리 핀업아키텍처&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를 공동 창립했다. 《모뉴먼트》의 전 편집장을 지냈으며 에드먼드&코리건의 『희망의 도시: … -
최동신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전 교수로 한국패키지디자인학회장을 역임했다. 36아시안게임 문화포스터 제작, 88 서울올림픽대회 사인·환경 디자인 등에서 활동했다. 참여한 책으로 『고등학교 디자인 실제』 『디자인실습』 『그래픽디자인』 『시각디자인 일반』 『시각디자인실습』 등이 있다. -
에이리가족
화가인 고경애와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상욱이 꾸렸고 준성이와 은솔이, 그리고 반려견 ‘코르뷔지에’가 함께 이룬 가족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과 일본 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일하던 고경애는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오면서 일본에서 세 번, 한국에서 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노곡리에 ‘아홉칸집’을 지어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