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미술을 이룩한 사각형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그가 의문은 품은 것은 일본 경시청 지하에 있는 취조실에서였다. 1,000원짜리 지폐를 인쇄한 작품이 법에 저촉되어 심문을 받은 자리였다. “인간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을까. 취조관의 눈초리를 받으며 그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먼 옛날, 생필품에서 떨어져나온 그림이 판때기 한 장, 화폭 한 장 위에 등장했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 중세에서 원시 시대로 가면, 그림도 벽도 항아리도 식료품도 종교도 일도, 모두가 분화하지 않은 마그마 상태였다. 내 작품은 그 마그마에서 언어를 빌려오지 않는 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족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강아지의 눈에서 시작한다. 강아지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보지만, 물건 주위는 흐릿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모네와 피사로, 고흐에서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까지 미술의 역사를 느슨하게 살핀다. 그 뒤에는 인간이 사각형을 처음 발견한 시점을 상상하고, 다시 강아지의 눈으로 돌아온다.
다섯 장, 120쪽으로 이뤄진 지은이의 여정은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김난주의 번역으로 한국 독자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독자는 일견 가볍지만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지은이의 문장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사각형을, 그리고 그것이 담긴 사각형의 책 자체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