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화내고, 가끔은 감정이 격앙되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사회라는 거울을 향해 강하고 부드럽게 속삭인 이야기들
한국에 처음 소개된 나가오카 겐메이의 책은 2009년의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로, 원서는 2006년 출간되었다. 당시 ‘개성파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왔던 그가 2025년이면 환갑을 맞이하고, 그 사이 D&DEPARTMENT가 서울과 제주에도 생겨 나가오카 겐메이의 D&DEPARTMENT 프로젝트도 우리에게 한층 가까워졌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지만 새 책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를 보면, 그의 예리한 감각은 무뎌지기보다는 오히려 시간으로 다듬은 경험과 통찰이 더해지며 더욱 섬세해진 듯하다. 발로 직접 뛰는 열정의 불씨도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 책조차 “앞으로 다가올 말년에 한층 더 기합을 불어 넣어 왕성하게 활동하기 위한 책”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그 불의 온도를 가늠할 수 있다.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한 주에 하나씩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도 어지간한 의지로는 어려운 일이다.
나가오카 겐메이에게 유료 메일 매거진의 초기 취지는 “돈을 내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활동이 많이 있는데, 그런 가치를 스스로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메일 매거진의 글을 엮은 이 책의 서두에서 그는 사람들이 SNS 등에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매일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지금 시대의 감각”이라고 하며, 그와 같은 감각으로 메일 매거진을 써왔음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사람들의 SNS, 그에게는 메일 매거진이 사회와 이어지는 작은 구멍이고, SNS에 글을 올리거나 메일 매거진을 써서 보내는 건 사회성을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에게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써왔습니다. 다시 말해 내 생각인 듯하면서 사회라는 거울을 향해 강하고 부드럽게 속삭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가 메일 매거진을 보내며 확인한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직업으로 디자인을 하려면 지구의 위기를 짊어진다는 발상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작은 회사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주목받는다고 느낀다. 대량생산만 보더라도 역시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같은 글을 보면 그가 D&DEPARTMENT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초창기의 마음가짐, 즉 가장 중요한 초심을 거듭 되새기고 운영하는 브랜드에 반영해 성장시키고자 고민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 활동가이자 경영자로서 그의 이런 철학은 삶의 방식과 분명히 이어져 있다. “임시방편으로 구입한 물건은 이상적인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불필요해져 눈앞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그런 물건들이 재활용센터에, 폐기물 처리장에 모여 ‘(아직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쓰레기’가 된다.” 같은 말은 그 연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롱 라이프 디자인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무엇이든 저렴하게 파는 대기업의 체인점이 가까운 거리에 즐비하고, 더군다나 이제는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세상에서 “그렇게 할인 상품을 사는 일이 무엇을 키우고 응원하는 일로 연결될까?” 하고 물음을 던지며 우리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처럼 사소한 생활 방식 하나하나가 어떻게 사회 전체와 연결되는지 상기시키기도 한다.
“D&DEPARTMENT를 마흔일곱 개 도도부현에 만들겠다!”라며 일본 전역을 동분서주하고, ‘그 토지에서 나온 것은 그 토지에 가서 즐긴다.’라는 사고가 이상적이라고 설파하는 나가오카 겐메이를 보고 있으면 내심 그를, 나아가 그처럼 일을 벌이고 분투하려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디자이너나 브랜드 운영자가 아니라도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일상을 영위해 가는 우리 모든 생활자에게, 나가오카 겐메이가 해주는 이야기는 ‘분명하게’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