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리켄, 2024 프리츠커 상 수상
“부자가 아니라도 살 수 있어.”
“작은 기술은 돈벌이가 돼.”
“안녕, 단독주택. 안녕, 내 집 정책.”
“이제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도 돼.”
“혼자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어.”
“노인은 자유롭게 생활하지만 혼자가 아냐.”
“분양이 아닌 임대.”
“기분 좋은 야외.”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육아스트레스가 없어.”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은 실패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주택의 역할은 사생활과 보안 확보라고 믿어왔다. 집을 판매하는 주택업자들에게도 이것은 가장 중요한 판매 전략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집은 외부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점점 밀실처럼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집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전후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한 ‘1가구 1주택’ 모델에서 시작되었으며, 전후 경제 성장의 일환으로 주택을 대규모로 지어 민간주택업자가 상품으로 공급하면서 선택된 전략일 뿐이다. 내 집 정책으로 인해 우리는 집을 사는 데 수입의 거의 전부를 투자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을 잃어버렸으며, 지독한 지역이기주의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태도조차 퇴색시키고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과 이윤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이 책의 지은이 야마모토 리켄은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 새로운 주택정책이 필요한 때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구상해온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은 가족이 해체되고 더 이상 국가가 국민의 복지와 미래를 책임져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오늘날, 이제는 지금과 다른 주택과 공동체를 꿈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필지에 두 채의 집을 짓는 땅콩집이나 하나의 집을 나누어 사는 셰어하우스, 코하우징 같은 주택 양식이 주목을 받는 현상도 바로 이런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대안일 것이다. 한 채의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 집이라는 개념 자체를 버리고 함께 나눠 쓰고 개방하고 임대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지역사회권’은 바로 이렇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 상부상조하는 삶의 이점을 극대화한 집합주택정책이다. ‘지역사회권’에서는 최소한의 전용공간과 최대한의 공용공간이 어우러져 누구에게나 개방된 지역사회를 추구한다. 500명 단위로 구성된 지역공동체는 조립식주택을 임대하여 소유의 개념을 넘어서는 삶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사회권’이 공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주택정책임을 보여준다. 에너지, 교통, 공유시설, 생활편의시설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분화하여 집합주택의 시스템과 구조를 설명하는 과정을 읽다보면 지역사회권시스템에 대한 지은이의 절실함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제안, 지역사회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4년 동안 ‘지역사회권’에 대해 연구한 결과물을 묶은 이 책은, 단순히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주택을 시도해보자는 식의 도발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피폐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을 균질화하고 분해하여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우리의 삶을 다시 공동체의 삶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사생활과 보안이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집에 대한 강요된 개념,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새롭고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주택은 경제정책 내에서 사고되어 왔다. 하지만 주택은 삶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미래사회에 우리 앞에 닥칠 경제적 결핍과 고립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는 새로운 주택정책으로 충분히 타개할 수 있다. 야마모토 리켄이 제시하는 ‘지역사회권’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