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동서양이 나아갈 바를 배우고 우리 것의 소중함에 새로이 눈뜨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폭넓게 아우르는 건축사학자 임석재의 대표작이 10년의 세월을 거쳐 더욱 주옥 같은 가치를 빛내며 우리 곁에 새롭게 찾아왔다. 이 책은 건축에 관한 열여덟 가지 주제로 한국 건축의 특징을 짚어보고, 이와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특징을 가진 서양 건축과의 비교를 통해 인문적 성찰에 이르는 건축 교양서다.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을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만 이해했던 지금까지의 일반적 시각에서 벗어나, 두 건축 세계에 대한 비교와 성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건축을 돌아보고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이 같은 접근은 한국적인 삶과 서양식 건축 형태가 혼재하는 지금의 우리 건축 환경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는 1999년 첫 발간된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의 개정판으로, 첫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읽힌 책이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이 텍스트를 새로운 세대에게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다듬어 엮었다. 흑백이었던 도판은 모두 컬러로 교체했다.
우리 전통 건축 vs. 서양 건축
다르면서도 닮은 두 세계
한국 전통 건축이나 서양 건축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서양 건축을 전공한 학자가 집필한 한국 전통 건축 책이나 그 반대의 책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비교 학문이 어려운 이유는 대상이 되는 두 분야가 서로 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둘 모두에 능통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단순한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 둘을 비교하는 깊이 있는 시각을 갖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가는 바로 그 점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 서양 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심미안을 가진 건축비평가 임석재 교수의 수준 높은 텍스트가 두 건축의 단순 비교를 넘어 동서양의 세계관과 각 시대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궁궐, 사찰, 서원, 향교, 민간 한옥 등 다양한 유형의 한국 전통 건축을 다루고 있으며, 서양 건축은 특정 유형이나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각 장의 주제에 맞는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했다. 특정 건축물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여덟 개의 주제 아래 각각의 내용에 맞는 건축물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지붕, 기둥, 돌과 담 등의 건축 요소와 방위, 대칭, 친자연 등의 건축 개념을 주제로 각 장마다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의 서로 유사하거나 상반된 사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놀랄 만큼 닮은 모습의 기둥이나 나무 계단, 돌담 등에서 친자연적 관점의 흔적을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불교 사찰의 산문과 고딕 성당의 화려한 출입구에서 대비되는 상징성의 차이나 빛을 다루는 방식 등에서 뚜렷한 세계관의 차이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비교 분석 작업은 두 건축의 과거와 현재를 오롯이 담아내는 동시에, 각자가 내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적인 건축상의 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류의 공통된 고민이 같은 뿌리를 지니고 공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은 서로의 우월함을 견주는 이분법적인 대상이 아니라, 보다 대안적인 제3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서로 보완하고 함께 연구되어야 할 관계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대안의 건축을 향해 나아가다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의 발전상을 살펴보면 한국 전통 건축과 서구로부터 도입한 건축 양식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효율을 앞세운 일부 서양 건축 방식이 무분별하게 확대되었으며, 그 속에서 한국 전통 건축은 자취를 감추거나 반대로 무조건적인 맹신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두 건축 방식의 장단점을 함께 고려하는 대안적인 건축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앉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우리의 주거 문화는 전통과 서양의 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한국 전통 건축의 매력에 새롭게 눈뜨는 동시에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이 지닌 공통의 고민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나은 제3의 건축상을 그려나갈 힘을 우리에게 북돋워 줄 것이다. 이는 또한 건축 환경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통 문명과 서양 문명이 한데 뒤섞이고 엉키면서 보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마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