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발전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우리 사회, 문화, 생태에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분석한다. 인류세(Anthropocene) 위기 국면, AI 미디어 사회 속 우리의 삶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사회 윤리·정치·생태적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AI 미디어 생태학
편집자의 글
기술 숭배의 시대, AI의 인권·생명적 지위를 다시 묻다
인공지능과 미디어 기술은 지금 우리 사회와 삶, 문화 전반을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을 맹목적으로 낙관하거나 혁신만이 최선이라고 믿는 ‘테크노 낙관주의’와 기술 숭배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할수록, 우리는 쉽게 “기술만이 해결책”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 책은 기술 그 자체만을 사회 혁신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그리고 도구로서의 기술이 사회적·생태적 책임 앞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AI 미디어 생태학’은 기술이 마치 신앙이나 새로운 사회 질서의 대명사처럼 추앙받는 풍토를 바로잡으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술의 진보는 분명 인류의 중요한 업적이지만, 이로 인해 지구 전체가 ‘인류세’라는 위기 국면에 놓였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책은 “기술이 곧 답”이라는 무비판적 접근을 뛰어넘어, 과연 인공지능이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AI 시대의 혁신이 진정 공동 번영으로 이어지려면, 기후위기와 생태적 불평등 같은 현실 앞에서 기술과 인간 모두가 겸손해야 하며, 기술 역시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다시 설계·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생태주의적 접근은 AI와 미디어 기술 인프라의 이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AI의 연산은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수반하며, 희귀 광물의 무분별한 채굴과 노동 착취, 독성 폐기물 등 우리가 평소 직면하지 않는 문제까지 주목하게 한다. 책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비물질적이며 청정한 미래산업’이라는 현수막 뒤에 감춰진 현실적 물성과 사회적 비용을 직시하는 것이 진정한 생태 전환의 출발임을 지적한다.
『AI 미디어 생태학』은 “기술을 맹신하는 순진한 미래 낙관주의”와 “기술은 결국 파국을 부르는 숙명”이라는 이분법 그 자체가 더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이제 인공/자연, 생명/기계, 물질/비물질, 실제/가상 등의 이분법적 경계를 재배열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지 새롭게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미디어와 기술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끼치는 혼종적이고, 복잡화된 영향, 그리고 그 결과 사회가 직면하는 환경 파괴, 데이터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노동의 위계화 등의 문제를 풀 실마리는 “기술 자체의 속도와 무차별 적용을 조절하고, 생태와 사회의 조화로운 공생을 도모하는 것”에 있다. 오늘의 AI 혁신이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시민과 지구 모두의 지속가능한 미래 만들기”와 연결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책 속에서
무비판적 테크노 낙관주의와 기술 숭배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신생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적용은 마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 가치를 생성하는 것으로 추앙받는다. 기술(지상)주의적 사회 혁신이 마치 사회의 정도(正道)인 것처럼 여겨지고, 우리의 지배 정서로 등극하는 것이다. 반복하지만 이는 기술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사회 혁신의 핵심 질료로만 간주하는 도구적 합리성의 위험을 지닌다.
‘AI 미디어 생태학’은,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된 현대 인류의 미디어 기술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필자가 지닌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종만의 독특한 능력인 기술을 발명할 수 있는 재주를 통해 인류가 문명을 구성해 왔으나, 반면 고도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많은 부분 동시대 지구 행성의 인류세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이 책은 인류세 위기 현실에서 기술이 종교가 된 이 시대에 과연 AI 기술의 위상과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핀다. 동시대 첨단 미디어 기술을 변혁하고 재고하는 방식에서 공동 번영의 길을 찾는 방법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기후재난 앞에서 우리 인간의 기술 또한 겸손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AI 기술의 생태주의적 접근과 해법에 착안한다. 다른 무엇보다 뭇 생명과 인간 아닌 존재와의 평화로운 얽힘의 관계를 따지는 ‘생태주의’적 접근을 강조한다.
새로움, 속도, 가속, 성장, 경쟁, 발전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느림, 감속, 탈성장, 공생, 돌봄 등의 정서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인류세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생태적 얽힘의 감각과 관계적 정서를 삶의 태도로 삼지 않으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기술을 경유한 공생 감각은 ‘감속주의’에 익숙해지는 것과 연결된다.
감속주의의 방법은 청정의 비물질 혁신 기술로 행세하는 동시대 인공지능의 기술 인프라 조건과 물성을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보면, 생성형 AI의 연산처리에 소모되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에 따른 폐열(廢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희귀금속(희토류)의 무차별 ‘추출주의(extractivism)’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와 피폐화, 추출과 채굴에 동원되는 남반구 노동자의 수탈, 희토류의 광산 채굴 이후의 독성 제련 과정, 인공지능 강화학습 등에 동원되는 위태로운 노동자 지위 등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AI 생태 균열에 대한 구체적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 이상 우리의 기술관이 먼 미래에 대한 순진한 기술의 낙관이나 자조 섞인 숙명적 비관의 이분법적 진단이어서는 곤란하다. 동시대 기술을 인류세 생태 패러다임에 함께 묶어두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에 밀착해 우리 주위의 인공/자연, 생명/기계, 가상/실제, 물질/비물질 사이의 배합과 배치를 새롭게 재조정하는 일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지구 곳곳에 만연한 기술 독성을 생태주의적으로 치유할 시험대가 열릴 것이다. 결국 감속주의는 미친 듯 질주하는 자본의 기술 가속의 속도를 제어하고, 인류세 위기를 멈춰 세우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야 한다.
차례
들어가며 –기술 숭배와 신앙 너머
1/ 인류세 기술생태학
1 동시대 ‘자본주의 리얼리즘’ 풍경
2 인류세 위기와 생태주의
3 기술 물신에 맞선 공생 기술
4 동시대 기술의 생태주의적 사유법
/2 AI 합성 미디어와 반생태주의
5 테크노 리얼리즘과 AI 창작 노동
6 생성형 AI의 ‘멋진 신세계’ 구상
7 AI 합성 미디어와 리믹스 문화의 쇠락
8 한국형 AI 챗봇 이루다의 기술 실패
/3 AI 생태미학과 생태 리터러시
9 아트-테크의 사회 미학적 조건
10 AI 환각에 맞서는 생태미학
11 생성형 AI 미디어와 생태 리터러시
/4 돌봄, 파토스, 데이터 커먼즈
12 ‘난잡한 돌봄’, 다중재난을 준비하기
13 파토스의 커먼즈와 다른 세계 짓기
14 기록의 정치와 데이터 커먼즈
/5 AI 생태정치학을 위하여
15 (비)인간 레플리컨트의 노동 생명 연대
16 ‘추방된’ 기술 존재자들의 생태정치학
17 감속주의, 기술생태정치학의 방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