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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나와서 무얼 할까 1: 살아 있는 12가지 직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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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자리와 현실의 자리
이 사이에서 누가 창조적 예술가가 되는가?

한 해 미술대학을 졸업하는 수많은 학생들 중에 자신의 전공을 살려 졸업 후에도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과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총 24개의 직업영역으로 나누고 각 직업분야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만나 지금껏 고상해서 묻기 힘들었던 ‘예술로 먹고 사는 법’을 채집했다. 단도직입적인 질문들과 진솔하고 쾌도난마한 그들의 대답을 통해 알아보는 우리시대 예술가의 초상!

편집자의 글

미대 나와서 무얼 할까?
꿈, 그 두려운 설렘을 만나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때 누구나 쉽게 답해 버리는 질문이지만 더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이름 안 쓴 답안지와 다름없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다. 때로는 막막한 현실에 내몰리거나 아니면 기름진 환상에 혹해 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누구나 궁금해 했지만 아무도 쉽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과 대답을 통해 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입시생들과 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직업 가이드를 제공한다.

그뿐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물음들을 던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색을 요구한다.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창조적 예술가들. 그들은 모두 선택된 소수로서 출발하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현실에 대해서 불만을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나 그 현실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떻게 세상과 싸웠고 이겨냈는가? 그리고 또 어떤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가? 이는 미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재학 중인 학생들 모두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책 속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이들이 누드를 보지 않아야 하는가? 아이들이 누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인 것인가? 그런데 아이들은 실제 누드를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누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못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어떤 시선으로 볼 수 있는지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죠. 미술교육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다른 부분이었던 겁니다. (누드를) 보는 것 자체가 아주 끔찍한 일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던 것이고, 그 통념이 (교육적 진정성과 신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 버린 것이죠.

미술교사 김인규

사실 큐레이터의 역할은 계속 재조명되고 있어요. 어떤 한 작가를 정의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인데, 이것이 바로 ‘문맥(context)’을 창조하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 안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시장에서 제품의 실용적 기능만큼 그것에 심리적 가치를 보태는 마케팅이 중요해진 것과 비슷하다고 봐요. 물론 과대포장은 문제가 되겠지요. 하지만 갈수록 제품의 이미지와 스토리가 중요해지는 현 시점에서 큐레이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큐레이터 이대형

저 같은 경우에는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지금 현 시점에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떤 다급함(urgency)이 있어요.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를 만드니까요. 그러나 굳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짐작해 보자면 아무래도 종합적인 예술 형태가 되겠죠. 그리고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다기보다 구분이 확실했던 장르들 간의 벽이 더 허물어질 거라 봅니다. 미술 내에서뿐만 아니라 미술 밖에서도 그런 시대로 들어가고 있어요. 미술, 정치, 예술도 그렇고요. 서로 삼투압 하듯이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점점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 만큼 미래의 예술가는 미술 밖 장르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치미술가 서도호

자기 생각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콘셉트 아트지만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디자이너이거든요. 개발자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여러 가지 상황을 물체와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측면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뭔가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해요. 그림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첫 번째는 역시 창의력과 디자인 능력인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좋은 그림으로 옮겨낼 것인가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죠. 실제로 그림 실력은 부족하지만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은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이 디자인한 그림은 정말 독창적이고 독특하죠. 그런 점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게임콘셉트아티스트 박정식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구상한 디자인이 실제 현실화 된다는 점이겠죠. 자동차 디자인은 기계적인 메커니즘과 마케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이 점이 재밌어요. 다른 영역의 디자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추구하는 소재나 구조, 역학 등 모든 부분들이 실제의 ‘기능’을 전제로 한 디자인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기능과 함께 작동에서의 안정성, 퍼포먼스가 동시에 고려돼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에 처음 생각과는 달리 수십 차례의 선택과 포기의 과정이 생기는데 그땐 정말 살아 있는 뭔가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자동차디자이너 김한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인류의 역사에서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긴 한데, 그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니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언젠가는 발견하고 알아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까. 과학이 계속해서 발전하다 보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 그것들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거야. 그런데 고흐가 그린 그림은 그 순간의 고흐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이거든. 그때의 렘브란트가 아니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거지. 이게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지금의 내 그림은 나만이 그릴 수 있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마력이 있다면 아마 이런 거 아니겠어.

서양화가 이정웅

젊은이들한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힘을 빼야 멀리 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점에 대해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는 참 어려워요. 어쨌든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조경이에요. 앞으로는 식물에 관해 유능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어요. 식물이 뭐죠. 예전엔 화분을 잘 만들어서 잘 꽂아 넣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화분 없이 넓은 흙속에서 햇빛 잘 받으며 잘 살게 하느냐가 훨씬 좋은 디자인이라는 거죠. 자연스러움. 그게 디자인을 하지 말란 이야기이기도 하니 참 어렵군요.

인테리어디자이너 전시형

어떤 곳이든 본인의 실력을 키울 수 있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돈이 많고 적음이나 일이 힘들고 쉬움을 가리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또한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자기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은 미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다 높은 연봉, 보다 큰 직장만 좇다 보면 길어도 5년 안에 스스로 헛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처음 이 업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을 스펀지라고 생각하고 물이 꽉 차서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을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스펀지처럼 속까지 채우지 않고 겉으로만 대충 아는 시늉을 하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 혹은 회사의 운영마인드가 좋거나 자신의 잠재력을 높이 사고 발전할 수 있게끔 이끌어 줄 수 있는 곳,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돈을 좇지 말고 그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션그래퍼 이지철

돈이 없어서 돈을 벌면 작품을 못 하고, 막상 작업을 하려니 돈은 없고……, 악순환이죠. 결국 독한 마음으로 ‘고리’를 끊어야 해요. 돈을 꿔서라도 한동안 참으면서 작업을 하던가,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최소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든 모색해야 합니다. 전 집에서 1백만 원 단위 이상의 돈을 가져다 써본 적이 없어요. 방법은 의외로 많아요. 작품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돈 주는 전시에 들어가거나, 개인전을 하고 싶으면 공모전을 신청하고, 책을 만들고 싶으면 기금을 신청해야죠. 좋은 작업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요. 적극적으로 돈을 빌리거나 창작기금을 가져다 쓰는 걸 귀찮아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조소작가 권오상

일단 건축가는 타자의 경험이 필연적인 직업이거든. 건축은 자기 바깥에 뭘 내놔서 그걸 남에게 경험하게 하는데, 사실 끊임없이 남의 경험을 의식하는 것은 꽤나 숭고한 일이야. 남의 시선을 관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다시 내 안에 끌어들이는 힘이 건축이 된다고 할 수 있지. 물론 타자에의 관통이란 게 청중에 영합하는 딴따라로 전락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단순히 대중 편향과 비교해서는 곤란해. 회화나 조형예술은 그야말로 개인의 경험이 작품전체를 구성하지만 건축가는 유일하게 자기의 경험 - 사고 - 표현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을 숨기고 또 옅어져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한다는 거지. 이 말은 ‘건축은 개성이 필요 없는 업(業)’이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에고(ego)에서 출발했지만 다시 그 에고를 버려야 하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건축가는 유일하게 자신의 작업이 완성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그곳을 떠나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지.

건축가 김헌

행복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산다는 것이 그 중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어요. 그래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사람이 힘들어할 때는 잠깐씩 다른 직업을 상상해보기도 해요. 나의 행복에 다른 가족들이 희생당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기도 하고요. 가끔 속상할 때는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매달려 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긴 하지요. 그림 한 장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씨름하고 있으니 서서히 주변 사람들과도 연락이 끊어지고 그렇게 며칠씩 전화벨이 한 번도 울리지 않을 때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생태그림책화가 권혁도

제 꿈은 다 소진하는 겁니다. 그게 제일 행복할 것 같아요.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창작욕을 모두 끄집어내고 ‘다 이루었도다.’라고 하는 거겠죠. 더 이상 할 얘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다 쏟아낼 수 있는 지면이 허락됐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쏟아내고 싶은 만큼 다 쏟아내는 것. 대체 불가능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거죠. 허영만 선생님이 지금도 만화를 할 수 있는 것은 허영만을 대체할 만화가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만화가 윤태호

차례

여는 글

모든 그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그림은 좀 더 평등하다

미술교사 김인규
큐레이터 이대형
설치미술가 서도호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
게임콘셉트아티스트 박정식
자동차디자이너 김한철
서양화가 이정웅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인테리어디자이너 전시형
모션그래퍼 이지철
조소작가 권오상

알란 스미시를 위한 맥거핀 효과
건축가 김헌
생태그림책화가 권혁도
만화가 윤태호

부록 - 직업과 관련된 계열별 학과 소개

박정준

서울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LHOOQ’란 이름의 화실을 열고 드물게 작업을 했다. 우연히 글을 쓰기 시작해 2012학년도 고등학교 미술교과서를 공저했다. 미술기법 이론서와 함께 새로운 작업을 궁리 중이다.
은 안그라픽스에서 발행하는 웹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통해 들여다본
을 나눕니다.